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2일. 세대 / 케네디 암살 사건

2015년 11월 22일.

 

 

[오늘의 음악] 세대

 

벌써 두 달이나 지난 일이다. <조선일보>에 김광일 논설위원이 쓴 칼럼 한 편이 있었다. “늙는다는 건 罰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요즘도 가끔 그 칼럼을 찾아 읽어볼 정도로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

노(老)세대의 이 추악할 정도의 자기고백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특히 “지금 노동시장이 왜곡돼 있는 건 우리 세대 잘못이 아니다.”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일종에 연민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만큼 노골적인 칼럼을 중앙일간지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사실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세대 갈등으로 온전히 풀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대’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규명하는 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될 수도 있겠지만, ‘헬조선’을 부르짖는 청년들과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외치는 기성세대,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청년들과 ‘노오력’을 외치는 기성세대 사이의 갈등이 대한민국을 상징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사실상 정치적 갈등의 전반이 대부분 세대 갈등으로 전선이 확대되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솔직히 한 번 말해 보자. 지금의 청년 세대보다 윗세대, 그러니까 IMF 이전 노동시장이 막 활성화되고 있을 때는 지금보다 취업하기는 훨씬 좋았던 것이 지표로 드러나 있다. 지금과 같은 불필요한 스펙 경쟁이나 토익 점수 쌓기가 없어도 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아니 그냥 단순히 지표로 따져 봐도, 그 때는 시장에 제공되는 일자리 자체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취업 걱정에 싸여 있는 학생들이 많다.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취업은 쉽지 않다. 하나둘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불대수를 기반으로 한 컴퓨터의 원리는 이해하지 못해도 낙방에 삼키는 눈물의 쓴 맛은 모두가 알고 있다.

사실 나는 윗세대에 대해 적대감까지 품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그런 시대에 태어났던 것이고, 우리는 우리 시대에 태어난 것뿐이다. 그리고 의외로 우리 윗세대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해냈다.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에 온전한 산업화를 이룩한 것이 그들이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지금의 자유를 우리에게 준 것이 그들이다.

그들에게는 명백한 공(功)이 있다. 그것까지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김대중이 그들의 손에서 완성되었고 노무현이 그들의 손에서 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시간의 차이를 놓치고 ‘우리 때’와 ‘요즘 것’들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포기를 강요받는 아랫세대에 대한 공감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세대 사이의 소통은 온전한 이해, 아니 적어도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세대와 다른 세대의 아픔과 현실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려는 노력부터가 모든 화해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오늘의 음악, 신해철의 ‘50년 후의 내 모습’으로 골랐다.

 

 

 

[오늘의 역사] 케네디 암살 사건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했다.

1963년은 존 F. 케네디가 집권 3년차를 맞는 해였다. 당시 존 F. 케네디는 특유의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통해 상당한 평판을 받고 있었고, 국정 운영 능력에 있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지역에 따라 지지율에 차이는 있었고, 케네디는 자신의 지지율이 잘 나오지 않는 텍사스 지역으로 유세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는 11월 22일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와 함께 전용기를 타고 텍사스 주 댈러스 시에 도착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포드사에서 만든 링컨 컨티넨탈 차를 타고 댈러스 시내로 향했다. 대통령이 타는 차이니 방탄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링컨 컨티넨탈은 퍼레이드를 위해 지붕을 열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케네디는 지붕을 열고 시민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존 F. 케네디 암살 직전

▲ 유세를 벌이는 케네디 대통령과 영부인. 얼마 지나지 않아 케네디는 총에 맞는다.

 

그리고 오후 12시 30분경, 케네디가 자동차를 타고 유세하던 광장에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하지만 첫 발은 빗나갔고, 두 번째 총탄 소리가 울렸다. 이번 총탄은 케네디의 목 부분을 관통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재클린 케네디는 남편에게 손을 뻗었으나 이 순간 세 번째 총성이 울렸고 이 총알은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를 관통했다.

대통령을 태운 차량은 신속하게 인근에 위치한 파크랜드 메모리 병원에 도착했다. 케네대 대통령은 총을 맞고도 1시간가량 숨이 붙어 있었지만,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고 병원에서 이내 사망했다. 미국 정부는 얼마 뒤인 오후 1시에 케네디 암살 사실을 공식 발표했고, 경찰과 FBI는 즉각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일단 수사 결과 경찰은 범인을 잡고 범행 장소를 찾아냈다. 목격자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범행이 벌어진 장소는 인근에 있었던 엘름가 교과서 회사 건물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 건물 6층에서 탄피 3개와 총기가 발견됐다.

범인은 엘름가 교과서의 교과서 보관 직원이었던 리 하비 오즈월드였다. 그는 사건 발생 2시간쯤 뒤에 근처 극장에 숨어있다 발각되었다. 오즈월드는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나는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상을 제대로 조사할 틈도 없이 오즈월드는 감옥으로 압송되던 도중 댈러스의 나이트클럽 경영자 잭 루비에게 살해당했다. 잭 루비는 마피아의 하급 단원이었는데, 그도 가지고 있던 암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감옥에서 2개월 만에 사망했다.

 

존 F. 케네디 암살 개관

▲ 존 F. 케네디 암살 현장의 개괄.

 

존 F. 케네디가 암살되는 장면, 오즈월드가 살해되는 장면은 모두 TV를 통해 생중계되었기에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선 비어있는 대통령직에는 부통령 린든 B. 존슨이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의회는 ‘워런 위원회’라는 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케네디 암살에 대한 국정조사에 들어갔다.

사실 케네디 암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대단히 많다. 우선 오즈월드가 암살자인지, 엘름가 교과서 회사의 건물에서 발사된 게 맞는지, 총성이 3발이었는지부터 논란이 있고, 거기에다 암살자가 어이없이 사망하면서 배후 추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거기에 조사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선 케네디의 시신에 대해서는 부검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시신과 뇌는 비밀 요원에 의해서 병원에서 강제로 이송당했는데, 총알을 관통당한 그의 뇌의 경우 현재 이유를 알 수 없는 분실로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사체를 분석해야 총알의 방향 등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데, 뇌의 분실로 이런 기초 작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런 기초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케네디 암살에 대한 음모론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CIA 해체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CIA가 지목되기도 하고, 국장이었던 존 에드가 후버가 케네디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FBI가 지목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군산복합체를 운영하던 사업가 클레이 쇼가 배후로 지목되었다가 얼마 뒤 의문사한 사건도 있었다. 오즈월드가 맑시스트였던 탓에 소련 연루설이나 KGB 연루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오즈월드에게 쿠바로 망명할 계획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쿠바 배후설이 나오기도 했으며, 오즈월드가 마피아 하급 단원인 잭 루비에게 살해당했다는 점에서 마피아 배후설이 나오기도 했다. 가장 직접적으로 이득을 본 린든 B. 존슨 부통령도 배후로 지목되기까지 한다.

일단 워런 위원회는 이 범행이 배후 없는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잭 루비와 오즈월드는 일면식도 없었다고 결론짓기도 했다. 하지만 석연치않은 점이 여전히 많아, 존 F. 케네디의 암살은 지금까지도 가장 음모론이 많이 나오는 사건 중 하나가 되어 있다.

한 대통령의 죽음, 그리고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유. 솔직히 이제는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온전히 파헤칠 수는 없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진실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렸기 때문이겠지.

‘역사의 판단’이라는 말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 진실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현재를 사는 현 세대에게 주어진 의무일지도 모른다.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825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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