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의 비열함

강남역 노래방 살인사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했고, 분석 시도가 있었다. 나 스스로도 생각이 한참동안 정리되지 않았었고, 대체 무슨 얘길 해야 할까 오래 고민했다. 그저 스스로 고민하고, 조심하고, 조금이라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원론적 결론만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특이한 경험을 한 것이 떠올랐기에 기록으로 남겨둔다.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자, 특히 성추행범의 비열함에 대한 이야기다.

예전에 트위터에서 어떤 남성의 경험담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머리를 길게 길렀을 때 치가 떨리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지하철이나 대중교통만 탔다 하면 어김없이 엉덩이며 몸을 더듬어오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더라는것. 머리를 기르기 전엔 한번도 겪은 적이 없는 일이었는데, 오직 머리 길이 하나 변했다고 세상이 자신을 아예 다르게 대하더라는 것이다. 집적대는 그 손을 잡아 뿌리칠 때의 악력만으로도 남자인 것을 알아채고 어이없어하는 반응들을 봤다고 한다. 대체 누가 어이없어야 할 상황인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분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보아 머리 길러본 남자들은 한번씩은 겪는 일인가보다.
이분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보아 머리 길러본 남자들은 한번씩은 겪는 일인가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에서 끝나겠지만, 나는 관련된 다른 경험이 있다. 나도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나는 남자다).

문제는, 내 키가 180cm라는 것. 지금은 90kg에 육박하는 중이라 살을 빼야 한다는 걱정을 하고 있지만, 한참 머리를 기르던 군입대 전 시절엔 몸무게가 60kg이었다. 입영 신체검사에서 체중 미달로 2급 판정을 받았으니 엄청 말랐던 셈.

나도 여자로 오인받은 적은 많다. 길을 가다보면 뒤에서 길을 물어보려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가씨라고 부르는 경우도 수없이 많았다. 심지어 여자친구가 본 나의 첫인상은 ‘엄청 쿨하고 스타일 좋은데 몸매가 좀 아쉬운 언니’였다(물론 여자친구는 몇 분 후 내 목에서 ‘저기 있을 리도 없고 있어선 안될 무언가’를 찾아내면서 같이 있던 친구들과 함께 경악하긴 했지만).

shock&terror
얼마나 놀랬을까…

하지만 성추행범들은 귀신같이 날 피해갔다. 길을 묻는 사람들이 여자로 볼 정도였으니 분명 나를 여자로 판단한 범죄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싹 피해서 갔을까. 나는 한번도 성추행을 당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앞서 언급한 남성은 키가 작아서 그런 경험을 했고, 나는 키가 커서 예외였던걸까.

애초에 사회적인 남성 성욕의 근간에 ‘여성의 작은 키’가 있나? 만약 그렇다면 그것 때문일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들이 약자만 노려서 그런 짓을 하고 다녔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정확히 약자를 노린다. 덩치가 크거나, 자신이 불안감을 느낄 여지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저 신 포도 취급이다. 자신의 욕망 기준에 일부 맞아떨어지더라도 위험성을 느끼고, 깎아내리기를 하는 것이다.

sour grape

이런 판단이 서고 난 후, 여자를 보면 욕망 조절이 안되네 같은 개소리는 확실하게 무시할 수 있게 됐다. 욕망을 합리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약자만을 골라서 움직이는 그들에게는 티끌만큼의 동정도, 공감도, 이해도 하고싶지 않다.

‘남자는 욕구를 참을 수 없는 존재라서 여자를 보면 충동적으로 통제력을 잃는다’같은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꼭 들려줘라. 거 통제력 잃는 조건 한번 까다롭다. 성별 따지고, 키 따지고 조건 볼 거 다 봐가면서 상대를 괴롭히는데 대체 뭐가 충동적이고, 뭐가 통제력을 잃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2 thoughts on “성추행의 비열함

    1.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지하철 자리 안비켜줬다고 우산으로 폭행당한 적이 있다는 경험도 어린 여성들에게 훨씬 많고, 저는 그런 일을 한번도 당한적이 없거든요. 참 집요하게 약자를 노리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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