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투표해야 하는가?

왜 투표해야 하는가?

/by. Widerstand

 어제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됐다. 선거 6일 전부터 모든 언론사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 보도할 수 없다. 사전선거가 시작됐다. 오늘과 내일, 어느 투표소든 신분증을 들고 찾아가기만 하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선거판의 끝이 보인다. 결단의 순간이 찾아오고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은, 유권자들의 ‘투표’와 그 표를 직접 헤아리는 ‘개표’가 장식할 것이다.

이미 사전투표를 한 사람도 있겠고, 아니면 내일 사전선거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4월 13일 당일에 투표를 할 예정인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다. 나는 4월 13일, 생애 첫 투표를 할 예정이다.

 

사전투표

 

그런데 그 역사적인 투표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내 머리 속에 하나의 질문이 스쳐가기 시작했다.

 

 “왜 투표해야 하는가?”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아마 4월 13일에는 일어나자마자 집 바로 옆에 있는 투표소에 가서 표를 던질 것이다. 하루 종일 투표율을 확인할 것이고, 개표 방송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울 것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 던지는 질문은 “나는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언과는 다르다. 그것은 단지 “내가 투표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투표소로 향하는 모두가 던져봐야만 하는 바로 그 물음이다.

다양한 대답이 등장하리라고 기대한다. 단 한 표가 당선의 결과를 바꾼 사례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우리가 투표권을 가지게 된 역사적 맥락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국민의 의무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정치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상징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설득력이 없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단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고? 아주 드문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치러진 선거가 몇 번인가. 국회의원 선거 20번, 대통령 선거 19번, 지방선거 5번. 거기다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구별로 치러지고, 지방선거는 광역자치단체장, 광역의회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기초의회의원에 교육감과 교육의원까지 뽑는다. 이걸 다 합치면 족히 수천 개의 선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수천 개의 선거 중에 한 표로 결과가 바뀐 적은 몇 번이나 있는가. 최소 수만 표가 모이는 선거에서 나의 한 표로 결과가 바뀔 가능성에 돈을 건다면, 나는 십 원 이상으로는 걸지 않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 때문에 투표를 하지는 않겠다.

 

고성군수 1표차

▲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이제까지 평등한 투표권을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 있다고? 맞다. 그들은 피 흘려 싸웠고, 나는 언제라도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피를 흘린 것은 내가 아니다. 만약 그들의 피를 빌려 죄책감과 의무감으로 투표하게 한다면, 아마 몇 번 지나지 않아 무관심의 그늘에 갇혀버릴 것 같다.

국민의 의무라든지, 정치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같은 딱딱한 이야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어딘가 꺼림칙한 마음은 휴일을 맞아 놀이동산이라도 가서 풀어버리면 그만이다. 의무감으로 점철되어 있는 투표 호소는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왜 투표해야 하는가?

만약 나에게 이런 질문이 돌아온다면, 나는 반대로 질문을 돌려줄 것이다.

 

 “왜 투표하려 하지 않는가?”

 

 

‘선거’의 의미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 모두는 세상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뭐, 어떤 한 사안에 대한 의견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의견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의견’이란 아주 거창한 것은 아니다. “이건 이래야 더 좋지 않나?”하는 약간의 경향성만으로도 괜찮다. 만약 그것조차 없는 사람이 있다면 투표는 하지 않아도 좋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둬도 괜찮다.

다만 아주 약간이라도 세상에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의견대로 세상이 굴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한 일이다.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등록금이 낮아지면 좋아할 것이고,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등록금이 높아지면 좋아할 것이다.

