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유명 시뮬레이션 게임인 프린세스 메이커 3편에는 특이한 상품이 있다.

환한미소. 가격은 0G.

smile

게임 속 딸의 생일 선물로 환한미소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때의 연출이 많이 회자된다. 어찌 보면 부모자식간 훈훈한 광경일 수도 있지만, 돈이 쪼들려서 궁핍의 절정을 묘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3편을 플레이한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이유 역시 게임 속의 가난과 부유를 오가는 모습을 표현한 장치 때문이었다. 게임 제작자의 센스가 돋보인다고나 할까.

그런데 한참이 지나고 난 이후에 이 환한미소가 왜 들어갔는지 듣게 됐다.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패러디했다는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찾아봤다.

여러 곳에서 비슷한 마케팅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일본 맥도날드의 마케팅이었다. 스마일은 무료라고 하던 마케팅.

단순히 친절을 의미하는 광고라고 생각하기엔 후폭풍이 상당히 컸다(이런 문구, 말 한마디로 난리가 난 대표적인 사례로 파맛 첵스, 토륨주괴 사건이 있다. 역시 기획과 실제는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실제로 스마일 주문을 해보는 사람, 맥딜리버리로 배달을 시켜봤다는 사람 등등. 당연하다는 듯이 패러디도 쏟아져 나왔고, 프린세스메이커에까지 등장한 것이다.

시니컬한 비판부터 패러디까지 무료 스마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이 소재가 참 씁쓸하다. 웃는다는 것도 노동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맥도날드에 무료인 물건은 많다. 화장실 휴지, 세면대 물, 의자와 테이블 빌려쓰기, 빨대, 쓰레기통 이용 등등(물론 이런 것들도 속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노동의 산물이다. 휴지 리필, 세면대 청소, 의자와 테이블 청소, 빨대 리필, 쓰레기통 청소까지. 그리고 이런 것에 대한 대가는 고스란히 다른 상품의 가격에 다 들어있고). 그런데 왜 하고많은 것 중에 미소를 무료라고 마케팅을 했을까.

서비스업이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사업 전략일 수는 있다. 누구든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그걸 내놓으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상품은 가격을 지불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을 것이 예정된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수많은 광고가 짜증나지만 결국 최종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는 것. 그런데 종업원의 웃음을 상품으로 배치해 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가 문제다.

틈만 나면 나오는 얘기가 있다. 괜히 인상쓰지 말고 좀 웃고 다니라고. 웃을때보다 인상쓸 때 근육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니까 얼굴이 빨리 주름지고, 더 힘들다는 말까지 튀어나온다.

현실은 어떤가. 유명 테마 파크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웃다가 토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얼굴에 경련이 올 때까지 웃는 연습을 시킨다는 경험담들. 온갖 진상질과 갑질을 일삼는 ‘손님 아닌 손놈’ 앞에서도 웃으려면 사람이 미친다. 이런 걸 두고 감정노동이라고 한다.

감정 노동은 감정 상품이 되어야 할까? 굉장히 애매한 부분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선택권도 없다. ‘친절한 서비스를 원하십니까, 무뚝뚝한 서비스를 원하십니까? 친절한 서비스에는 10% 할증이 붙습니다’같은 거 본 적 있나? 나는 본 적이 없다. 사업체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친절은 측정이 가능한 수치일까? 혹독한 서비스 교육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수요 조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비자의 요구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도 복잡하다. 그저 ‘고객에 대한 친절은 절대적인 것’이라는 목표 하나만 놓고 극한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친절 경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기계는 날이 갈수록 인간의 노동 영역에 파고 들어오는데, 알파고같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빨리 발전해도 인간의 고객 응대 영역에 들어오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테니까. 대형 마트를 생각해보자. 도난 방지는 이미 기계로 대체되었고, 외부 상품 반입을 막거나 하는 형태로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하루에 외부 상품 반입을 막아봤자 대체 몇 번이나 막겠나? 결국 그들이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해맑은 목소리로 머리 숙여 인사하며 웃는 일이다.

이것도 고용 창출이니 그들의 일자리를 위해서라도 고객으로서 목에 힘을 주고 다니며 친절을 강요해야 할까? 아니. 나는 그 친절 요구 수위를 낮출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해괴한 문법의 대명사로 불리는 ‘서비스업형 높임말’에 항의할 것을 주장한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같은 것 말이다(현실은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반말했다고 클레임이 들어온다고 하더라).

분명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서비스업이 문제가 되던 때가 있었다. 해외 선진 사례를 보면서 친절이 경쟁력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한국을 보면 친절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너무 많다. 그리고 이런 친절 수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사회 전체의 노동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다들 그런 방향으로 가면 내가 일하는 곳에서 나도 친절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면 사회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나도 사는게 팍팍해진다. 내가 어딘가에서 진상을 부리고 종업원을 괴롭혔다면, 그 종업원이 내 일터에 손님으로 오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평생에 한번은 겪을 일이다.

밥을 먹으러 갔으면 돈을 내고 밥을 먹자. 옷을 사러 갔으면 옷을 사자. 웃음을, 친절을, 종업원의 정신력을 사지 말고, 종업원을 괴롭히는 과잉 친절을 불매하자. 가뜩이나 팍팍해지는 세상에 그나마 세상의 긴장을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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