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의 차례다: 혐오 사회의 중심에서, ‘일베 조각상’에 대한 단상

이제, 우리의 차례다

혐오 사회의 중심에서, ‘일베 조각상’에 대한 단상

 홍익대학교 정문에 거대한 조각상이 등장했다.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하 ’일베‘)’를 상징하는 손모양을 조각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조소과 4학년 홍기하 씨가, ‘환경조각연구’ 수업의 과제로 제작해 출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30일 설치된 이 작품은 6월 20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홍익대 일베 조형물

 

조각상은 설치 직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인터넷 상에서도 논쟁이 벌어졌고,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계란이나 음료수를 던지기도 했다. 자진 철거를 요구하고 조각상을 비판하는 종이쪽지도 붙었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는 “작가는 작품의도를 설명해주기 바란다”며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홍기하 씨는 곧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홍 씨는 “‘일베’를 옹호하려는 것이냐, 비판하려는 것이냐 논란이 있는데 그런 단편적이고 이분법적 해석을 위한 작품은 아니”라며, “‘일베’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현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실재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재하지만 실체를 보이지 않는 ‘일베’를 실체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처음 작품이 설치된 직후, 설치 뒤에 부수는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홍 씨는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학생들이 철거를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작가로서 작품을 철거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일베’가 어떤 커뮤니티인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일베는 여성에 대한 혐오, 특정 지역에 대한 폄하, 정치적 평향성, 민주화 운동에 대한 모욕, 역사 왜곡이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심지어 이런 행동이 범죄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를 상징하는 거대한 조각상은 그 존재만으로도 불쾌감을 일으킨다.

사람들에게 일베는 불쾌한 존재다. 드러내서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캠퍼스 한복판에 세워진 작품을 보고 얼마든지 불쾌해할 수 있다. 큰 피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작품에 계란과 음료수를 던지는 행위도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홍익대학교 학생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철거하라는 요구도 가능하다.

흔히 이 작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표현에 대한 비판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쾌하면 불쾌하다고,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또한 ‘표현의 자유’와 ‘공연의 자유’는 다르다. 이 작품이 설치된 곳은 홍익대학교 교정 한복판, 지나가는 사람 모두가 ‘봐야만 하는’ 공간이다. 공공장소다. 이런 경우, 다수의 불쾌감이 유발된다면 공동체 차원에서 얼마든지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그것이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고, 그것이 윤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작가는 이것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베’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일베’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렬하다. 불쾌감에 가려 작가의 의도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일베’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대중 앞에 세울 때는,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어쨌든 감상자의 몫이다. 그리고 감상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작품은 불쾌하다. 작가가 불쾌감이 아니라 성찰을 의도했다면, 이 작가는 무능하다. 작품 앞에 서서 성찰할 수 있는 기제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작품은 불쾌하며, 무능하고, 모욕적인 작품이다.

 

홍익대 일베 조형물 (1)

 

 

그런데 여기서, 조금 다른 시선을 선택해 보자. 작품이 사회에 던져진 이상 작품은 감상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 느껴지는 불쾌함은 온당하지만, 그 불쾌함을 조금 억누르고 작품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조금 더 진행해 보자.

말했듯, 사람들에게 일베는 불쾌한 존재다. 지역 폄하, 정치적 편향성, 혐오발언 등은 누구에게나 불쾌감을 일으킨다. 특히 이것이 범죄로 이어지며, ‘실재하는 공포’로 확대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우리 곁에 있는 일베”를 부정할 수 있을까. 일베 회원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사법 당국에 의해 처벌받아야 한다. 일베 회원이 혐오발언을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비판받아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안의 일베’를 부정할 수 있을까.

우리 ‘안’에는 혐오가 존재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를 혐오하고 있다. 언제나 혐오하는 자는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여성에 대한, 소수자에 대한, 약자에 대한 차별을 우리는 은밀하게 자행하고 있다. 무의식에 깔려 있는 혐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각하고 인정해야 할 문제이며, 늘 고민하며 고쳐가야 할 문제다.

우리 ‘곁’에도 혐오가 존재한다. 그렇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혐오를 자행하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일베는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우리 곁에선 그 민낯을 감춘다.

대체 왜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혐오의 늪에 빠질까. 그들은 어째서 누군가를 증오해야만 삶의 만족을 얻을까. 대체 어디에서 분노의 에너지가 기인하는 것일까. 우리는 제대로 질문조차 던질 수 없다. 그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흔적조차 알 수 없으므로.

‘우리 안의 일베’와 ‘우리 곁의 일베’는, 타인과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선 반드시 성찰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지 않았는가, 내 곁의 누군가가 실은 혐오범죄의 가해자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만 한다.

성찰하지 않는다면 일베와 우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홍익대 일베 조형물 계란

 

 

그렇게 보면 작가가 일베를 옹호하느냐 옹호하지 않느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이 작품은 일베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일베를 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상대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 왜곡된 분출에 관한 문제다.

일베 사이트에 아이디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며, 어디 있는지 알 수조차 없는 혐오범죄의 가해자가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반성이 중요하다. 일베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말했듯 우리는 얼마든지 이 작품을 보고 불쾌할 수 있다. 일베의 상징이 대학 캠퍼스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대단히 모욕적이기도 하다.

