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6일. 행운 / 평화의 댐

2015년 11월 26일.

 

 

[오늘의 음악] 행운

 

삶의 인과 관계는 극도로 단순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공부를 하면 시험을 잘 보고,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지고, 잠을 자면 몸이 편해지고, 연습을 많이 하면 실력이 는다. 열심히 뛰면 빨리 가기 마련이고, 천천히 가면 주변을 잘 둘러볼 수 있다. 삶의 원리가 아주 기초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나는 그리 의문을 품지 않는다.

물론 현실을 사는 우리의 입장에선 이런 베이직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원리를 왜곡시키는 인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사회 구조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악의일 수도 있다. 그리고 종종 그것은 ‘행운’이나 ‘불운’의 형태로 다가온다.

행운과 불운이라는 것의 변주는 다양하다. 흔히 ‘머피의 법칙’과 ‘샐리의 법칙’이라고 하지 않던가. 수업을 가지 않았는데 그 날 우연히 교수님이 오지 않아 수업이 취소됐다던가, 병 음료를 마셨는데 ‘한 병 더’에 당첨됐다던가. 반대로는 열심히 레포트를 썼는데 레포트 기한이 미뤄졌다던가, 어제 물건을 샀는데 오늘부터 폭탄 세일이 시작됐다던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뽑기 운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선 출생 배경부터, 누군가는 만수르의 아들로 태어나지만 누군가는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곳에서 태어난다. 살면서 누군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얻지만, 누군가는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도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해 공사장 막일로 생계를 꾸려야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안정된 사회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다양성을 존중받는 반면, 누군가는 불안정한 사회의 기류에 휩쓸려 생을 망치고 만다. 누군가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사건을 만나 크게 성장하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운에 대해서 판단해볼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에겐 행운이 많이 따른 편이었는지, 아니면 불운이 많이 따른 편이었는지. 뭐 각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말 그대로 행운과 불운은 ‘운’의 문제일 테니까.

나에게 묻는다면, 나에게는 그럭저럭 행운이 잘 따른 편이었던 것 같다. 뽑기 운도 나름 좋았던 것 같고, 살아가면서 정말이지 붙고 싶었던 시험에서는 떨어졌던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행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이 나타났던 것 같고, 실력이나 사람의 문제가 아닌 운의 문제로 무언가를 크게 망친 기억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건을 만나 때로는 크게 절망했지만 그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삶에서 어떤 부채의식을 가지려고 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행운을 누군가에게 갚기 위해 산다거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 나는 그냥 나를 위해 산다. 그 과정에서 행운이 따라와 준다면 진심으로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 방향성이, 그 행운을 다른 사람에게 갚아줄 수 있는 방향으로 향한다면 나름의 보람을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게 내가 행운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오늘의 음악, 온유의 ‘정류장’으로 골랐다. 때로는 행운과 우연이 모든 것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오늘의 역사] 평화의 댐

 

1986년 11월 26일, 평화의 댐 건축이 발표되었다.

1986년, 북한은 금강산에 댐을 건설하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공식적인 이름은 ‘임남댐’이지만, 사실 ‘금강산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댐이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댐을 짓겠다는 사실 자체로는 남한이 북한에 딴지를 걸 여지가 없었다. 물론 환경 문제와 수몰 문제는 있겠지만, 그것은 북한 당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 남한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1986년 10월 30일, 당시 대한민국 이규호 건설부 장관이 성명 하나를 발표하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대 북한 성명문>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성명에서, 이규호 장관은 금강산댐이 남한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라고 주장했다.

이 성명은 금강산댐이 북한을 거쳐서 남한으로 내려오는 물을 연간 18억 톤 정도 차단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만약 북한이 금강산댐을 고의적으로 무너뜨린다면, 200억 톤의 물이 하류로 내려오면서 서울에 홍수가 일어나 물이 63빌딩 중턱까지 차오를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금강산댐 수공

▲ 당시 방송에서 금강산댐의 수공을 주장한 영상.

 

사실 당시 북한은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 KAL기 격추 사건 등 굵직굵직한 대남 테러를 감행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거기에 남한 안에서도 5ㆍ3 인천 사태, 10ㆍ28 건국대 항쟁 등으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기도 했었다. 대내외적으로 상황이 불안한데 북한이 댐을 터뜨려 수공을 벌일 거라는 주장은 남한의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게다가 정부는 북한이 88올림픽을 막기 위해 수공을 터뜨릴 거라고 주장해, 수공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인상까지 풍기고 있었다. 각종 언론들은 금강산댐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고, 미니어처를 만들어 63빌딩 절반 높이까지 물을 채우는 장면을 보여주며 금강산댐의 위력을 과시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시민들에게 정권은 한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1986년 11월 26일, 국방부ㆍ건설부ㆍ문화공보부ㆍ통일원 장관 4인은 합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평화의 댐’이라는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이었다고 한다.

평화의 댐의 총 공사비용은 1700억 원 정도였다. 이 가운데 639억 원은 6개월 정도 모은 국민의 성금으로 충당했다. 1987년 2월 28일에 착공한 평화의 댐은, 1989년에 1단계 공사를 완료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업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결국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감사원에게 해당 사업에 대한 감사를 지시했다. 감사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규호 건설부 장관의 <대 북한 성명문>의 근거가 되었던 금강산댐의 위치와 규모에 대한 1차 보고서는 한국전력 직원 1명이 조사해 작성한 대단히 허술한 보고서였다. 정부는 이후 첩보를 입수해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정하지 않고 200억 톤이라는 건설 불가능한 수치를 과장해 발표하며 국민의 공포를 자극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금강산댐의 최대 저수 용량은 59.5톤 정도였고, 이를 방류해도 서울 한강변 일부 저지대만을 침수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현재 금강산댐은 26.2억 톤 정도의 물만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금강산댐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응하기보다는, 정보를 과장해 국민들의 불안만을 자극했던 것이다.

성금의 모금도 문제가 됐다. 일단 정부 재정으로 건설 할 수 있는 것을 성금을 받아 건설한 것 자체도 문제였다. 게다가 성금 모금 방식도 문제가 됐다. 평화의 댐 건설 당시 정부는 국민들에게 사실상 차출에 가까운 형태로 성금을 받아냈다. 학교나 직장, 각 단체에서 시민들은 평화의 댐 성금을 강제로 내야 했으며, 정부는 각 기업의 규모에 따라 최소 700만 원에서 최대 10억 원을 강제로 할당했다.

거기에 댐 건설 업체는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의 형태로 선정했다. 업체 선정에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공사비는 상당히 과중하게 지급되어 건설비를 낭비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평화의 댐 1단계 건설이 완료된 이후 북한은 왜인지 금강산 댐 건설을 중단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1999년부터 재착공해서, 금강산댐은 2003년에 완공된 상태다. 평화의 댐은 2002년부터 2단계 증축 공사를 통해 2005년에 최종 완공되었으며, 현재는 26.3억 톤으로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많은 물을 담는 댐으로 남아 있다.

 

평화의 댐

▲ 현재의 평화의 댐.

 

평화의 댐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친 가장 대규모의 사기극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처벌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방송에 나와 ‘물바다’를 떠들었던 선우중호 GIST 총장이 사과를 했던 것이 거의 유일한 유감 표명이었다.

평화의 댐은 그래도 댐의 역할을 잘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평화의 댐’이라는 상징과 함께 남은 친일과 독재의 과거사도 함께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은, 무언가 씁쓸한 감정을 남기게 한다.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835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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