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와 야당, 그리고 추미애

 

최근 사드에 관해 지극히 일반적인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지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나온 내용이며, 사드의 기술적 배경에 대한 내 설명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자, 그걸 끊으면서 나온 내용이다.

“야, 다 좋은데.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사드는 레이더와 미사일이 세트로 있는 거고, 상대가 장거리 미사일 쏘면 레이더로 보고 있다가 쏴서 격추시키는 거잖아. 그걸 미국이 우리나라에 설치하고 싶어하는 거고. 우리가 그거 싫다고 그러면 미국이 설치 안하겠냐? 우리가 아프간에 파병을 하고 싶어서 했냐? 미국이 하라니까 했지. “

“맞아, 맞아. 사드 설치하면 시끄럽고 전자파 생기고 누가 좋아하겠냐. 그래도 어딘가에 설치한다면 할 수 없는 거지 뭐. 그거 반대한다고 반대가 되냐? 미국을 쫓아내 버릴까? 우리나라 진보들이 이게 문제야. 하지도 못할 일을 하자고 자꾸 난리 친다고. 그럴 시간에 차라리 최저임금 더 올리는 얘길 하라 그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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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미사일이라는 것은 내가 알겠다.

사실 난 여기서 더 할 말이 없었다. 저 논리를 논파하기 위해 난 덕질을 시작했었다. 이승만의 한미상호방위조약 덕질을 하며 밀덕이 되었고, 세계사에서 극동아시아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덕질을 하며 역사덕후가 되었지만 현실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다.

사드는 미국이 원하는 거고, 미국이 설치 하라면 설치해야 하는 것이었다. 과감하게 미국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사드를 배치해서 발생하는 부작용과는 비교도 안되는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격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나라가 나라의 꼴로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물론 우리도 이제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경제규모로 보나 인구로 보나 문화적인 수준으로 보나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그 잘나빠진 OECD 가입국이다. 언제까지나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면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준비가 필요한 법인데, 우린 그 준비를 아직 거의 하지 못했다. 따라서 아직은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래도 벗어날 수가 있기는 있다. 벗어나서 북한처럼 살 각오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근데 그건 아마도 국민의 99.98%가 반대할 걸..

이건 현실이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현실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대처방법이 없는 괴물이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사드 배치를 둘러싼 설전들을 지켜 보면서 우리 정치권의 “야당”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강성 야당

총선과정에서 얼결에 제1야당의 대표(비대위원장이나 대표나 오십보 백보)자리를 꿰어찬 김종인이라는 노인네는 이렇게 얘기한다. 당권주자들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은 당대표 선거를 의식한 발언이라는 것. 이 말은 매우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복잡한 표현이다.

김종인이 지금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웃으면서 나온 사진을 찾기가 정말 힘들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강경론자가 선거에서 유리하다는 의미를 먼저 얘기할 수 있겠다. 과연 그럴까? 쉽게 생각하기에 야당의 당대표 선거, 즉 야당 내부에서 지지자 당원들을 상대로 하는 투표에서 “사드 배치 결사 반대” 라는 선명한 구호는 지지자들의 환호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당대표 후보로 나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걸로 보인다.

그러나 김종인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대로 옮겨 보자.

“세상을 보는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된다는 얘기”

이건 무슨 의미일까? 아니, 야당 내 지지자 당원 중 다수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으면 후보자들은 당연히 반대를 공약하는 게 맞지 그게 왜 수준이 낮은 행동이 되는 걸까?

이에 대한 설명은 김종인의 또 다른 발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드 문제는) 우리가 찬성이냐 반대냐 따져야 할 차원을 넘어서 버렸다. “

즉, 찬반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그 앞뒤에 나온 발언들을 엮어 해석해 보자면, 국가 안보에 관한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안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좋고, 정부가 이미 미국과 다 협의를 해서 결론을 내린 상태이며, 단지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아마추어 수준”에도 못 미치게 일을 처리해서 이 난리가 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원점으로 되돌려서 재논의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이 설명의 대부분은 김종인이 직접 얘기한 내용들이다.

즉 현실적으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해 그거 반대해서 어쩌자는 거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반대 이후의 대안. 그거 누구에게도 없다. 사드 배치를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 중 누구도 이런 반대 활동으로 인해 사드 배치가 철회될 수 있는 건지, 철회된 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하나는, 정치적 디테일에 관한 문제다. 과연 유권자들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가, 정치인이라면 유권자들의 뜻에 따름과 동시에 유권자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설득해 내는 임무가 주어지는 법인데, 과연 현재 유권자의 뜻은 뭐냐는 것이다.

