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 김영삼, 세상을 뜨다

많은 사람들이 김영삼을 IMF의 원흉으로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겪게 만든 사건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신시대의 김영삼에 대해선 시간의 갭 때문인지 기억들이 흐릿하다. 이해할만한 일이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김영삼
하지만 유신시대의 김영삼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투쟁력을 보유한 파괴적인 정치인이었다. 그의 행보 몇가지만 간추려 봄으로써 떠난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자 한다.

장택상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김영삼은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 거제군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당시 만 26세. 이 최연소 당선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깨지지 않을 걸로 보인다.

이승만이 무리하게 사사오입 개헌을 하면서 정권연장을 기도하자 김영삼은 당당하게 무리를 이끌고 자유당을 박차고 나와 민주당에 입당한다. 사실 이 때의 분위기는 노무현의 나홀로 삼당합당 반대를 외치는 기개넘치는 모습의 원조격이다.

4대 국회의원 선거 낙방후 조병옥의 대선을 지원한다. 거제도 멸치잡이 선단의 소유주를 부친으로 둔 재력이 많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 김영삼은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 방문객 등에게 주는 선물로 고급 멸치세트를 채택하기도 했다. 나도 이거 먹어봤는데 진짜 좋은 멸치였다. (도대체 이 얘기를 왜?)

4.19 직후 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만 바로 뒤이어 터진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인해 반정부 투쟁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 때 박정희의 군정연장 발표에 항의하면서 시위하다가 구속 수감되기도 한다.

신민당 원내총무 시절, 69년 6월인가 그럴 듯. 박정희의 삼선(이승만도 그렇고 이 독재자시키들은 뭘 자꾸 세번씩이나 해 먹으려고..) 개헌 문제로 투쟁하던 시절인데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김영삼이 괴한 두세명에게 습격을 당하게 된다. 차의 앞을 가로막고 차를 세운 뒤 김영삼이 타고 있던 쪽 문을 열려고 시도하지만 문이 잠겨 있어 실패하자 뭔가를 꺼내 차창에 던진다. 다행히 급출발해서 현장을 탈출했지만 뒤에 보니, 차의 표면을 부식시키고 아스팔트를 부식시킬 정도로 강한 질산액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이게 그 유명한 김영삼 질산테러사건이다. 만약 문이 잠겨있지 않았다면, 앞으로 얘기할 김영삼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관련을 부인했지만 사사건건 박정희의 행보를 걸고 넘어지던 김영삼 입장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사주라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질산이 초산으로 알려진 경향이 있는데 아세트산(초산)하고는 다른 질산이었던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이후 김영삼은 커터칼 테러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박근혜를 위문하러 찾아와서 굳이, “나도 (당신 아버지에게) 초산 테러를 당한 적이 있는데.. ” 라는 멘트를 날려 사람들을 아연케 했다는 후문이 있다. 멋지다. 김영삼.

김영삼의 위력은 그런 살벌한 테러를 당한 바로 다음날 발휘가 된다. 바로 국회에 가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민족반역자이고, 이 사건은 날 죽이려는 정부의 음모” 라는 내용의 연설을 한다. 김형욱은 나중에 우회적으로 김영삼에게 이 사건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전해진다.

김영삼의 위력은 1971년에 더욱 빛을 발한다. 김대중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경선에 참여하여 1차 경선에서 최다득표를 하지만 과반달성에 실패해서 결선투표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김대중에게 밀리게 된다. 1차에서 3등을 한 이철승이 김대중에게 붙은 것.

보통 이럴 때, 뒤로 물러나면서 삐지기 마련이지만 김영삼은 오히려 더욱 활발한 활동으로 김대중의 선거를 돕게 된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부정선거로 김대중은 근소한 차이로 패배. 당연히 다음 선거에서는 김영삼이 기수로 나서게 될 예정이었으나 박정희는 선거 자체를 없애 버리는 유신체제를 선포해 버린다.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김대중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해외로 망명하게 되지만 김영삼은 오히려 국내 투쟁을 선도하게 된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규탄한 사람도 김영삼 본인이다.

유신 통치의 압박으로 야당 내 변절자들이 다수 발생하게 되고 이들은 이철승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보통 이들을 “사쿠라” 라고 부르고 김영삼은 강경파의 리더로 자리잡게 된다. 요즘은 잘 안쓰이는 말이지만 “사쿠라”의 원조는 이 때의 이철승 일당을 의미한다.

