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과 오늘

산업혁명과 오늘

 역사 사회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무엇일까? 역사라는 것이 어차피 사후 평가기 때문에, 사실 모든 숫자는 어떻게 끼워 맞추기만 하면 해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언제나 인구론 쪽에서 나오는 것 같다. 왜, 소련의 멸망을 예견한 유일한 사회학자는 ‘에마뉘엘 토드’라는 인구학자였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사실, 중세에서 근대까지 유럽 인구는 한참동안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한 자녀는 두 명 남짓이었다. 평균으로 따지면 2.1명에서 2.2명 정도 됐는데, 이 0.1~0.2 정도 되는 근소한 차이는 몇 번쯤 유럽 대륙을 쓸어나갔던 전염병에 의해서 상쇄되었다.

사실 유럽의 인구가 증가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만한 충분한 식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종종 수십 년 동안 한참이나 인구가 증가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러고 나면 꼭 뒤에 흉작이 들어 자연스럽게 인구가 조절되곤 했다. 우리는 ‘인구 조절’이라는 간단한 말을 썼지만, 따지고 보면 대규모 아사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흑사병

 

결국 유럽 인구의 그래프는 상승과 하강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평시에는 인구가 서서히 증가하다가, 전염병이나 기근이 닥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이다.

사실 전쟁은 인구 감소에 직접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아직 전면전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이라, 전쟁 중에 칼에 찔려 죽는 사람의 숫자가 유럽 인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었다. 다만 전쟁 중에는 전염병이 훨씬 잘 퍼지고, 군대 유지로 인해 세금을 많이 걷어가거나 농지가 황폐화되면서 기근이 발생하기는 했다.

그렇게 보면, 굶주림은 인간에게 언제나 일상이었다.

이런 자연스러운 균형은 18세기까지 별다른 무리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18세기쯤 되면 이 인구 조절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유럽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데도, 사람들이 더 이상 죽어나가지 않는 것이다. 인구의 증가세는 오히려 가속화된다.

의료나 위생에서의 발전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경에서의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이 시기 농업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벌어졌다.

첫째, 신대륙에서 감자와 옥수수가 들어왔다. 흔히 ‘구황작물’이라고 하는 작물로, 이들은 척박한 토양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식물들이다. 흉작이 들었을 때에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기를 수 있다.

특히 옥수수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밀은 한 알을 심었을 때 20-30알 정도를 수확할 수 있는 반면, 옥수수는 200-300알 정도의 수확이 가능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빵을 먹지 못해 죽을 일은 없었다. 옥수수를 먹으면 되니까.

 

옥수수

 

둘째, 농업 기술에서 혁신이 일어났다. 흔히 ‘농업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중세 사람들은 ‘삼포제’라는 농업 기술을 활용했다. 유럽이 흔히 먹는 ‘밀’이라는 작물은 상당히 많은 지력을 필요로 하는 식물이다. 요즘이야 화학비료도 있고 농약도 있지만, 그 때에는 그런 게 없었으니 무엇보다 ‘지력의 유지’가 밀 농사의 핵심이었다.

지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가장 좋은 방법은 비료를 쓰는 것이다. 말했듯 당시에는 화학 비료가 없었으니, 비료는 곧 동물의 배설물을 의미했다. 그런데 그러려면 동물을 키워야 하고, 그러려면 또 많은 양의 목초지가 필요했다. 비료를 만들자고 농경지를 목초지로 바꿀 수는 없으니, 사람들은 그냥 농사를 짓지 않고 한참 동안 땅을 그냥 놓아두는 방법을 선택했다. 결국 이들은 지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땅을 ‘봄에 농사짓는 땅’ ‘가을에 농사짓는 땅’ ‘휴경지’로 나누어 번갈아가며 농사를 지었다.

 

삼포제

 

그런데, 18세기쯤 오면 이 삼포제에 변화가 생긴다. 삼포제 자체가 훨씬 더 정교하게 진화한 것은 물론이고, 동물을 먹이면서도 지력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클로버’나 ‘순무’ 같은 작물을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다. 휴경지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휴경지에는 클로버나 순무를 심고 동물들을 사육하면 되니까.

농업의 생산량이 그렇게 획기적으로 뛰어올랐고, 사람들은 더 이상 아사할 필요가 없었다. 인류를 늘 괴롭혀 왔던 아사의 굴레에서 일대 탈출의 기운이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완전히 아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농업 혁명과 구황작물 도입에도 한계는 있었으니까. 인구가 더더욱 많이 증가하면, 어쨌든 인류는 다시 또 한 번 아사의 물결에 휩쓸려야만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사건이 더 벌어진다.