전체 유권자를 보자면 사드 배치를 찬성, 아니 찬성이라기 보다는 대안이 없으니 용인하자는 쪽이 반이 한참 넘는다. 야당 내에서는 어떨까?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외치는 강경파들은 목소리가 크다. 사실 상식적인 얘기지만 강경파는 목소리가 크되 소수라는 것이다. 야당내에서도 그런 상식은 통한다. 사회에서 과반이 사드 배치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야당내에서도 그 비율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우린 야당이니까 반대해야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해서 찬성의 목소리를 내지 못할 뿐이다.

결국 강경파가 선거 분위기를 주도하게 되고, 후보자들은 그들의 압박에 못 이겨 사드 배치를 반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요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모습이 외부로 노출되면 당연히 다수 유권자들은 “민주당 쟤들 역시 운동권 정당이네..”라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운동권 정당”에게 국가를 운영할 행정권력을 절대 주지 않는다. 목소리만 큰 어린아이들에게 통장을 맡기지 않는 것과 똑 같은 상식이다.

김종인은 이런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바닥에 깔고, 후보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된다”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소수 과격파의 목소리에 흔들리면서 더 큰 여론의 지지를 놓치는 “생각의 짧음”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게 옳은가? 김종인은 이 대목에서 “더민주가 수권정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각할 것”을 촉구한다.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선 당원들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 유권자의 반이 넘는 숫자의 지지를 얻어야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전체 유권자 중 다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상책이다.

여기서 심각한 충돌이 발생하는데, 야당이 그간 주장해온 내용을 버려가면서까지 집권을 도모해야 하는 것인가, 유권자의 뜻을 따라야 하는가, 유권자를 설득해 내야 하는가, 뭐 이런 정치의 본질에 가까운 논란이 또 나오게 된다.

김종인은 “강성 야당”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 집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당 대표 후보자들에게 자꾸 당내 여론이 아닌 전국적 여론을 보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중이고, 당내 강경파들은 그건 일탈이고 변질이니 강성 야당의 정체성을 지키라고 주장하면서 김종인을 비난하고 있는 중이다.

이게 더민주의 오늘의 모습이다.

 

추미애의 당선

추미애 후보는 이번 2016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사실 김대중에 의해 발탁된 대구출신 여성 판사 출신의 추미애가 민주당의 대표에 당선된 것은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이변에 가깝다. 대구출신이라는 것도 이변의 한 축이고 (민주당을 호남 지역당으로 비꼬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섰던 구민주계 출신이라는 것도 이변의 한 축이다.

그러나 당원들은 추미애를 대표로 선출했다. 이거 하나면 정당성이 부여된다. 당원들의 생각이 바뀐 것뿐이다. 이 부분에서 전당대회 전과 후에 추미애의 입장변화에 주목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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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이 있어 빛을 바랬지만, 최초의 여성 야당대표다. 이것만으로도 굉장한 의미가 있다.

사드배치 반대. 선거 과정에서 추미애가 주장했던 내용이다. 아니 그냥 반대가 아니라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겠다고 얘길 했었다. 물론 당론이야 당대표가 맘대로 정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규정과 절차에 의해 당내 여론을 모아 정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당대표가 강력하게 추진하면 성사가능성은 확연히 높아지니까 사드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하겠다는 공약은 뭐 큰 문제는 없다. 그리고 이 공약은 당원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추미애는 당선이 된다.

그리고 당선 뒤, 사드배치 반대 당론을 결정하는 것은 연기되어 버린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바로 공약을 폐기한 셈이다. 선거전 비대위원장 김종인의 태도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선거 때 주장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이거 문제 있지 않은가? 이런 식이라면 사드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겠다고 해서 강경파 당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낸 뒤, 당선 된 후 헌신짝처럼 버려 버린 셈이다. 스스로 공약을 이렇게 저버려도 될까?

하지만 난 이 대목에서 추미애 대표를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결과적으로 설명하자면 추미애 대표도 이 글 앞부분에서 논의해온 과정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드배치는 야당에서 찬반을 결정하는게 의미가 없다는 것, 김종인이 말한대로 찬반의 차원을 넘어가 버린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걸 반대해서, 반대가 막상 성사되더라도 그 후의 대안이 없다는 것, 이 부분은 야당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등을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거기다가, 야당 내 강경파 당원들이 뭘 원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숫자와 비율이 어떤지,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 들어주면 되는지 이미 파악이 끝난 거다.