한 때 박정희와 단독 회담을 통해 화해의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온건투쟁으로 노선을 바꾸려다가 박정희의 긴급조치로 구속당하는 뒤통수 맞기도 시전하게 된다. 이후 급선회하며 초강경 일변도의 투쟁을 지속하게 된다. 박정희의 배신자로서의 면모도 여러차례 확인시켜 준 사람이 김영삼이며 배신당하고도 바보같이 허허거리지 않겠다는 강렬한 면모를 보여준 사람이 바로 김영삼이다.

김영삼이 보여준 유신 막바지 승부는 바로 YH여공사건. 생존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던 YH 노조원들에게 신민당 당사를 통째로 내어주고 이를 진압하러 온 경찰에 맞서 싸우게 된다. 이로 인해 김영삼은 가택에 연금되기도 했고, 결국 국회에서 공화당과 유정회에 의해 제명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게 된다.

이로 인해 신민당 의원 전원의 의원직 사퇴라는 기염을 토하게 되고, 이 사건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지며 부마항쟁은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을 이끌어내게 된다. 약간의 논리적 비약을 첨부하자면, 박정희의 암살은 사실상 김영삼의 투쟁이 이끌어낸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이후 전두환 시절에도 김영삼은 국내에서 가택에 연금된 상태에서 단식투쟁도 하고 (단식에는 뭐니뭐니 해도 보름달 빵이 최고~ 그거 먹다가 인사하러 온 문익환 목사에게 걸리기도 했다. 개그투사 김영삼. ) 다양한 투쟁을 전개하다가 급기야는 85년 귀국한 김대중과 함께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며 87년 6.10 민주화 항쟁을 이끌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 역사를 통털어 장준하와 함께, 박정희 군사정권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사람이 바로 김영삼이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 그리고 “이 암흑정치, 살인정치를 감행하는 박정희 정권은 머지않아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쓰러질 것이다. (YH 사건 당시 김영삼의 연설)” 라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예언에 가까운 연설들을 남기기도 했다.

적어도 내게 남겨진 유신시대의 김영삼의 모습은 감히 그 어떤 정치인도 넘지 못할 진정한 투사의 모습이었으며, 그가 후일 세운 하나회 척결, 금융 실명제 등의 정책적 업적과, 삼당합당이나 IMF 초래 등의 과오, 그리고 아들관리 실패, 그리고 사상 최고로 멍청한 대통령이라는 유머러스한 비난등을 모두 섞어 평가해 봐도 절대 빛이 바래지 않을만한 멋진 정치인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이제 떠난 사람을 욕해 무엇하리, 라는 심정으로 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리고 우리 시대는 그에게 분명히 큰 빚을 졌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는 김영삼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워 물리친 대상인 그 군부독재자의 딸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불의를 보고 물러서지 않고 용맹하게 대들어 싸우던 젊은 김영삼, 40대 기수 김영삼의 기백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제 그와 함께 민주화 운동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는 후세에게 과연 무어라고 불리는 시대가 될 것인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제 편히 쉬시라.

뒤에 남은 일들은 살아남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 터이니 말이다.







4 thoughts on “투사 김영삼, 세상을 뜨다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물뚝님은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절부터 유명인이셨나요? 어떻게 멸치를.. ㄷㄷㄷ

  2. 내용이 좀 밋밋합니다 ㅋㅋ
    YH여공사건때 진압하러 온 경찰서장 뺨을
    때린 부분은 김영삼의 기개를 볼수 있는 부분이죠
    오죽하면 천하의 악당 차지철 왈
    김영삼은 배에 철판 깔았냐고 할 정도 였지요

    용감하고 담대한 평생에 걸쳐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이시대의 인파이터 ~
    3당합당도 야합이라고 비판하지만
    돌이켜보건데 3당합당의 묘수 없이는
    아마도 김영삼도 김대중도노무현도
    결단코 대통령 되지 못했을거 같네요
    지금도 이명박근혜가 되는 세상인데
    그시절은 오죽했겠습니까
    말그대로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혈혈단신 들어간 거지요

    이제 김영삼 비판 그만할랍니다
    군정종식만해도 모든 과를 넘어서는거 같아서 ㅋ

  3. YS만큼 인간적 매력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최강의 전투력과 동물적 정치감각을 겸비한 정치인은 보지 못했다. 누구도 아쉬운 점은 있지만, 진정 오늘의 한국을 있게한 우리의 히어로 중의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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