불쾌함을 느끼고, 이 작품을 비판하고, 계란을 던질 수 있다. 철거를 요구하는 것도 온당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이 작품에 대해 고민해볼 수도 있다. 우리 안의 일베에 대해서 불쾌해볼 수도 있다. 우리 곁의 일베에 대해서 모욕감을 느껴볼 수도 있다. 작품 자체가, 그런 고민을 끌어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방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지만 말이다.

일베가 실재하는 상황에서, 일베의 상징을 교정 가운데 세운다는 것은 일베 회원들에게는 오히려 응원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오히려 조장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일베가 실재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이 탄생할 이유도 없다. 결국 그것조차 그 작품을 바라보는 공동체가 껴안아야 할 문제다. 단지 일베 회원이 작품을 보며 인증샷을 찍고 낄낄대며 즐긴다면 작품의 의미는 딱 거기까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일베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품을 보며 일베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성숙해진다면, 작품은 거기까지의 의미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일베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 된다.

작품의 의미는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결정한다. 이 작품이 그 정도의 역량을 가졌는지는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HATE

 

 

이 작품의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이다. 일베란 어디에 있는가. 대체 이 사회에 만연한 ‘일베성’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일베는 대한민국 인터넷 사이트 중 30위권의 트래픽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 중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 증오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탄생했는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베의 에너지를 진지하게 분석하려는 시도가 우리 사회에 몇 번이나 있었는가. 그런 의미에서라면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작품의 제목이 일베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석일 수 있다.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더 많은 고민과 분석이 필요하다. 일베의 원천을 알아야 대책을 세운다. 폐쇄든, 처벌이든, 보다 장기적인 해결책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 제대로 된 분석과 대책을 통해야만 일베와 그 뒤에 숨겨진 사회 전반의 혐오를 해소할 수 있다.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내려도 좋다. 고민과 성찰을 할 수도 있고, 불쾌해할 수도 있다. 계란이나 음료수를 던질 수도 있고,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망치로 부술 수도 있다. 학교 입장에선 공식적으로 철거할 수도 있다. 혹은 그저 일베 회원들이 사진이나 찍고 즐기기나 하는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다.

감상자가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작품의 의미를 규정한다. 규정하기에 따라 이 작품은 대단히 불쾌한 작품이 될 수도, 일베를 상징하는 작품이 될 수도, 혹은 사회적 논의를 성숙시키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감상이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 작품이 가진 그릇은 대단히 작다. 하지만 그 위에 넘치도록 성숙한 논의를 부어내는 것도, 대중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무능하고 불완전한 작품을 어떻게 완성시킬지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회의 몫으로 남아 있다.

 

예술 감상

 

 

 

※ 이 글의 참조 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47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7 thoughts on “이제, 우리의 차례다: 혐오 사회의 중심에서, ‘일베 조각상’에 대한 단상

  1. 일베를 아는사람이 없는게 아니라
    진보적인 진영에서 일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것이죠.
    글중에 써진 트래픽 30위? 사이트의 그 엄청난 회원들을
    알지도 못하면서 사회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것 부터가 답이 없는것이죠.

    대한민국 진보가 가망이 없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으쌰으쌰 잘될거 같아도 선거 결과만 까면 폭망인게 자신들의 그룹이 소수인줄 모른다는것과
    다수가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한다는것이죠.

    어떤 진보사이트가 일베의 트래픽을 넘길만큼 영향력이 있나요?
    물론 지금이야 무시할수도 있는 수준이겠죠. 지금 30대만 되도 영향력이 적으니깐요.
    그러나 지금 20대 10대의 사회적 절망감은 지금의 30대와 다릅니다.
    다음 10대에겐 진보매체가 영향력이 있을까요? 일베가 영향력이 있을까요?

    지금도 바닥인 진보진영은 앞으로도 미래에도 가망이 없을겁니다.

    왜냐면… 일베에 대해서 아는사람이 없거든요.
    그리고 진보그룹은 낙오자가 되어 일베나 페북에서 일베식으로 노는 젊은이들의 친구가 되지 못합니다.
    이유는 생각해보시길…
    앞으로도 친구가 되지 못할것입니다.
    정권이 바뀌어서 일베를 폐쇄해봐야 페북에서 하던놀이 그대로 할거고…

    일베를 알지도 못하고, 친구가 될수도 없습니다.
    적어도 이승로그에 필진들의 사상으로서는 일베를 찾아가는 아이들에게 친구가 될수가 없다는걸 아시기 바라네요.

    서두만 읽다가 끝난 글의 느낌입니다.
    물론 일베에 대해서 모르니 서두만 길게 쓰셨겠죠.
    압니다. 다들 이렇게 글을 쓰니깐요.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식으로 글을 쓰고 정작 코어 안으로는 전혀 못들어가죠.
    뭐 여기저기 다 봐도 다 그런식이니 어쩔수 없죠.

    1. 우선 제가 바로 그 절망감을 느끼는 20대입니다. 그리고 오유가 일베보다 트래픽 더 나와요. 오늘자 일베 33위 오유 20위네요. 무엇보다… 일베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주장에 “일베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하시면 뭐라 답할지 모르겠군요.