그 강경파 당원들은 숫자는 적고 목소리는 크기 때문에 그걸 김종인처럼 정면으로 부딪혀 버리면 선거에 불리해 지고, 차라리 조금 비도덕적일 지언정 선거 때 비위를 맞춰주고 당선 된 뒤에 모른척 하는게 더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추미애 후보는 당선자가 되어 당대표가 되었고, 사드배치 반대를 외치던 강경파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속은 건지 이해도 못하고 있는 중이다. 말 한마디 못하면서 말이다. 오히려 그 점을 지적하면, 이제 막 당선된 신임 당대표를 헐뜯는 거냐고 비난을 당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도대체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외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간걸까?

내가 궁금한 것은 단 하나다.

김종인이 도덕적인가? 추미애가 도덕적인가? 아니 도덕은 “당권”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가?

 

원론적인 결론

이 글에서 언급된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는 이것이다. 정치는 유권자의 뜻을 따르는 것인가,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인가? 물론 답은 그 둘 모두 정답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원론적인 것은, 강성야당의 문제이다. 야당은 언제나 강경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그것은 강경해야 할 때가 있고, 타협적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는 말로 답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유권자를 따를 것인가, 설득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다. 유권자를 따른다는 것은 타협적인 유연한 야당이고, 유권자를 설득한다는 것은 강성 야당의 태도가 된다.

실제로 극소수 진보정당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강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언제나 잘못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잘못에 대해 강하게 비난해야 할 사람들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강경파는 언제나 아무리 많아도 30%를 넘지 않는다. 강경파가 50%를 넘을 수는 없다. 아니 넘을 수도 있다. 물론 강경파가 50%를 넘으면 바로 혁명이 터진다. 뒤집어 엎는 거지 뭐.

그러나 집권을 꿈꾸는 소위 “수권정당”은 강경해서는 안된다. 특히나 경제규모 10위권의 경제대국에서 강경파가 득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거의 대부분의 유권자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큰 파국 없이 문제점들만 골라서 개선하길 원한다. 심지어 거래처인 외국에서조차 그걸 바란다. 우리나라에 파국이 발생하면 미국은 지체없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자신들의 시장에 막대한 교란이 발생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뭘까? 더민주는 지금 당장 강경파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집권을 꿈꾸고 있다면 말이다. 아니 누가 누굴 버리는지를 명확히 해 보자. 당대표가 당원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강경파를 버리는 것은 당원들의 임무다.

즉 더민주가 집권하길 바란다면, 더민주의 대선후보, 그게 문재인이 되었건 누가 되었건 당선이 되길 원한다면, 지금 더민주의 당원들은 자신들의 머리 속에서 터무니없이 강경한 생각들을 몰아 내고 사회 일반의 상식을 좀더 채워 넣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 사회일반의 유권자들이 더민주의 내부를 어떤 시선으로 들여다 보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조금 어렵더라도 말이다.

조금만 결론을 더 좁혀볼까?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강경한 자세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부패에 대한 대응 같은 거 말이다. 정권의 핵심인 민정수석이 엄청난 규모로 부패를 하고 최대 규모의 언론사와 전쟁을 하는 와중에 아무 소리 못하고 있는 야당은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병우를 당장 짜르라고 국회에서 농성을 해도 부족할 판인데 또 이런 문제에 대해선 별로 강경한 사람들이 안 보인다.

대신 대안 없는 문제, 거부할 수 없는 문제,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미국과 북한, 국가 안보 문제 같은 것들이다.

팔구십년대 운동권들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반전반핵 양키고홈!! 의 논리로 사드 문제를 대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는 순간 민주당은 팔구십년대 운동권 정당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리고 팔구십년대 운동권들은 집권은 커녕 이미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취급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게 사회 일반의 평균적인 인식이다.

그걸 왜 모르나?

 







3 thoughts on “사드와 야당, 그리고 추미애

  1. 계속 정당은 정체성과 강령에 따라 움직여야한다’ 는 틀을 생각해온 저로서는 꽤나 큰 파장이 일어난 글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내면에 있는 운동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정당에게 바래온 것은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수권정당보단 시국마다 진보에게 옳지않은 것을 비판해주는 그런 허무한 바램만을 자신에게 계속 주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저를 돌아보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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