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1일. 마지막 / 예종

2015년 12월 31일.

 

 

[오늘의 음악] 마지막

 

벌써 1년 가까이 왔다. “마지막의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오늘의 음악]이 벌써 시간을 지나고 지나 “마지막의 마지막”이라고 할 법한 날을 맞았다. 이제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글이 쌓여 있다.

열 달 동안 글에 치여 살았다. 아침에 한 편, 새벽에 한 편. 생각보다 쓰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아침과 새벽에 일정이 있으니 가운데 낮 시간은 조금 비어 있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어찌어찌 지나가다 보면 그게 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고 뭐 그런 건 아니더라.

뭐 그렇다고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않을 마음은 없다. 신년이니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지만, 그래도 이런 애매한 포지션이 늘 내 역할인 것을 뭐 어쩌겠나. 또 고민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후회하겠지만, 늘 그런 게 나의 역할이었던 것을 뭐 어쩌겠나.

아무튼 오늘은 2015년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그리고 다시, 2016년을 시작하는 날이다. 마지막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맞는 오늘의 음악, 신해철의 ‘절망에 관하여’로 골랐다.

 

 

 

[오늘의 역사] 예종

 

1496년 12월 31일, 조선 8대 국왕 예종이 족질로 숨을 거뒀다.

‘예종’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없다. 없는 게 맞다. 예종은 인종에 이어서 조선시대 재위 기간이 가장 짧은 왕에 속한다. 고로 기억나는 게 없어야 맞다. 사극 등의 방송과 역사서에서도 세조에서 성종, 연산군으로 넘어가는 데 끼어 있는 군주일 뿐이다. 주목받지 못하는 군주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막상 예종이 가진 정치적 역량은 꽤나 괜찮았던 듯 보인다. 예종 시기에 가장 중요하게 떠올랐던 문제는 ‘구(舊)공신 청산’ 문제였다.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올랐던 ‘계유정난’ 때 공신으로 책봉됐던 이들의 힘이 강해지며, 왕권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종은 세자 때부터 이런 정세에 눈을 뜨고 있었다.

특히나 계유정난 공신들은 왕을 바꾸는 정변을 한 번 일으켜본 인물들 아닌가. 예종 입장에선 그들을 편하게 놔둘 수 없었다. 우선 가장 먼저 예종은 구공신들이 선왕의 묘호로 올린 ‘신종’이라는 묘호를 거부하고 자신이 구상한 ‘세조’라는 묘호의 선택을 강행한다.

상징적 의미인 묘호를 강행 채택한 것만으로 그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남이의 옥사라고 할 수 있겠다. 세조의 곁에서 대표적으로 빠르게 출세한 인물이 바로 ‘남이’였는데, 바로 그 남이를 일단 병조판서에서 좌천시킨 후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고문 끝에 죽였다.

신권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는 이와 같은 일 말고도 그는 내치에도 힘썼다. 병영에 딸려 있는 작은 국가 소유의 땅을 일반 농민이 경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정치를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예종의 업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국대전의 완성이라 할 수 있겠다. 세조 자신이 경국대전 집필을 지시하긴 했지만 뒤로 갈수록 경국대전의 집필은 지지부진하고 있었는데, 이의 나머지 부분 집필을 명령하고 완성시킨 사람이 예조였다. 물론 예조 대에 완성은 됐지만 그의 급사로 공표가 미뤄졌고, 후대인 성종 때에 공표되면서 경국대전의 완성은 성종으로 기록되게 되었지만 말이다.

 

경국대전

▲ 경국대전.

 이후 예종은 죽기 전날까지 멀쩡하다가 하루 만에 족질로 사망한다. 족질이라는 것은 발에 난 종기를 말한다. 조선 시대 대부분의 왕이 종기로 죽었으니 그리 이례적인 사인은 아니지만, 워낙 젊은 나이와 갑자기 일어난 죽음에, 한명회가 그를 죽였다는 설도 제기되기는 한다. 근거가 없는 음모론일 뿐이니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예조의 업적과 태도를 잘 보면 엄격하고 원칙주의적인 군주였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세조는 신하들과 자주 어울리고 벗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예조는 굳이 신하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나쁘게 말하면 걸림돌이 되는 세력을 죽이고 사소한 부분에 집착하던 왕이지만, 또 좋게 말하면 직관이 있고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부분을 보는 천재형 군주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래저래 신하들에게 인기가 없었을 것 같기는 하다만, 가끔 그가 지배하는 조선의 모습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그것이 부질없는 상상일지라도 말이다.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07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