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 포 벤데타

박근혜 정부는 상상을 초월한다. 파리의 IS 테러에 물타기를 하면서 매끄럽게 등장한다. 사자의 빈소를 다녀와 국무회의에서 기껏 한다는 말이 ‘복면 금지법’이란다. 민중 총궐기대회와 IS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란다. 이게 뭐지? 민중 총궐기를 IS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그의 정신은 제대로 된 것인지. ‘테러 방지법’은 또 어떤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정부를 대표한다는 자가 한 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인식하는 편향적 시선의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이 한국의 비애이다.

민중 총궐기의 11대 요구안을 보라. 이 나라 꼴에는 시선을 두지 못하고 개인의 트라우마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일부 표현의 자유에만 머물러 있다.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으르렁거리는 것은 52%의 지도자로서의 함량 미달을 확인하는 것뿐 아니겠나.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2005년 개봉한 SF 장르의 영화이지만 역사적으로 410년 전에 영국에서 일어난 ‘화약 음모 사건’의 가이 포크스를 빌렸다. 원작자의 메시지가 현대판으로 뒤바뀐 것은 워너브라더스에게로 넘어간 판권을 원작자로서 어찌할 도리가 있겠나. 그가 원한대로 크레딧 엔딩에 이름이 오르지 않도록 한 것을 위안으로 삼았을까. 어쨌거나 이 영화가 남긴 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가이 포크스의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 5일, 화약 음모 사건을!”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브이1

“내 캐릭터를 간단히 설명해 주지. 모습이 광대인지라 운명의 장난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있는 이 사회를 보라! 이 마스크는 값싼 허영심이 아닌 자취를 감춰버린 여론을 상징하며 또한 과거의 분노를 상기시켜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국민을 탄압하는 사악한 벌레들을 멸할 도구이다.”

영화에서 2034년의 대영제국은 극우 노스파이어 정권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이다. 통금과 비밀경찰, 독재 정부의 사건 왜곡, 방송 장악까지 그야말로 은신처가 필요한 미래의 그 어느 날을 보여준다. 어째 지나온 한국적 민주주의가 지배했던 군사정권의 독재 시대와 흡사하지 않은가. 이 영화의 브이가 현실 광장에 등장한다는 것을 테러 집단으로 인식하는 자의 정신머리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겠다.

지나온 유년기 내 귀에 들리던 록은 나를 이끄는 정서였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내 심장에 쌓여 왔고 난 그 힘으로 지금까지 지탱되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라디오를 틀면 록이 부서질 듯 튀어나오곤 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내 주변에서 소리 내는 그들은 대개는 록커였다. 요즈음 내가 다시 록 음악을 들으며 몸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내 사이키델릭은 길을 잃지 않았다. 어느 시대이건 저항은 다른 선택을 할 기회의 시작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여기까지야.” 라 하며 뒤돌아서거나 가던 길을 멈추거나 할 때, 우연히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삶의 의미’는 부여한다고 해서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겠다. 나를 어디로 시선이 향하게 했는가는 마음이었지 싶다. 대부분 시간은 마음이 이끌린 곳에서 채워졌지 싶다. 이제 마음을 모아 연대해야 할 때 아닌가.

브이3

브이2

“복면을 쓴 자는 무조건 체포하시오!”

복면 금지법이라는 발상이 가능한 한국 사회에서 영국 의회를 폭파하고 국왕 제임스 1세를 죽이려 했다가 발각돼 성공하지는 못했던 ‘화약 음모 사건’과 그때부터 저항의 의미로 기억되는 가이 포크스의 “V”를 기억한다. 공약 립 서비스  최고의 달인에게 바쳐질 행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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