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효과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의료민영화를 편하게 한 번 생각해 보다가 졸지에 불쌍한 혼자가 된 느낌에 위축되고 말았다. 나는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 처지이다. 그런데 만약 의료보험에 해당하지 않는 항목의 병에 걸린다면 심각해진다. 통장 잔액을 두둑하게 갖고 있지 않다면 그냥 병원에 가는 것을 아예 생각할 수도 없는 거다. 그럼 되게 불쌍한 거네. 이런.

어차피 기대하지 않는 정부라 젖혀 놓고 살았다 하더라도 게으름으로 날씨 탓을 하며 집구석에 처박혀 있게 되니 슬픔이 밀려온다. 보건복지부의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이 발표되고 노동시민단체가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을 선포했던 1년 전 여름을 지나면서 그동안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궁색함이 고개를 쳐드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올해를 마무리해 가는 중에 또 터졌다.

정부와 제주도는 외국 영리병원을 처음으로 승인했다. 시작은 외국 영리병원 허용이지만 이것은 병원 운영을 통해 생긴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줄 수 있으므로 공공의료 상업화의 시작이 된다. 전국의 경제 자유구역에 들어설 수 있는 여지를 정부가 앞장서서 마련해준 꼴이다. 결국, 건강보험이라는 공공의료가 서서히 무너진다는 의미이고 의료비의 상승효과는 자연스레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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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치겠다. 식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를 이명박 정부 때 의료민영화에 시동이 걸렸다 해서 보았는데 또 본다. 시작부터 백수인 애덤이 자신의 찢어진 다리를 꿰매는 장면이다. 아직은 건강하지만 요즘 같아선 제 명에 못 살 거 같은데 말이지. 두 번째 등장인물은 두 개의 손가락 끝이 사고로 절단된 릭이 약지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에는 제대로 뭐가 문제인지 정리라도 좀 해 보자고. 두 해 전보단 나이가 더 먹었단 증거라며 이러다 내 삶의 유일한 즐거움인 향기로운 커피도 끊고 살아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드니까 인생이 참 구질구질해진다. 국민을 이런 느낌으로 몰아가는 정부는 제정신은 아니지. 미국에서는 대략 오천만 명 정도가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는데. 이거 하나만은 그래도 내 나라가 낫지 라는 말에 쬐끔 위로가 되긴 했다.

하지만 날마다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며 산다고 생각해 본다. 이건, 사는 게 사는 거냐고. 이거, 남 얘기였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유난히 더 실감 나게 심장을 벌렁거리게 한다. 이 영화를 보면 한마디로 미국식 의료보험제도는 지옥문을 열어 놓고 “살려줄 게, 어서 와.” 이런 거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을 정부 차원에서 하게 된 것은 과거에서 그나마 교훈을 얻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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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손가락 봉합에 18만 달러라는 견적이 나온다.

  1. 국경을 넘어야 하는 미국의 의료 제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어쩌다가 의사들과 보험회사들이 환자들의 죽음에 무책임해진 것일까? 누가 이 제도를 만들었을까?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미국의 건강유지기구는 어디서 출발했던 것이지? 이 질문에 답은 영화에서 1971년 닉슨 시절로 돌아간다.

여기서 과연 이런 제도를 누가, 왜 만드는가를 보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쁜 정부가 벌이는 국가정책들의 실체들, 그래 머리 조금 굴리면 알아차릴 수 있다. 영화 한 편만 봐도 의료가 왜 민영화되어선 안 되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인들이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로 진료를 받으러 가야만 하는 현실에 정책수립자들은 미디어를 이용했다. 국민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동하여 몰아간 거다. 우리가 지금 그 꼴 나고 만 거다. 정책수립자들에게 의료보험 수혜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는 돈이 많은 이들이니까.

보험이 없으면 특히 노인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는 거라고 이 영화에서도 말하는데 전적으로 동감했다. 돈 없어 봐 자식들도 “몰라!” 이러는데, 평생을 성실하고 그럭저럭 살아온 국민 대다수는 너무 슬픈 노년이 된다는 거다. 삶을 온전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자기 회한에 몸을 움츠리며 신께 하소연하겠지. 제발 데려가 달라고.

의료보험 문제가 심각하다면 소속 당이 어디건 간에 공약을 지킬 인간에게 찍어야 하는데 찍어 주니까 오리발 내밀고 있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 가도 우린 충분히 고민했어야 하는 거였다. 원흉은 보건복지가 국가 정책이라는 생각을 못 하게 하는 정치세력 때문이니까 그 세력을 겁줄 수 있는 뭐, 그런 거라도 시작해야 할 거 같다.

