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은 소설

 이것은 한 편의 소설이다.

감동적이지도 않으며, 스펙타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짧은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나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써넣은 소설일 뿐이다. 어쩌면 소설이라기보단 쓸데없는 망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e1%84%91%e1%85%a6%e1%86%ab

 

 

내 머릿속 망상은 동방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 시작한다. 이 작은 나라는 아주 평범한 나라 중 하나다. 남들처럼 평범한 자본주의 국가고, 평범한 민주주의 국가다. 강대국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균형을 잡을까 궁리하는 나라고,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국가다.

이들은 식민 지배를 겪었지만, 그래도 나름 열성적인 독립운동으로 다시 나라를 세웠다. 군사 쿠데타와 독재 정권을 겪었지만, 나름 국민이 합심해 독재자를 쫓아낸 경험도 가지고 있다.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지만, 나름 기적에 가까운 경제 성장을 이루며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종종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인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지만, 또 자기 손으로 쫓아낸 독재자의 딸을 자기 손을 다시 대통령으로 세우기도 하는 나라다.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놀랄 만큼 미개한 국가지만, 또 때로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전무후무한 역사를 써내기도 하는 다이나믹한 국가이기도 하다. 아무튼 동방의 작은 반도에서, 이 사람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또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미지의 동방 국가에는 그래도 5천만이라는, 세계에서 스물 일곱 번째로 많은 국민이 살아가고 있다.

 

 

물론 특기할 만한 점은 있다. 이 작은 나라는 땅덩어리도 좁은 주제에 무슨 배짱인지 25개라는 놀라운 숫자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원전 밀집도를 가지고 있는 땅이다. 이 땅에 있는 원전 단지들은, 모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로가 모여 있는 단지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심지어 이 나라 정부는 얼마 전, 2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이미 오래되어 위험한 원전도 그냥 작동시키기로 했다. 심지어 이 나라에서 좁은 해협 하나만 건너면 있는 나라는 얼마 전 세계 최악의 원전 사고를 겪었음에도 말이다. 왠지 이런 땅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그렇다고 해 두자.

소설의 배경은, 이렇게 이상하지만 그래서 대단히 평범한 나라다.

 

%e1%84%8b%e1%85%ae%e1%86%af%e1%84%8c%e1%85%b5%e1%86%ab%e1%84%8b%e1%85%af%e1%86%ab%e1%84%8c%e1%85%a5%e1%86%ab

 

 

자, 소설에는 서사가 있어야 한다. 이 극동의 좁은 나라를 상상하고 있는 조물주로서, 나는 오늘 이 땅에 무언가 서사를 만들어주기로 결정했다. 이 땅에 내려질 서사는 ‘지진’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영토의 어느 귀퉁이에서 지진이 발생한다. 이 나라가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지진이었다. 생각해보면 비슷한 수준의 지진이 몇 번 있었던 것 같기는 했지만, 이 나라 정부는 ‘망각’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있다. 과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미래로 나아가는 것만 해도 바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옆 나라에서는 일 년에도 몇 차례씩 지진이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이 나라에 ‘망각’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는 ‘무관심’이었으니까. 25기의 원전을 보유하고도, 옆 나라에서 벌어진 최악의 원전 사고에 대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는 정부를 가진 국가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지진이 벌어진다. 지진에 익숙하지 않은 이 나라 시민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늘 가만히 서 있을 것 같던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요동치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하는지, 책상 밑으로 숨어야 하는지, 제대로 교육받은 기억은 없다.

켜져 있던 TV에서는 아무런 이상 없이 정규방송이 진행 중이다. 이게 지진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재난방송 주관사’라며, 재해가 벌어지면 TV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라던 방송사의 공익광고가 떠오른다. 그랬던 그들은 지금, 아무런 정보도 전하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단 급한 대로 119에 전화를 건다. 하지만 딱히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불안에 떨며 지진이 멈추기만을 기다린다. 누군가 다치기 전에는, 누구도 이들을 구해주지 않는다. 구조조차 제대로 못 하는 국가가 예방이라고 잘할 수 있을 리는 없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매뉴얼은 없다. 날씨가 덥다면서 울려대던 재난문자도 오지 않는다. 국민의 안전관리를 전담하겠다며 야심 차게 출범한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는 이미 접속할 수 없다. 지진은 곧 멈추지만 불안은 멈추지 않는다.