상상해 보자. 원래 하루 종일 일해서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벌던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제 생산성이 늘어나면서, 하루 종일 일하면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여유 있게 벌 수 있다. 약간의 비축분 정도야 저장해 두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이 남으면 어떻게 될까. 시장에 가져다 팔면 된다.

당시 유럽은 어느 정도 시장 경제가 발달되어 있던 상태였다. 최소한 농민들이 나가서 밀을 팔 수 있을 정도는 됐다. 이들은 나가서 밀을 팔았고, 대가로 귀금속을 받았다. 주로 은화였다. 이 은화를 쌓아두지만은 않았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사들였다.

이맘때쯤 중세 유럽의 서민 가정에는 다양한 가구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달력이나 거울과 같은 ‘사치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들의 생활은 이전보다 윤택해졌다.

이걸로 끝일까? 아니다. 시장경제의 맛을 본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하기 시작한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이들은, 노동 시간을 늘리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노동 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꼭 농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결국 이런 추세는 도시에까지 확장되고, 농업 노동자를 포함한 유럽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시장에 팔기 위한 물건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이걸 ‘근면 혁명 (Industrious Revolution)’이라고 부른다.

 

4E1020.29 COLONIAL CLOTH MAKERS, 18th C.  Carding, Spinning, and weaving woolen cloth in an 18th century American household: drawing, 19th century.

 

이렇게 되면 유럽 사회 전체가 가지고 있는 부의 양이 늘어난다. 유럽 사회는 농업 혁명에 이은 또 한 번의 혁명을 겪었다. 이제, 유럽이 아사 없이 품을 수 있는 인구의 숫자는 조금 더 늘어났다.

 

 

하지만 근면 혁명의 영향력 역시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노동 시간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는 거니까. 이 사회가 가질 수 있는 부의 양에는 한계가 있었고, 인구가 더 늘어난다면 다시 인류는 아사의 굴레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사건이 벌어진다.

우선 근면 혁명이 발생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잉글랜드에서 농업 인구 비중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놀라운 수준이었다. 사람들의 절반이 농사를 짓지 않았음에도 먹고 살 수 있었다. 도시에는 일자리가 있었고, 그 일자리에서 돈을 벌면 식량은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임금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노동력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 도시 중 일부 지역에는 이미 선진적인 금융 체제가 자리잡고 있었고, 자본력을 대줄 수 있는 은행이 발달해 있었다. 교역로도 대단히 발전한 수준이라, 운송료도 많이 받지 않고 농촌의 식량을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었다.

핵심이 된 지역은 잉글랜드, 특히 런던이었다. 런던은 이 모든 조건을 한 몸에 가지고 있던 땅이었다. 토지도, 노동도, 자본도 싼 값에 구할 수 있었던 땅. 주변에 석탄 광산이 많아 동력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충분히 실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실패해도 얻는 패널티가 적었으므로.

그리고 한 차례의 실험이 있었고, 그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산업혁명이었다.

‘산업 혁명 (Industrial Revolution)’은 산업의 모양새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기계의 발명과 특허의 발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기계는 운영비가 저렴했을 뿐 아니라, 때때로 물건의 품질도 혁신적으로 개선시켰다. 기계의 등장은 사소한 원가의 차이나 운송비의 차이 정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혁신이었다.

 

산업 혁명

 

이제 생산성은, 이전 두 차례의 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뛰어올랐다. 인류는 아사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산업혁명의 본질은 생산성의 증가였다. 농업 혁명이나 근면 혁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효율성이 이전의 두 혁명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을 뿐이었다.

산업혁명 이전과 현대에서 종종 유사성을 발견하곤 한다. 혁명, 이제는 아사의 위협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하지만 인구가 늘어날수록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불안감의 엄습.

200년 전의 인류는 산업혁명으로 그것을 이겨냈다. 그 혁명의 힘으로 200년 넘는 동안의 인류를 해방시켰다.

하지만 이제는, 그 동력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자리의 끝없는 감소, 전 인류적으로 나타나는 서로에 대한 증오, 극우의 득세, 기계로부터의 위협, 철학의 실종. 21세기가 문을 연 지 20년도 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세기 말에 서 있는 기분이다.

200년 전 이맘때에는 산업혁명이 벌어졌다.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총동원한 혁명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혁명의 가능성이 있는가. 산업혁명과 같은 거대한 자원 혁명은 불가능하다. 농업에서의 혁신도 크게 벌어질 수 없고, 더 이상의 근면 혁명도 불가능하다. 애초에 그런 것들이 인류에 거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는 이미 지나버렸다. 또한 우리는 지구 위에 놓인 자원에 대해서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으며, 토지도 자본도 노동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어쩌면 이제 다시,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류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 이 글의 참조 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43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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