캐나다 국민도 캐나다 의료보장제도를 확립한 정치가 ‘토미 더글라스’가 나타나서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누구 없나? 없다. 나와 당신이 나서지 않으면 이 정부가 어디까지를 낭떠러지로 몰아갈 것인지는 상상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토미 더글라스는 이제 캐나다에서 가장 존경받는 특출한 한 사람이 되었다.

의료를 국가가 책임지는 나라들에는 공통으로 단 한 사람들의 위대한 시작과 그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문제는 시스템이니 잘 좀 만들게 잔소리를 계속하면서 긁어대야 하는 것이 나라의 현재를 위해 내가 할 의무인 거다. 여론을 진지하게 의식하며 합의를 해 나갈 수 있는 정치인과 정당을 선택할 기회에 반드시 동참해야 하는 이유이다.

            3.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중하층이 선거권을 얻었고, ‘금고에서 투표함으로

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 돈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영국은 이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라 한다. 전쟁 후 영토와 재정 파탄에서도 1948년 7월 15일 영국은 국민건강보험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이 사람을 살리자는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도 질문 좀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갈 사회적 합의를 끌어 낼 공론장이 절실한 것이다.

영국 보건복지 정책(NHS)에 따라 운영되는 국립병원에 있는 계산대는 의료비를 내는 수납 창구가 아니라 환자 귀가비용 배상을 해 주는 곳이다. 돌아갈 길이 막막한 사람들한테 교통비를 배상해 주는 곳이라니 정말 놀랍다. 영국을 따라가려면 아직 우리도 갈 길은 멀지만, 현재 상태로라도 지속한다면 적어도 미국처럼 병원에서 쥐여주는 택시비를 받고 택시에 실려 거리로 나오게 되지는 않을 거다.

주권이 있으면 자금은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마이클 무어의 인터뷰이가 말한다. 모든 약자가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후보자들에게 표를 던지면 민주 투쟁이 될 것이며, 이것이 바로 레볼루션! 그래, 민주주의가 가장 혁명적인 것이라고 우리도 외쳐야 한다. 나쁜 정부는 국민을 빚지게 하여 절망하게 하고, 열나게 일만 하게 만든다. 그러면 희망이 없으니까 사는 게 힘들고 귀찮아서 투표하지 않게 된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게 바로 권력자들이 쓰는 교묘한 방법이다.

  1. 수입 없고 병든 사람이니 고쳐준다네

프랑스는 환자가 정말 귀한 대접을 받는 나라, 아플 때 병원으로 오기만 하면 필요한 처방은 다 받으니까. 보험료는 중요하지 않고 무슨 조치가 필요한가가 중요하다는 거다. 기본적인 원칙 하나, 연대 책임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여력 없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생활 정도에 따라 돈을 내고 문제 정도에 따라 지원을 받는다.

현재는 점점 열악해 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프랑스의 의료보험은 국가와 기업주가 부담하는 의료보험과 개인이 부담하는 뮈티엘(Mutuelle) 등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의무적으로 들게 되어있는 의료보험은 사회보장제도 협약에 정해진 규정대로 환급을 해주기도 한다.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사회제도에서 가능할 수 있다는 거였다. SOS 의료진의 가정 방문 진료 서비스까지는 아니어도 119구급대의 긴밀한 출동이라도 확실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지는 게 부럽긴 되게 부럽다. 한평생 뼈 빠지게 일하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노년이 된다면, 그런 미래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면 지금 사는 게 너무 고되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까. 불공평을 좀 더 평등하게 바꿔 나가야 한다는 거. 하, 말은 정말 쉽다.

프랑스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건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에서 시작되어 반대를 겁내고 국민의 반응을 무서워하기에 가능하다고. 자, 프랑스인들은 거리 행진을 벌이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서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언론들이 저들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좌파든 우파든 언론의 성향대로 사실을 보도하고 국민의 알 권리에 그나마 충실하다는 것이다. 우린 뭐지?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주류 언론들이 정부의 편에 서서 국민을 질타하고 매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1. 최악이 아닌 최선을 위하여

마이클 무어 감독은 모든 국민이 무료로 병원 치료를 받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를 찾아 그 사회의 모습을 알려 준다. 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쿠바를 찾아가 의료 혜택을 받고 오기도 한다. 여러 심각한 병을 앓고 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는 9.11테러 당시의 영웅적인 미국의 구조대원들이 감독과 함께 쿠바로 가게 된다. 지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도 받지 못했던 친절한 치료를 받게 된다. 이거 진짜 가능할까 싶었다.

