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만든 내밀한 슬픔

슬픔은 결코 환상일 수 없다. 유대인이 겪은 역사를 대개는 홀로코스트로 드러낸 영화에서 만나곤 했다. 이 영화의 원작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와 소설적 이야기로 현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이스라엘에 관련된 정보가 얼마나 빈약한 상태인가를 깨닫는다. 내 나라와 관련된, 그것도 이해관계가 닿아야만 소용되는 정보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나라이니까. 참으로 정보화 시대에 놓인 현재와 빅 데이터 시대의 도래가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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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이기도 했기에 이 영화의 연출과 각본을 맡아 영화를 제작해서 기대감이 높았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시선은 뜻밖이었다. 홀로코스트를 비껴 나 피신할 수 있었던 한 가족의 삶에서 이념과 전쟁, 종교와 민족의 대립과 반목으로 만들어진 상흔들을 만난다. 가족도 나의 상처 밖에 머물 뿐이라는 느낌이 확연히 다가온다.

원작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아모스 오즈의 회상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과 대사로 히브리어를 선택한 점은 더욱 영화를 현실감 있게 하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어차피 한국에서야 누군가의 수고로 자막을 얻어 보긴 하는 거지만 귀로 들리는 낯선 언어는 뜻밖에 유약하게 들리지만 따뜻하다.

영화의 시작은 우리의 일상이다.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고 엄마는 잠들라 하지만 아이는 안 졸리다고 한다. 엄마 파니아와 아들 아모스의 이야기 놀이가 히브리어로 진행되면서 이야기꾼이 된 그들의 앞날이 암흑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아모스가 어머니의 아버지 뻘 되는 나이에서 회상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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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샹들리에, 하인, 미스터리, 낭만적 비애… 어머니는 38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에 중요한 역사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 1945년 예루살렘은 영국의 위임통치기간이었다. 한국이 해방을 맞은 그 해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의 분쟁과 한반도의 분쟁 이면에 어떤 강대국들의 힘이 개입되어 있는지 생각하게 되면서 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나도 그녀의 삶만큼 깊이 새겨진 역사의 상흔을 읊조리게 된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갉아 먹히는 가를 바라보는 일은 힘들다. 내 어머니의 세대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이 꿈만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 현대사인데도 우린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로 치부하나 보다. 아직 정정하신 내 어머니의 한국전쟁 시 부산 피난 시절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다.

결코 어머니는 십 대에 겪은 그 시간을 다시는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셨던 것 같다. 그와 관련된 그 어떤 이야기도 자세하게 들어보질 못했으니. 단 한 문장이었다. “급하게 서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붙이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죽을 운명이”었다고. 그리곤 자리를 슬그머니 떠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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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반유대주의가 퍼지자 어머니는 이스라엘을 꿈꿨다. 그녀에게 이스라엘이란 젖과 꿀이 흐르고 사막조차도 꽃을 피우는 곳으로 시인이자 혁명가인 개척자들은 싸움터에서도 빛나지만 기본적으로 감성적이며 지적일 거라고 상상했다. 어머니 가족들이 유럽국의 핍박으로부터 도망쳐 폴란드 소센키 숲에 숨어든 후 버섯과 산딸기를 따거나 별이 쏟아지는 강둑에 나가 침낭 속에서 잠들며 지내던 무렵 기관총을 든 독일,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23,000명의 유대인들이 이틀 만에 죽어 나갔다. 어머니가 아는 사람을 거의 다 죽인 것이다.”

 

한반도가 1945년 광복을 맞은 다음 해 1월 발생한 ‘대구 10월 항쟁’은 낯설게 들린다. 이 대구항쟁은 해방의 선물이 ‘기근’이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었다. 역사를 전공하거나 개인적으로 공부하려는 이들을 제외하면 고등학교 과정까지 이 항쟁을 교과서에서 제대로 찾아보기는 힘들다. 당시 대구의 정치적 사정은 일제하에서 어느 세력보다 더 치열하게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해 왔으며 대중조직을 결성하여 폭넓은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우익세력엔 친일파가 많아 대중적 기반이 매우 취약했던 곳으로 대구 항쟁은 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방 직후 거의 다 자취를 감춘 친일 경찰들이 미군정의 부름을 받아 전보다 더 큰 권력을 누리며 횡포를 일삼는 것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극에 이르렀다. 쌀값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10배나 올라 시민들은 쌀을 살 수 없었고 굶주려야 했다.

미군정이 10월 2일 오후 6시쯤 대구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전차를 앞세워 시위를 진압했다. 진압 후 경남북 지방의 농촌을 거쳐 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확대되면서 전국적인 농민봉기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당시 양민 학살은 숫자로 담아 알려지지도 않은 역사의 사실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된 무수한 개인들의 삶은 상상하기조차 버겁다. 1950년 한국전쟁의 무수한 죽음과 이신가족으로 갈라진 상실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성격은 다르지만 한국의 이 시대를 살아 나온 민중의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가슴을 들쑤셔놓는다.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절박한 당위성이 민주주의를 외쳐대야 하는 여기, 현재를 가리킨다. 대구가 보수의 상징처럼 된 현재의 상황도 따지고 보면 혈기가 너무 넘쳐 3당 합당으로 대통령이 된 인물 덕분이긴 하지 않던가.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진 지금, 평화는 국익의 우선 조건이라는 사실도 되새기게 한다.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로 대량 학살을 하고도 그 책임을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는 자들은 여전히 강력하게 무장을 하고 국가권력으로 약소국들을 갈취한다. 그럴싸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삼아 세계화를 부르짖는다. 그들만의 세계화에 약소국의 미래는 다시 짓밟히게 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이 영화는 깊이 새기게 해준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내밀하게 개인의 삶을 파고들어 비틀거리게 한다.

전쟁으로 개인의 삶이 산산이 흩어져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이 말을 건네는 순간이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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