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표현의 자유, 이터널 클래시

정초부터 게임계에 난리가 났었다. 이터널 클래시라는 신작 게임이 나왔고, 그 게임 내부의 텍스트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게임 커뮤니티부터 언론까지 게임계 전체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다.

http://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60875

http://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60880

http://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60897

(자세한 정황을 연속으로 보도한 디스이즈게임 기사 링크. 정황을 정리해서 쓸까 했으나 정제된 보도만큼 좋은 설명이 없다는 생각에 링크로 대신한다. 그리 길지 않으니 한번 읽어들 보시라)

SBS 방송국 일베 사건처럼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난 셈이다. 글, 그림을 비롯해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 일베답다. 여론에 의해 신작 게임 평가가 쑥대밭이 되자 게임사는 사과문을 부랴부랴 발표했고, 사과문 수준이 미흡하자 다시 욕을 먹은 다음 재차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고도 게임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처참하다. 사람들이 그만큼 일베에 치를 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렇게 치를 떨던 사람 중의 한명이다. 헌법에 명시된 4.19를 반란 진압으로 묘사해 놓은 꼴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게임을 아끼고, 대한민국에 애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모습들을 보면 절망감이 느껴진다. 가뜩이나 게임이 사회 암적인 존재, 악으로 지탄받는 것도 짜증이 나는 판에, 이런 일까지 겹치면 대체 어떻게 게임이 문화 예술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겠나. 1년째 팟캐스트를 하면서 게임으로 과학사를 배우겠다고 용쓰는 중이지만 이런 사건 하나 터지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 수순을 밟기 전까지 정말 제정신이 아닌 나날들을 보냈었다.

완벽한 만족을 얻으려면 애초에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 어느 정도 진정을 하고 차분히 사건을 다시 돌이켜봤다. 아마 흔한 일베의 해악 중 하나로 기록되고 남을 일처럼 보였다. 대한민국이 원칙과 가치,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해 엄격하고 권위있는 나라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일이지만 그런 일은 ‘우린 안될거야, 아마’인 현실이고. 법조인들이라면 뭔가 보이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법조인이 아니니까. 사람들과 함께 분노하고, 의사를 표명하는 것 정도가 내 역할의 끝이었다.

오히려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게 된 건 표현의 자유 문제다.

표현의 자유. 추첨 1시간 전에 나 혼자 몰래 알게 된 로또 번호같은 말이다.

화끈하고, 아름답고, 섹시하다.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모두의 사랑을 받고, 모두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써먹으면 분기탱천한다. 로또는 당첨금이 줄어들 것이고, 표현의 자유는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자가 쓰면 화가 난다. 솔직히 인정하자.

오랜 독재와 언론 통제, 심지어 요즘도 다시 불거지고 있는 언론 문제 때문에 표현의 자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많다. 그런데 그 진보진영보다 표현의 자유를 더 많이 말하는 사람들이 일베다. 김대중 노무현 사진 갖다 놓고 온갖 합성질을 하고 난 뒤 말끝마다 ‘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표현의 자유’라고 같다붙이는 건 일베의 전매특허다. 헌법 전문에서 그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는 4.19를 폭동이라고, 반란이라고 말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표현 자체로는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 이렇다는 건 아니다. 정말로 국가와 시민, 공동체를 위협하는 표현들의 경우에는 강력한 제재를 받기도 한다. 독일에서 나치식 거수경례를 한다든지 하는 경우 말이다. 그럼 일베를 이런 식으로 처벌해야 할까?

사법고시 준비를 안해도, 대학에서 교양으로 생활법률을 안들어도 알 수 있는게 있다. 중학교인지 초등학교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사회시간에 ‘죄형법정주의’라는걸 배운다. 죄에 대해 벌을 주려면 법에 써있는 죄와 벌로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일베를 법의 심판대에 올린다면 무슨 죄일까. 노무현의 얼굴을 코알라로 합성하고, 축구팀 바이에른 뮌헨 마크에다 노무현의 이름을 뒤섞어넣으면 대체 무슨 죄목이냐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원칙이다. 죄 지은 놈에게 ‘너는 무슨무슨 죄를 지었다’라고 정확하게 말을 해야 처벌을 하든 욕을 하든 뭘 할게 아닌가. 일베가 저렇게 개판을 칠때 그걸 정확히 짚어서 말한 적이 대체 몇번이나 있었나.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반박, 지적이 정확하게 자리잡지 못했다. 고인드립이라는 표현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보다 듣기에 익숙한 게 그 증거 아닌가. 살인사건이라면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말할 것이고, 절도라면 사유재산, 재산권을 말할 것이다. 일베의 행태에 대해서도 어떤 가치가 손상되었고, 그 행동이 어떤 문제를 일으킨 것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아직 이런 논의가 부족하고, 오히려 감정적 소모만 심해지면서 일베에 대한 확실한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걸 해결하는 게 첫번째 과제다.

해답도 아니고, 왜 첫번째 과제냐고? 만약 명확하게 짚어서 처벌을 한다고 해도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일베는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는 점. 온라인 게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게임 내에서 가장 허무하고도 허망한 일이 욕설 필터링이다. 채팅창에 욕하지 말라고 욕설을 걸러내고, 채팅을 못하게 만들고, 욕을 쓰면 ‘사랑합니다’로 대체하는 등등 온갖 시도를 다 해봤다. 거의 모든 게임사들이. 결과는? 오히려 ‘사랑합니다’가 욕이 되고, 새로운 욕들이 창조됐다. 일베의 합성 시도를 보고있으면 정말 교묘해져서 이젠 자기들끼리도 알아먹지도 못하는 합성들이 넘쳐나는 걸 봤을것이다. 역설적으로 욕설 필터링이 욕설을 발달시키는 아이러니. 일베의 진화를 봐도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온라인 게임이나 현실 세상이나 똑같다. 아무리 때려잡고 엄벌하고 씨를 말리려고 애를 써도 저들은 ‘박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다른 형태로 교묘하게 숨어들겠지. 이번 사건도 크게 화제가 됐으니 일베는 스스로의 승리를 자축할 것이고, 여기에 게임사가 대응을 하기 시작하면 똑같은 방식으로 더 교묘한 표현(합성? 조작? 혐오물 게시? 안타깝지만 일베의 행태를 정확하게 설명할 표현조차 확정된 바 없다. 보통 이정도로 사건이 반복되면 이걸 지칭하는 개념이라도 나와야 하지 않나? 하지만 그런 개념 정의조차 별로 보지 못했다. 뭐 적을 알아야 싸움을 하지)을 할 것이다. 혐오 표현, 혐오 범죄 같은 말들이 조금씩 나오긴 하지만, 이 말들이 일상언어까지 오는데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할듯 싶다. 뭘 지켜야하는지도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 공격을 받았다고 발끈하면 제대로 대응이 안되는 법이다. 대체 나는, 우리는 일베로부터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끝없이 변화하고,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인류 역사에서 똥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면 정화조를 파야 하듯이, 일베를 비롯한 혐오 집단을 어떻게 관리할 지에 대한 최종적 답변도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꼴보기 싫다고 화만 낼게 아니라.

사건 발생 처음부터 끝까지 쳐다보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온갖 고민을 했으나 결론이 공허하게 났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여서 그런것일까? 오늘도 질문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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