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화가

도리화가

이종필 감독의 <도리화가>는 조선 고종 시대, 판소리의 대가 신재효가 제자 진채선의 아름다움을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핀 봄 경치에 빗대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단가이다. 1867년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소리꾼들을 위해 열었던 ‘낙성연’에서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여류 소리꾼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에 그 금기를 넘어서려 했던 스승과 제자의 애달픈 마음이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 영화이기도 하다.

최초의 판소리 학당 동리정사와 소리꾼들의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거대한 역사의 담론은 아니지만, 어느 시대이건 재능 있는 사람을 이끌어 주는 스승들이 있었고 그 역할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간절하다.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이 역할에 개인의 안위는 내려놓아도 좋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구세대의 권위주의와 불관용, 구태의연함은 사회를 숨 막히게 한다.

역사의 퇴행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1985년 김지하의 담시 <똥바다>를 판소리로 부른 임진택의 민중 문화 운동을 생각해본다. 그는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판소리를 민중운동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당시 청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독재에 저항하는 민중의 한이 맺힌 소리. 음악적 요인보다는 사설에 담겨있는 현실의 문제 인식 때문이었다. 한세대 가까이 지났는데 소리꾼 임진택의 <오월의 광주>가 다시 울려 퍼질 수도 있다니. 한국사회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나와 당신의 한, 억압과 분노들이 소리로 느껴지시는가.

판소리는 전승력이 완강해 본래의 특질을 잊은 듯해도 그것을 다시 살려내려 노력하는 젊은 소리꾼들의 활약은 조선 시대처럼 여전히 금기를 뛰어넘으려는 도전이다. 그들이 판소리에 ‘창작’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이유처럼 판소리 다섯 마당으로 박제화된 판소리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즉흥성과 현장성이라는 민속 음악의 본질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씨가 말라버린 한국의 정서를 잇는 소수, 공동체를 향한 선한 마음이 늘 변화를 가져온다는 믿음을 건네는 이 영화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시간처럼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그리게 한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 안에 쌓인 정서 대부분은 강자의 힘으로 밀려 들어와 출처를 알 수 없는 혼합된 느낌으로 있다. 이 영화를 보며 한국인의 정서에 녹아있는 민중의 한이 여전히 내 피를 타고 흐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게 되더라.

2000년대 이후 활동하는 판소리꾼들은 기존의 판소리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실천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다. ‘판세(판소리가 판치는 세상)’의 활동을 보면 국악을 이어가는 젊은이들의 애환과 결기가 느껴진다. 2015년 ‘복면 금지법’을 발의해 탈놀이를 생각하게 하더니만 이 영화를 보니 신명 나게 한바탕 판소리로 전 세대가 함께 할 민중의 소리가 울려 퍼지면 어떨까도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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