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꿉시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디폴트, 에비타Eva Perón, 포퓰리즘, 마라도나, 메시, 축구, 소고기 정도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2001년 디폴트를 선언했으며 여전히 페론주의Peronismo가 인기를 끌고 있는 나라다. 신의 손 마라도나가 “메시의 골이 내 골보다 아름답지는 않다”고 귀여운 자랑을 늘어놓는 나라,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가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나라, 수많은 청소년 구단과 프로 구단을 가진 축구의 나라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1880년부터 1930년까지 엄청난 경제 성장을 누렸고 볼펜과 헬리콥터, 만화영화와 캐러멜의 원형인 둘쎄 데 레체dulce de leche 등을 발명한 나라라는 것이다. 1976년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엄마찾아 삼만리> 원작 <아페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Dagli Appennini alle Ande>의 주인공 마르코는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는 의사 아빠와 가정주부 엄마를 둔 이탈리아 소년이다. 의사인 아버지의 수입만으로는 가정을 꾸리기가 여의치 않자, 엄마가 가정부 자리를 얻어취업이민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 일을 하며 돈을 모으지만 갈 수 없었던 마르코는 엄마로부터 소식이 끊기자 밀항을 감행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다. 병에 걸려 있던 엄마는 마르코를 보자 수술을 결심하고 같이 고향 제노바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마르코네 엄마가 왜 가정부로 아르헨티나까지 갔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정부를 하면서 버는 것이 이탈리아에서 의사(비록 무료진료소였지만)로 일 해 버는 돈보다 많았다는 얘기다. 

2015년 11월 21일, 아르헨티나 대선의 결선투표가 끝났다. 야당 공화주의제안당PRO, Propuesta Republicana의 당수이자 후보인 마우리시오 마끄리Mauricio Macri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장이 집권 여당 승리를 위한 전선FPV, Frente para la Victoria의 다니엘 시올리Daniel Scioli 후보를 이기며 2016년 3월부터 대통령 직무에 임하게 된다. 마끄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12년 간의 ‘좌파’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됐다. 

11월 21일 아르헨티나 일간지 La Nacion의 1면. '마끄리 대통령, 12년의 키르치네리즘을 이기다'라는 제목 아래 결선투표가 끝나고 마끄리가 환호하는 모습이 실렸다.
11월 21일 아르헨티나 일간지 La Nacion의 1면.
‘마끄리 대통령, 12년의 키르치네리즘을 이기다’라는 제목 아래 결선투표가 끝나고 마끄리가 환호하는 모습이 실렸다.

2003-2007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Nestor Kirchner부터 시작된 아르헨티나의 좌파 정권은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Christina Fernández de Kirchner 현 대통령이자 FPV 당수로 이어지면서 페론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펼쳐 왔다. 1946년, 1973년 두 차례 대통령을 역임한 후안 페론Juan Perón이 주창한 페론주의Peronismo는 복지를 강조하는 국가사회주의 노선으로 요약된다. 페론주의에 자신들의 제안을 더한 키르치네르 부부 대통령의 정책을 키르치네리즘Kirchnerismo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빈자와 노년층, 장애인 등 사회적 소외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아르헨티나 석유회사 YPF 국영화, 수입세를 올려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등의 정책이 포함된다.  

2016년도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끄리 후보가 시올리 후보를 54.29%로 이겼다.
2016년도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끄리 후보가 시올리 후보를 54.29%로 이겼다.

마끄리 후보는 ‘바꿉시다Cambiemos‘를 캠페인 구호로 내세웠다. 정책 노선을 바꾸겠다고 공약한 이유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의 폐쇄주의 정책, 카르치네리즘이 명백한 실패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는 관세 장벽을 높였고, 하락하는 페소화 가치를 지키겠다며 달러 유입을 인위적으로 막았다. 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었던 2010년 말, 정부는 국민 1인이 보유할 수 있는 달러를 강제로 제한하고 있었다. 은행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달러의 양이 제한되어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달러-페소를 환전하는 암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심을 걷는 중에도 좌판을 펼쳐놓고 환전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외국인인 내게 “잘 쳐 줄테니 나한테 환전하라”고 꼬드기는 사람도 많았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제로 성장에 머물러 있고 올해만 해도 인플레이션이 30%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끄리 선출자가 경제개혁을 예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디폴트 상태의 채무를 정상화해 국제 금융시장에 편입할 것과 페소 평가절하로 환율을 정상화시켜 경제성장을 이룰 것, 수출세 인하, 달러 매입 제약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마끄리 선출자가 이행할 수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한편, 크리스티나 현 대통령은 치사하게 본인의 친위그룹 깜뽀라Campora를 이용해 집권 마지막까지 권력을 홍보하고 있다. 사실 FPV의 후보 다니엘 시올리도 사실 정치 색이 옅다는 이유로 크리스티나가 지명한 사람이었고 선거운동기간엔 공영방송에서 본인들의 치적을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크리스티나도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12월 10일, 마끄리 선출자가 선서를 하면 정권 교체와 더불어 각종 개혁들이 빠르게 추진될 전망이다. 친시장주의인 마끄리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존의 경제정책을 과감히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 덕에 글로벌 자금도 아르헨티나로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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