한솥 도시락

<한솥 도시락>

처음 한솥을 먹어본게 2002년이었다.

20년을 경상도에서 살면서 음식에는 까탈스럽지 않다고 소문난 나였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나중에 결혼하면 마누라가 정말 좋아할 것이라고 하셨다. 뭘 줘도 다 잘 먹으니 메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하지만 지금 여자친구는 뭘 먹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 거의 없으니 요리에 상상력과 모티브가 안 주어진다며 막 갈궈댄다. 여친 자랑하는 거냐고? 응). 그런 나한테도 타지 음식은 정말 쒯이었다. 고등학교때 수학여행 가면서 처음으로 비빔밥에 고추장이 들어간 걸 먹어보고 이건 좀 참신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천으로 대학교 OT를 가서 먹어본 학식 밥은 악몽을 선사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김치. 젓갈 같지도 않은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맹탕 쌩배추만도 못했다. 그때 든 생각은 ‘집밥이 먹고싶다, 집에 가고싶다’가 아니라, ‘바깥 밥은 돈주고 사먹을 물건이 아니구나’였다. 기숙사 아침밥이야 기숙사비에서 이미 계산이 됐으니 나오는대로 먹는게 이득이었지만, 학식은 그날 이후로 한번도 사먹은 적이 없다. 차라리 분식메뉴로 라면(당연히 쇠고기라면. 대량 급식용 쇠고기라면 본 사람 있을거다. 면만 박스에 한가득 들어있고 스프는 엄청 큰 비닐포장에 담겨져 나온다)이나 김밥을 먹는게 낫다 싶어서 점심 저녁은 항상 라면이나 김밥이었다. 한끼 식대로 2천원 이상을 써본 일이 거의 없었달까.

그러다가 서울로 보드게임 까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올라와서 식생활 패턴을 바꿔야했다. 같이 알바를 하던 사람들은 백반을 시키거나 했는데 내가 무슨 돈이 있나. 한참 돈이 없을 땐데(뭐 언제는 돈이 있어봤나… 돈이 있어본다는 게 어떤건지 잘 모르겠다) 한끼 식사로 3천원을 쓰는게 끔찍하게 아까운거다. 그때 대안으로 보인게 한솥이었다. 까페에서 출발해도 5분안에 갔다올 수 있고, 메뉴도 다양했다. 가격도 싸서 새댁도시락(생선까스 도시락이다) 하나에 1500원! 970원짜리 콩나물밥은 도저히 도전할 엄두가 안나서 안 먹긴 했지만 빌어먹을 학식보다 나은 밥을 15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건 대박이었다. 김치는 애초에 포기한다 쳐도 생선까스는 가격 대 성능비가 괜찮았다. 밑에 깔린 면을 간장을 뿌려서 먹네 그냥 먹네 같은 개소리도 알바들끼리 해가면서 메뉴의 우월을 놓고 병림픽을 벌이기도 했다. 하필 메뉴 이름들도 새댁, 도련님, 장모님 같은 이름들이 붙어있어서 헛소리하고 놀기에도 참 좋았다(만약 사위 도시락 같은게 있었으면 메뉴에 씨암탉이 들어있었으려나). 비수기여서인지는 몰라도 겨울엔 정기 세일도 했다. 요일별로 할인하는 메뉴를 돌아가며 먹으면 질리지도 않고 좋았다. 평소엔 드럽게 비싼 주제에 자질구레한 반찬만 많은 국화 같은 메뉴도 금요일 할인을 받아 한번씩 사먹어보고, 다들 비오는 날엔 마파두부라며 노래를 불러댔고. 지금은 새댁이고 마파두부고 죄다 없어져서 아쉽다.

그렇게 싸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다른데보다 조금 꿀려보이지만 편한 밥집이라고 생각했던 한솥에 대한 생각이 바뀐건 여친님의 이야기를 듣고나서였다. 대한민국 빈곤의 실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한솥이었던거다.

학교 급식 외에 식사를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이 온 전국에 깔려있다. 그들에게 가장 큰 고비가 방학이라던가. 그 아이들이 한솥에 와서 끼니를 때우는 걸 보고 있으면 나라 꼬락서니가 이게 뭐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고 한다. 남매 둘이서 와서 어디서 어떻게 받은 돈인지 모를 꾸깃꾸깃한 지폐 쪼가리를 내밀고는 메뉴 하나를 시킨다.