여진이 계속된다.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길 두려워한다. 단 한 곳도 빠지지 않고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집 밖에 모인 사람들은 하룻밤 머물 대피소를 마련한다. 하지만 어느 국가 기관도, 어느 시스템도 이들을 구하러 오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딱히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근처에 있던,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원전도 다행히 별다른 이상 없이 가동된다. 사망자도 없으며, 문화재 피해도 미미하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이내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국가는 그 영원의 나태함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망상을 머릿속에서 펼쳐 가는 내가, ‘더 거대한 지진’이라는 서사를 이 땅에 부여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 나라의 기상청 과장도 브리핑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땅 밑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오늘 그 말에 대가를 제공하기로 한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지진이 발생한다. 제대로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땅의 진동이 느껴지고, 건물의 흔들림과 함께 공포감이 엄습한다. 땅 위에 안전한 곳은 없다. 이제는 어떤 일이 생길까.

다시 한 번, 사람들은 대피할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자신감에 차 있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지진을 겪고 난 뒤 대피하는 방법을 익혔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SNS만으로도 모든 것을 깨우쳤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의기양양한 사람들 가운데서 첫 번째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공인된 정보 제공 시스템의 부재가, 더 많은 사람들을 피해자의 자리로 몰아세울 것이다.

다시 119에는 신고가 쏟아진다. 하지만 역시 오늘도,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혹시 모른다. 지난번 지진이 끝나고 ‘지진 핫라인’ 같은 것을 만들었을지도. 아니면 국민안전처를 해체했을지도 모른다. 이 나라 집권자의 취미는 ‘핫라인 만들기’와 ‘고심 끝에 해체’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 악취미 덕에 만들어진 핫라인은, 늘 그렇듯 작동하지 않는다. 전화와 홈페이지의 불통은 이 국가의 숙명이다. 피자 배달도 30분 만에 해 준다는 나라에서 정작 경보 알림은 30분이 넘어도 오지 않는다. 그나마 알림이 와도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는다. 지진이 왔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어쩌라고?”

 

NEPAL-KATHMANDU-EARTHQUAKE-AFTERMATH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지진은 지난번 지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지진이다. 건물이 무너진다. 집에 있던 사람들이 깔리고, 야근을 하던 직장인들이 깔리고, 야자를 하던 학생들이 깔린다.

사실 얼마 전 이 나라는 배가 뒤집혀 고등학생을 포함한 수백 명이 죽는 사고를 겪은 바 있다. 물론 아무것도 변한 건 없다. 정부의 대응 능력부터, 사람들 속의 뿌리 깊은 안전불감증까지, 늘 그대로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 나라 국시의 제일은 망각이다.

피해자가 속출한다. 이쯤 되면 원전도 안전할 수 없다. 무슨 생각인지 25개라는 엄청난 숫자의 원전을 지어 놓은 나라다. 진앙지 근처에 있는 몇몇 원전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언제든 이상이 생길 수 있는 대단히 민감한 기관을 시스템의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 원전이다. 이렇게 거대한 자연재해에는 손을 쓸 도리가 없다.

사실, 이 나라는 과거 이미 몇 차례의 작은 원전 사고를 겪은 적도 있다. 물론 이 원전 사고의 끝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허술한 시스템이 거대한 지진에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냉각수 가동 장치에 이상이 생기고, 노심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다가, 결국 폭발과 함께 방사선 누출이 시작된다. 피폭당한 사람들은 사망하기도 하고, 멀리 있는 사람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를 몸의 이상과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사고는 오늘 벌어졌지만, 피해는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바다가 오염되고, 토양이 오염된다.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만들어진다. 이 땅에 접근할 수 있게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적어도 그때, 이 사고에 책임을 져야 했던 우리 모두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사실 정도는, 모두들 아무 말도 없지만, 짐작하고 있다.

 

do-not-enter

 

 

흔들리는 건물을 피해 밖으로 나온 시민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알려준 적은 없다. 애초에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기구라면, 여기 국가는 없다.