대한민국은 2000년 7월에 국민건강보험이 출범했지만, 개인들은 가족 구성원마다 민간의료보험을 몇 개씩은 가입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 병이 들면 마음 놓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의 가계 지출을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할 제도의 보완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앞으로는 뱀파이어 효과를 생각하며 공포를 안고 살게 되었다. 뱀파이어에게 물리면 뱀파이어가 되듯 영리병원에서 높아진 의료비는 전국을 강타하게 될 테니까.

프랑스 정부는 국민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한다.”

모두가 일어나 “인제 그만!”이라고 말할 때라고 마이클 무어는 말한다. 선진국에서 유일하게 의료보험이 없던 미국에서는 늦었지만 이제 ‘오바마 케어’가 진행 중이다. 그들은 뱀파이어 효과에서 피를 빨렸던 과거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한국 정부는 피를 빨리게 하려고 노오력을 한다. 우리는 누구를 무서워하고 있나. 보이지 않는 적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본주의’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꿰뚫을 수 없었던 것을 개인의 무지로만 돌리는 데에는 쉽게 수긍하기가 힘들다. 그 이면을 찾아 거슬러 가면 우리의 역사에서 장렬하게 숨진 ‘정의’라는 가치를 잊도록 해온 사회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를 맹신하게 하고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것을 방관하게 한, 기성세대의 이기적인 탐욕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참담한 현실,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돈과 맞바꾼 것과 다르지 않은 현실과의 맞대면을 불러온 것이다.

마이클~1

마이클 무어의 2009년 <자본주의 : 사랑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 미국의 2008년 금융위기가 갑작스럽게 맞이한 것이 아니라 예정된 것이었음을 설명해 준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 자본주의라는 인식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신성시되어 왔으나 자본주의 이면에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들이 사회적 약자의 삶을 어떻게 파괴시켜 왔는지를 보여준다.

맹목에 빠진 자본주의와의 사랑 이야기는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노조탄압과 비정규직의 양산, 청년 실업과 증가하는 자살률들이 그것이다. 경제성장의 하락과 불황에 겁 먹을 것이 아니라 질적인 성장과 불황의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 경제의 성장이 사회 공공의 영역에 고루 분배될 수 있는 경제의 민주화가 절실하다. 그 기대감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의 빈말들은 공중분해 중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43년, 2차 세계대전 중 발의한 ‘제2 권리장전’은 다음과 같다.

“우리 시대에 특정한 경제적 진실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제2 권리장전 아래 모두를 위한 새로운 안전과 번영의 토대가 신분과 인종과 종교와 관계없이 마련되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알맞은 보수의 일자리를 가질 권리, 적절한 음식과 의복과 유흥을 누릴 권리, 모든 농민이 작물을 기르고 팔아 그와 가족이 걸맞은 생활을 영위할 권리, 모든 기업인이 사업함에서 불공정 경쟁과 국내의 독점에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모든 가정이 적절한 주거를 누릴 권리, 노령, 질병, 사고, 실업 등의 경제적 공포로부터 적절히 보호받을 권리, 좋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권리, 이 모든 권리가 말하는 건 사회보장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우린 이들 권리의 이행을 통하여 인류 행복의 새로운 목표에 정진해야 합니다. 자국에서 사회보장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세계 평화도 지속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스벨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새로운 권리장전은 미국에서 제정되지 못했다. 현재의 미국은 자유시장을 통한 자본주의 국가로 세계를 향한 경제 개입을 자국의 군사력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여기서 결코 비켜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이식된 미국식 민주주의는 이미 한계점에 와 있고, 그 사례가 눈앞에서 세월호 확실하게 참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본에 잠식된 경제 체제의 시스템에 변화를 주고 정책 결정에서 자본의 유착을 떼어 낼 나의 한 표가 필요한 현재이다. 또 반복할 수는 없다.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이 했던, 씁쓸하지만 그래도 가장 희망을 담은 한마디였다. 자본주의에서 유일하게 공평한 것, ‘1인 1표’뿐이다. 1%의 그들이 두려워하는 유일한 한 가지는 99%의 이것이다.

“one Person, one Vote, 한 사람에게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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