하나.

1인분.

한솥 메뉴는 패스트푸드 주니어세트라는 비아냥을 받을 만큼 초딩 입맛을 유혹하는 메뉴가 수두룩하다. 생선까스, 돈까스, 함박스텍, 치킨… 포스터도 큼지막하게 붙어있고, 사진도 맛깔나게 잘 찍혀있다. 그런데 그 쌈짓돈 들고 온 애들이 메뉴를 고를 수 있었을까? 밥 하나를 시켜서 둘이 나눠먹는데 메뉴를 어떻게 고르나. 가끔 매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보기에 너무 짠해서 반찬이나 뭘 더 챙겨주려고 할 때에도 그 아이들은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었지만, 걔네의 메뉴가 부디 970원짜리 콩나물밥이 아니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쁘띄 거늬제 the samsung 2nd emperor가 손님오면 냉동 푸아그라 내놓고 지혼자 냉장 푸아그라를 처 자시는 사이, 내가 알바 했던 편의점에 온 어떤 거지는 구걸해서 모은 10원짜리 125개를 갖고 와서는 소주 한병을 사갔다. 남의 일에 도통 관심없는 내가 봐도 ‘차라리 밥을 처먹고 정신을 차려라 이 알콜중독자 새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오던 때도 있었다. 그런 일을 겪어본 나조차도 한솥이 그런 의미를 가진 현장이라는 걸 몰랐던거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야 내가 한솥을 사먹을 때 가끔씩 봤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한솥은 최소한의 일품메뉴 밑으로 내려가면 부속 메뉴들이 나온다. 원래는 양이 부족하거나 종류가 아쉬운 사람들을 위한 옵션이었을 메뉴들. 쌀밥 700원, 간장 30원, 양념간장 100원 등등의 메뉴들. 하루가 멀다하고 한솥을 사러 가다 보면 이런 걸 조합해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을 몇번 본 적이 있다. 진짜 맨밥에 간장만 사서 비벼 먹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그게 주식이었을까. 내가 새댁을 주식삼아(식인이 아니다. 성범죄는 더더욱 아니다) 먹고살다가 겨울철 세일이면 무슨 메뉴가 맛있을지 고민할 때에도 그 사람은 ‘세일 따위 남의 얘기지’ 같은 생각을 하며 맨밥에 간장을 먹었을까. 가끔은 사치를 부려 양념간장을 샀을까.

편의점 삼각김밥 가격도 하늘 높은줄 모르고 쳐 오르기만 한다. 아무리 튀김과 기름진 음식이 많다고 해도 적은 돈으로 메뉴를 골라가며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한솥 정도다. 이 한솥도 가격이 올랐다. 내가 한솥으로 끼니를 때우던 02, 03년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까. 나는 그 어떤 물가상승분보다 이게 가장 치명적일 것이라고 본다.

농담이 아니라 대한민국 빈곤 문제를 연구하려면 한솥 도시락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온갖 쉐프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오고 먹방 프로그램들이 넘쳐나는게 우연일까? 대세네 어쩌네 하기 전에 누군가 밥을 제대로 먹고는 있는지를 먼저 신경써야 하는게 아닐까.

지방선거와 얽혀서 한참 시끄러울때는 모두가 빡쳤지만 슬슬 잊혀져가는 얘기가 있다. 무상급식이다. 저렇게 한솥의 실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봐왔던 나로서는 밥을 집에서 먹고 오면 되지 않느냐는 헛소리를 듣고 모니터를 박살낼뻔했다. 지금 무상급식 얘기가 끝난것같은가? 홍준표는 사람 밥줄을 갖고 장난질을 치고 있고, 복지 포퓰리즘, 세금 낭비 따위의 이야기는 여전히 나오고 있다. 또 선거철이나 돼야 이슈화되겠지. 그전까진 쉐프들 얘기나 나올것이고.

세상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굶는 사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 돈 들여가며 살빼는 사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같은 책이 나온다. 빈곤층이 오히려 살이 찌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다이어트가 벼슬인 시대가 왔다. 하지만 이놈의 한국은 빅맥지수도 따라잡지 못해서 거기까지도 못간 상황이다. APEC 2025를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확정됐다고 하니 이제 헬조선 백성은 어떤 전통주와 한식 메뉴가 올라갈지 두근두근하면서 기대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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