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9일. 지나간 것 / 이구

2015년 12월 29일.

 

 

[오늘의 음악] 지나간 것

 

요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잘 나간다고 한다. 케이블 드라마가 잘 되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을 보면 조금 놀라운 감이 있다.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97년, 1994년, 1988년. 30년도 되지 않은 시점의 이야기들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역사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엄연한 역사극이다. 다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때의 역사를 다루는 시대극일 뿐이겠지.

“사는 기쁨의 절반이 추억”이라는 말은 언젠가도 한 번 인용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사는 기쁨의 절반은 추억이고, 나머지 절반은 경험이겠지. 경험은 곧 추억이 되는 거겠고,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겠지.

경험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이 아주 작은 일상의 경험이든, 혹은 여행이나 사랑과 같은 아주 중대한 경험이든, 관계없이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경험이 차지하는 비중을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추억을 곱씹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도 결코 두렵지는 않다.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성취감을 그런 방식으로 향유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언젠가 어두운 방에 앉아 흘러가는 음악과 함께 과거를 되짚는 것도 꿈꿀 만한 미래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래도 괜찮은 과거였다”는 생각이 들 때에 한해서지만 말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을 보며, 추억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하게 된다. 나야 1997년이나 1994년, 1988년의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10년쯤 뒤라면 나도 비슷한 무게의 과거를 회상할 수 있을까.

오늘의 음악,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로 골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겠지.

 

 

 

[오늘의 역사] 이구

 

1931년 대한제국의 황태손이었던 이구가 탄생했다.

여기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채야 맞다. 대한제국이라는 국가는 1910년 한일병탄조약으로 그 끝을 맞았다. 그런데 1931년 태어난 ‘이구’라는 사람이 어떻게 왕세자의 자리를 가질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이구 부부

▲ 이구와 부인 줄리안 여사

 그렇게 되면 일본이 경술국치 이후에 대한제국 황가를 대우했는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일제는 경술국치 이후 황실 일원에게 ‘왕공족’이라는 신분을 부여한다. 왕공족은 일본의 황족에 준하는 신분이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 황가의 일원은 그 계통에 따라 자신들을 ‘황태자’ ‘황태손’ ‘황사손’ 등의 호칭으로 칭했고, 이를 일제에서도 ‘이왕세자’ ‘이왕세손’ 등의 명칭으로 부르며 이들이 계보를 잇는 것을 허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하기 전, 순종 황제에 의해 황태자로 선정된 이는 흔히 ‘영친왕’이라 부르는 의민태자다. 1910년 대한제국이 몰락하고, 대한제국 황실이 이왕가로 격하된 뒤에도 이왕가의 형식적 수장은 순종이었다. 순종이 1926년 사망한 이후에는 의민태자가 형식적 수장의 역할을 맡아, 해방을 넘어 1970년까지 이왕가를 이끌었다.

의민태자 이은은 일본 제국 육군 중장의 자리까지 올랐고, 일본인인 마사코(方子)와 정략결혼을 했으나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이에 따라 이은의 조카인 이구가 대한제국의 황실 수장이 되어 1970년부터 대한제국 황실을 이끌었다. 이구는 미국에서 줄리아 멀록이라는 여성과 가족의 반대를 이기고 결혼했다.

이구는 해방 이후 한국으로 귀국하려고 시도했으나 이승만 정권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이구는 일본에 체류하며 지냈으나 역시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다시 이구의 조카인 이원을 이구의 양자로 입적시켜 2005년 이구가 사망한 이후 그 계통을 잇게 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이 계통과 다르게 이구와 남매간인 이해원을 문화대한제국 여황으로 추대하고 대한제국의 황실을 복원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대한제국 황족회’라는 단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원

▲ 이원

 

망국의 후손들이다. 그 행보가 조금이라도 상식적이면 이해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망한 뒤, 그 황가와 후손들이 택한 길은 너무나도 당연한 친일의 길이었고, 민족적 자존심과 국가적 위상을 짓밟을 대로 짓밟고선 해방이 되자 외치는 것이 황실의 권위다.

국가를 망조로 이끈 황실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비판할 의도는 없다. 그것은 이미 죽은 그들 선조의 몫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대한제국의 멸망에 대해 일말도 자신 선조들의 책임이라고 느끼지 않는 듯한 권위주의적 태도를 가졌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문화대한제국 여황”이라 칭하는 이해원이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마지막 꿈이 경복궁에 들어가 관광객을 맞으며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것을 본 적이 있다. 황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받으려면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하시라. 여전히 당신들이 황족과 황실을 운운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아직 경술국치 이후 황실의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일 뿐이다.

전제 군주제를 스스로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한 부탄의 왕실이 떠오른다. 너무 큰 기대였을까, 이 나라에서 모두의 존경과 존중을 받을만 한 상징적 인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03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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