      1. 전 오유를 사회이슈에 진보적이라 보지 않습니다.(여기까지만…)

        일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주장은 2012-3년도 부터 때만 되면 나오던거라…
        또 서론만 나왔구나. 했습니다.
        원글의 의도가 그러했다니 알겠습니다.
        아직까지 코어에 들어간 글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답답해서 그랬네요.

        1. 도축장에 소돼지나 동물원의 코끼리의 생각을 이해하는거로도 박사학위를 받을 순 있겠죠. 일베를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막고싶진 않지만 일베라는 현상이 비집고 기어나와서 불쾌하다정도의 보편적인 글들이 비판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죠. 그리고 선거때마다 니네는 진다식의 자위질은 일베안에서는 아직 통용 되나봐요? 선거 지지 않았나요? 하긴 유입트래픽이 없죠 그쪽은.

          오유가 사회이슈에 진보적이지 않다면 일베는 보수입니까? Edmund Burke가 관짝 뚜껑열고 튀어나올 소리네요.

  2. 절망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일베/일베류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미래가 없다는 뜻이죠.
    늘어만 가는 일베류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으로는 사회가 1%도 나아질게 없습니다.

    6%도 안되는 점유율을 가진 트위터와 75%를 넘는 점유율을 가진 페이스북의 차이 (대략…)
    일베와 일베류의 차이

    너 일베냐 할만한 일베 시그니쳐만 떼어내고 나면 일베류가 됩니다.
    사실 얼마안되는 일베시그니쳐 그거 떼버려도 상관없어요. 그냥 사춘기 반항심으로 지랄들 하는것일뿐이죠.
    포인트는 그들의 사상이죠. 일베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반사회적? 논리, 일베시그니쳐를 뗴버리고 나면 범죄모의가 아닌이상 손가락질 받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논리!
    통제받지 않을 눈치보지 않을 일베류가 어마어마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SNS을 통해 퍼져나가는 상황

    프레임을 크게 짜볼려는 노력이 없는 진보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뭘 알아야 포용하고 극복할 프레임을 짜고 비전이라고 제시하겠죠.

    일베/일베류는 사회발전측면에서 봤을때 극복의 대상이지 혐오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미 일베류로 진화해버리고 SNS를 통해 어디에나 있지요.
    강남역 사건때만해도 모 트위터리안이 쓴 트윗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을 적었었죠.
    페이스북의 특징상 트위터보다 더 폐쇄적인 그래서 여기에 글을 쓰고, 여기서 글을 읽을만한 사람들은 모를겁니다.
    본인의 이너서클의 한계만 보이는게 페이스북이니깐요.
    어찌되었든
    이미 일베에서 일베류로 진화를 거듭해서 어디에나 널려있고, 일베라는 딱지를 붙일만한 시그니쳐가 안보이니 아무데도 없는겁니다.
    그래서 본진이라는 일베 사이트만 쳐다본다고 나아지는건 없습니다.

    제일 우려하는것은 그들은 진보집단의 생각과 논리에 상당부분 반대지점에 있다는겁니다.
    박정희때부터 평론가라면 입에 달고 떠드는 디바이드앤룰에 최적화된 그룹인것이죠.

    이런 분위기로 계속 간다면… 노인세대가 무덤으로 들어가며 줄어드는 %를 그들이 채울겁니다.
    누구를 지지 하는것보다 누구를 싫어하는건 행동하기에 더 좋은 동력이 되거든요.

    일베가 사회문제로 여겨지며 등장한게 2012-2013년 벌써 3-4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일베는 일베류로 진화하며 그들이 말하는대로 정말로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그룹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겉으로 보기엔 일베는 쇠퇴하는것 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곳은 액기스만 모이는 본진이라고 보면 되구요. 트래픽은 이미 분산되어서 일베류의 세력이 어느정도인지는 측정조차 힘들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베사이트 하나 쳐다보고 있으면 뭐가 어찌돌아가는지 알수가 없죠.

    앞으로 3년~5년이 지난다고 일베/일베류의 코어에 접근해서 그들의 상실감도 포용할수있는 큰 프레임으로 묶을수 있는 정치인, 언론, 논객이 나올까요?

    솔직히 기대 안합니다.

    결국 그들도 어떤형태로든 사회적 낙오자, 약자, 피해자입니다.
    프레임을 크게 짜면 충분히 포용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겠죠.
    누군가 분석을 하고 이해를 하려들면 일베/일베류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집단에게 의심으로 시작해서, 설득하려든다면 적이되는 꼴을 격게 될것이니깐요.

    더 이상 딴지 안걸겠습니다.
    말한다고 좋은소리 듣는것도 아니고…
    뭔가 깊이있는 비전이 보이는 글이 올라오는것도 아니고…

    그럼 이만…

  3. 나치를 옹호하는 집단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나치 상징이 공공장소에 부끄러움없이 드러내는 것을 용인하는 기분.
    나치가 무엇을 추구하는 집단인지 명확하듯. 일베가 했던 짓도 명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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