 

등록금 추이 2001-2010

▲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

 

선거는, 그 ‘의견’을 수합하는 과정이다. 수많은 정당이 각자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발표하고, 거기 맞춰 사람들은 각자 어떤 정당, 어떤 후보자와 더 잘 맞는지 판단을 한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투표를 하고, 당선된 정치인들은 약속한 대로 정치를 한다. 이것이 ‘선거’와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의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싶어 할까? ‘의견이 없는 사람’은 제외하기로 이미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투표하지 않는 이유는 둘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누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둘째, 내가 뽑는다고 해서, 그 정치인이 약속한 대로 행동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두 가지 판단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그것은 정치에 많은 관심이 있거나, 정치학을 깊게 공부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한 가지 의견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안에선 ‘가 정당’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안에선 ‘나 정당’과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정당들은 자기 생각을 꽁꽁 숨기고 안 보여주기도 한다. 선거 공보물로는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정치인들을 믿을 수 없는 것도 다들 마찬가지다. 이건 정치혐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치를 혐오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정치인을 신뢰하지는 않으니까. 그래서도 안 되고 말이다. 특히 신인 정치인의 경우라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파다하다.

 

박근혜 반값등록금

▲ 공약 따위 개나 줘 버리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이 두 지점에서 옳은 판단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고민 따위 걷어차고 투표하지 말자!”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딱히 옳은 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

국가의 중요한 일이고,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고, 판단에 착오를 범하면 안 되고, 이런 복잡한 고민들은 다 버리고 생각해도 된다.

모든 사람들은 때로 틀린 선택을 한다. 투표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믿지 말아야 했을 정치인을 덜컥 믿어버리기도 하고, 완전히 생각이 다른 정당을 나와 비슷하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당신과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때로 그런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정도의 오판에 크게 부담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 오판의 가능성 때문에 모든 것을 놓아버릴 이유는 없다.

 

말했듯 우리 모두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정말 그 의견이 절실하고 내가 충분히 적극적이라면, 직접 출마를 해도 된다. 그래서 직접 법을 만들고 정책을 입안할 수도 있다.

다만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거나, 당선의 가능성이 희박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남아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대단히 합법적으로 당신이 그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청원을 넣을 수도 있고,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찾아 시민단체 활동을 할 수도 있다. 1인 시위를 하거나, 큰 집회에 참가할 수도 있다. 헌법 소원을 넣어도 되고, 심지어는 그냥 옆 사람 붙잡고 설득할 수도 있다. 모두 법이 보장하는 사안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보장해주어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촛불집회

▲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 가장 기초적인 형태가 ‘투표’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기표소에 가서, 투표를 하고, 나오면 된다. 물리적으로 요구하는 시간은 그게 전부다. 심지어 투표일은 공휴일이다. 만약 회사에서 나오라고 하면, 투표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해도 된다. 거부한 고용주는 무려 징역형까지 가능하다.

‘투표’라는 것은 그래서 대단히 간단하고 쉬운 행위다.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행위다. 얼마나 쉬우면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매번 꼬박꼬박 참여할 수 있겠는가?

누구를 찍을까 고민하는 것도 그렇게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신중한 것은 좋지만, “복잡하니 찍지 말자”로 결론이 흘러갈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오직 당신의 의견이다. 그게 복잡한 고민의 산물이든 아니든 말이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그리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하니까. 심지어 당신이 누구를 찍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다른 사람 찍었다고 거짓말을 해도 알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말했듯 당신의 한 표로는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당신이 찍은 사람이 당선되어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면, 그건 당신의 책임이 아니라 그 사람을 찍은 모든 사람의 책임이다. 만약 그 사람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서, 그 사람을 찍은 모든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당신은 아마 ‘책임져야 할 사람의 명단’ 중 2만 번째쯤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표를 던진 건 당신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욕하는 대상은 그 정치인일 것이다! 심지어 4년만 지나면 그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진다. 당신이 표를 던졌다는 이유만으로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은 아무것도 없다.

투표는,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그러면서도 최선의 일이기도 하다. 어차피 4월 13일 하루, 세상을 바꿀 힘을 아주 약간이나마 가지고 있는 것은 투표용지밖에 없으니 말이다.

 

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투쟁의 시대에서 투표의 시대로 바뀌어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지만 투표는 여전히 일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간단하고, 법이 보장해주고, 지성인인 척 할 수 있고, 별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반문하겠다.

 

 “왜 투표하려 하지 않는가?”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27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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