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문학

게임 판타지, 게임 소설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있다. 게임 속 세계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는 소설이다. PC통신 시절 판타지 소설의 대 유행, 이후 무협지와의 혼합 등등을 거치고 난 뒤 아예 게임 속 세계로 배경을 옮겨 모험담을 서술하는 인터넷 소설의 흐름 중 하나다.

게임을 다루는 여타 매체가 그렇듯이, 좋은 말은 별로 듣지 못한다. 문학적 깊이가 얄팍하다, 상상력이 빈곤하다 등등의 비판을 많이 받거나, 아니면 아예 도서대여점 책꽂이를 채우는 싸구려 취급을 받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 게임 판타지 소설 달빛 조각사
대표적 게임 판타지 소설 <달빛 조각사>

하지만 조금이라도 팬들이 존재한다면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대체 그 이유가 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차라리 프로게이머들의 화려한 경기력을 구경하기 위해 E스포츠를 본다면 모르겠으나, 대체 게임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 의미를 ‘일탈에 대한 몰입도’ 문제로 생각한다.

문학, 픽션, 가상의 이야기는 현실을 떠나서 다른 이야기를 해보는 의미가 있다.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럴때도 ‘허구’라는 방법을 충분히 활용한다. 여행을 갈때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리 허구적 장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몰입할 계기는 있어야 한다(방금 한 말과 반대되는 말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판타지 소설의 예를 들어보자. 열심히 노력하고 여러 난관을 돌파한 용사에게는 독자가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접해왔고, 익숙한 패턴이니까. 하지만 35만 7천년동안 동굴 바닥을 기어다닌 점액괴물 슬라임에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몇명이나 될까.

동질감이나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참 힘들어보인다.
동질감이나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참 힘들어보인다.

인간은 새가 되고싶은 욕망이 있다면 등짝에 날개가 돋아나는 걸 상상한다. 먹이를 먹자마자 짧은 장에서 바로 대소변으로 바꾸는 걸 상상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멀티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텍스트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 문학에서 독자가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 이야기가 대체 얼마나 되냐고 묻고싶다. 특히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할까 말까 한 젊은 층 말이다.

입만 열면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판국에 일탈에 대한 열망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이민이 있을 것이고, 상상 속에서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다’ 정도의 생각이 있다. 그럼 기존에 있던 장르들이 이런 해방감을 얼마나 줄 수 있을까.

판타지(정확히는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문학)? 분명 PC통신 시대부터 크게 유행했고,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은 한계에 막혔다고 본다. 전사, 마법사, 엘프, 드워프가 아무리 나와서 환상 세계에서 날뛰어도 한국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어릴적부터 어른들에게 자장가처럼 듣거나 한 기억도 없고, 한참 머리가 굵어지고 난 다음부터 읽기 시작하면 몰입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한국형 판타지를 찾을까? 일제 강점기와 독재,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한국의 판타지는 설 자리, 성장할 기반이 별로 없었다(한국형 판타지가 무엇인지를 놓고는 수십년째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논쟁 자료도 많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무협지? 대충 서점이나 책방에서 접할 무협지는 도색잡지, 저질 문학 이미지가 대중에게 퍼져있어서 출발 방향 자체가 다르다. ‘협’이라는, 추상적 일탈이 있을수 있지만 이건 하루 아침에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은 더더욱 아니다.

SF? 한글판 책이 나왔다면 언제 절판될 지 모르니 당장 사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로 대신하겠다.

해적? 땅에 얽매여 동네를 벗어나지 못한채 평생을 살아가던 시절에는 땅을 벗어나 바다 생활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해적들의 실상이 열악했다 해도 꿈이라도 꿔 볼 껀덕지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 여행에 이민까지 가능해지고 나니 현실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나. 직업과 공간의 변경으로는 해방감을 느끼기 힘들다.

아예 물질적 욕망을 따르면 어떨까. 골드러시라든가. 이젠 그것도 마땅치 않다. 광산도 기계화, 기업화가 많이 진행됐지 않나. 셰일가스가 터지고 세계가 바뀌네 어쩌네 하면 뭐하나. 곡괭이 하나 들고 파러 갈수도 없고, 프래킹인지 뭔지 알아먹지도 못할 말에다, 조사를 해보면 그거 파내는데도 또 돈이 든다. 개인 단위에서는 감당이 안되는 금액이다.

이러고 있으니 생각만으로라도 뭔가 탈출 욕구가 충족이 안되는 것이다. 몇년째 난리였던 펀드도 시들하고, 이제 남은건 범죄 아니면 로또밖에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게임이 등장한다. 생각만으로라도 일탈을 경험할 수 있는 매체가 게임이니까.

심지어 게임에는 ‘룰’이라는 게 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부으면 그만큼의 성과가 나온다. 정해진 금수저도 없이 평등하게 출발한다. 아이템을 얻는 게 너무 운에 치중되어있다고 비판하지만, 운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다. 그리고 그 운에 도전할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정말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게임 속 코드들은 이미 대중적으로 퍼져있고, 이 요구를 반영해서 게임 소설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소설 문장 중간에 삽화처럼 게임 인터페이스 장면이 괜히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레벨업도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익숙하고, 독자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최소한의 수요공급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존 문학보다 이런 접근이 대중성을 가진다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문학, 기존의 문장 구조에 익숙하지 않아서 충분히 그 맛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마냥 문학의 질적 하락을 탓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라 생각한다. 사는게 얼마나 팍팍하면 글을 읽고 스스로 즐기는 것도 힘들어서 외부 매체의 방식을 빌려와야 이해가 되겠는가.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매체가 나올때마다 매번 그 방식이 문학에 녹아들어갔던가? 라디오, 영화, 드라마 등등 매체는 계속 발전해왔다. 하지만 게임처럼 문학 장르로 녹아들어간 경우는 많지 않다. 왜 그런지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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