겨우겨우 모인 사람들에게 국가는 아무것도 제공해줄 수 없다. 담요 한 장 내어줄 생각을 하지 못한다. 추위와 배고픔은 각자가 견뎌야 할 과업이다. 바깥사람들은 성금을 걷는다. 그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복구와 구조를 해야 하는지 체계조차 잡혀있지 않다. ‘골든 타임’이라는 말은, 그 말에 삶과 죽음을 걸고 있던 사람들의 싸늘한 영정은 무시한 채, 어느새 관용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겪지 않았어야 할 시행착오를 겪는 사이,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난다.

이 나라 국민 모두는 처음부터 정부의 긴급한 명령이나 조치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나타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릴 것이고, 어차피 그 뒤로 장관이니 자문위원이니를 소집하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촉각에 걸린 생명이 더는 남아있지 않을 때에야 조치라고 할 만한 것이 마련된다.

 

 

시간이 지나며 여진은 잦아든다. 사람들은 복구 작업에 나선다. 사망자의 수는, 매일 아침 신문을 볼 때마다 늘어나 있다. 비극과 슬픔이 국토를 지배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후회가 깊은 곳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누구도 살아 나오지 못하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초읽기를 하듯 사망자의 수는 째깍째깍 올라간다. 모든 죽음이 트라우마가 된다. 무너진 집과 건물,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가 사진을 찍듯 머릿속에 남는다.

국토 전체가 상가(喪家)로 변한다.

 

%e1%84%8b%e1%85%a1%e1%84%8b%e1%85%b5%e1%84%90%e1%85%b5-%e1%84%8c%e1%85%b5%e1%84%8c%e1%85%b5%e1%86%ab

 

 

하지만, 그 비극의 속에서도, 모든 것을 잡아먹는 마수와 같은 시간은 흐른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 명의 죽음은 통계다.” 무솔리니의 말이다. 슬픔보다는 황망함과,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무감각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슬프다고 말한다. 괴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는 결국 망각의 늪에 빠진다. 다시 상기하자면, 이 나라 국시의 제일은 망각이다.

원전과 지진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와 신문을 지배하지만, 기사는 1면에서 2면으로, 다시 박스 기사로, 점차 밀려나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집권자는 다시 취미활동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기자들을 세워두고 짜여진 질문을 받거나, 자신을 모독하지 말라고 말하거나, 관련 기관을 해체하거나. 모두 그의 취미 활동이다.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도 그의 취미생활 중 하나이니까.

다시, 망각의 계절이 시작된다. 어쩌다 문득 떠오르는 과거에 대한 무채색의 회상이 아니고는, 우리는 이 사건을 더는 기억하지 못한다. 세상은 그대로 굴러간다. 단 몇 달의 공백이 있었을 뿐이다. 피해자들에게는 “지겹다”는 외침만 돌려주면 그만이다.

시스템의 부재와, 정부의 무능은 이미 논의에서 배제된다. 이 나라 사람들은,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받고, 얼마나 많은 특혜를 받아가는지에만 집중한다. 이 나라의 핵심 가치는 탐욕이다. 언젠가 내가 그 흔들리는 땅 위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바뀌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이 이 극동의 작은 국가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총체다다.

어차피 세상이 다시 조용해질 것이라는 말을, 그들은 저 깊은 곳에서부터 신뢰한다.

이곳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다.

 

%e1%84%80%e1%85%ae%e1%86%a8%e1%84%80%e1%85%b5

 

 

이것은 한 편의 소설이다. 그저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한 줄기의 망상이다.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 속에서 흘리는 사람들의 땀이 이렇게까지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확신은 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 확신이 아무것도 아닌 채로 버려질 수 있으며, 현실은 더욱 끔찍하다는 생각을 애써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확신이 시스템에 기반한 확신인지, 아니면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에 기반한 확신인지, 나는 솔직히 구분하지 못한다.

어쨌든 이것은 현실이 아닌 소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동방 작은 나라에 대한 망상이, 언제쯤 대한민국의 현실로 돌아올지, 사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한 편의 소설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진실의 일단이다.

 

 

# 이 글의 참조 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59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