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급진적인 전략은?

 

한 사회가 있다. 그 사회를 있는 그대로, 해오던 그대로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보수파,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부분적으로 뜯어 고치려는 사람은 진보파. 그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사람들은 타협이고 설득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이 화끈하게 뒤집어 엎고 새로 만들자는 혁명주의자.

그러나 시간이 흘러 혁명의 시대는 끝이 났다.

물론 혁명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해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혁명의 깃발을 들어 올리시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경의를 표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그만큼 견고해졌다.

그렇다면 혁명파를 제외한 진보적인 그룹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사람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기준으로 분류해야 하는 걸까?

이걸 생각해 보자.

 

말보다 행동이 급진적이다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보다 무슨 말이라도 하는 사람이 더 무섭긴 하다.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정 방법이 없으면 담벼락에 욕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그러나 진짜는 행동파들이다. 백 마디 말 보다 한 가지 일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현실적이며, 보수주의자들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떠들고 있는 사람들 보다는 어느 새 은근 슬쩍 뭔가를 바꿔 버리는 진보주의자들이 훨씬 더 싫고 두려울 것이다.

요컨대 뭔가를 실질적으로 바꾸는, 현실 사회에 존재하는 변화를 실제로 이끌어 내는 사람들이 제일 과격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간단한 사실을 수시로 잊어 버리고 살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에 급급해서 그게 현실적인지, 실제로 구현될 수 있는 주장인지, 주장을 위한 주장인지를 따져 보는 것을 수시로 놓친다. 깜빡 잊어서 놓칠 수도 있고, 일부러 놓아 버리기도 한다.

왜냐면, 실질적인 변화는 쉽지 않고 길고 어려운 과정이며 그걸 해낼 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몰랐다 해도 금방 알게 된다. 해보면 엄청나게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면 실질적인 변화를 추동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이거 원래 안되는 일이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포기했음을 세상에 알리지는 않는다.

또 말로 하는 주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말로만 주장을 해도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고 그 사람들의 주목도 받을 수 있으며 돈이 나오는 길이 생기고 명성을 얻게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 눈이 뜨이면, 그리고 맛이 들리면 그 때는 오히려 실질적인 변화를 두려워하게 되기도 한다. 이게 진짜 변해서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면 자신이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게 되고 밥줄이 끊어지는 것을 알게 되니까 말이다. 심지어 조직이라도 만들었다면, 그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생계가 끊어지는 일이 되기도 한다.

비참한 일이다.

이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그걸 고치기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바쳤는데, 하다 보니까 오히려 그 문제점을 고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세력이 된다는 것,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게 된다는 것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꽤 많이 존재한다는 것, 이 바닥의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말보다 행동이 급진적이다. 말로 주장하는 것보다 실제로 바꾸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고, 그걸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급진적이라는 말은 이렇게 무겁게 입증이 된다. .

 

사드에 관한 더민주의 태도

남한에 사드 시스템을 배치하는 문제가 한참 시끄럽다. 새누리당이야 뭐 청와대가 하는 일인데 그게 콩인지 팥인지도 모르고(아니 사실은 알면서 무시하고) 무조건 찬성하고 있는 거고, 국민의당을 포함한 여타 군소정당들은 모두 반대를 하는 분위기인데 더민주만 애매한 스탠스를 가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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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라고 그렇게 말이 많은지 원..

일반적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는 사드배치를 찬성하는 쪽이 과반 이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동시에 남한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과하게 기울어진 일이며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에 나름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민주의 입장에서는 사드에 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급진적인 일일까?

이건 쉬운 질문이 아니다. 해방이후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오늘날 극동의 정세를 모두 고려하여 남한에 사드 배치는 미국의 이익을 제외한다면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일이니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새누리당과 대립을 하는 것이 급진적인 일이 되는 것일까?

언론에서는 그걸 “강성 야당”의 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상당수의 더민주 당원들 역시 당이 그렇게 해주길 바라고 있는 걸로 보이며, 새로 선출된 추미애 당대표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추미애 당대표 본인도 당선된 뒤에는 머뭇거리고 있지만, 선거 과정에서는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할 것처럼 얘기를 했었다.

그렇게 사드 배치를 반대하면서 더민주라는 정당이 이끌어 낼 수 있는 “현실적인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그냥 해오던 그래도, 제1야당이 되어 정권은 새누리당에게 넘겨주고 새누리당 정권을 비난하며 또 한 번의 대통령 임기를 그대로 허송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말로는 계속 “수권정당” 노래를 부르며 우리가 정권만 잡으면 당장에 태평성대를 만들어 주겠다고 허풍을 떨고 있게 될 것이다.

그건 하등 급진적인 일도 아니고 과격한 주장도 아니다. 그냥 난 지금 이대로가 좋으니까 현상 유지에 힘을 쓰겠다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현실 안주에 적합한 태도인 것이다.

최소한 결코 진보적인 태도는 아니다.

 

사드에 관한 가장 급진적인 태도

앞서 말했지만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어떤 현실을 바꾸자는 것일까? 미국이 자국을 방어하기 위한 국제적인 미사일 방어체계 MD의 한 부속품인 사드를 남의 나라에 가져다가 설치하겠다는 말 자체를 못할 상황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게 제일 급진적이고 과격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해방이후 한국 전쟁을 거치며 만들어진 이승만의 작품 “한미상호방위조약”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한미연합사에 지휘권이 예속되어 있는 대한민국 국군을 독립적으로 국가를 방위할 줄 아는 제대로 된 군대로 만들어 내야 한다. 특히 전쟁 이후로 한 번도 정상적으로 기능해 본 적이 없는 수준의 “정보능력”부터 확실하게 보강해야 한다.

(이 스토리는 지속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부분이며 http://murutukus.kr/?p=12549 이 글에서 비슷한 논의의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 국군을 홀로 서기가 가능한 수준으로 키워놓고, 동북아시아 외교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에게 비웃음을 사던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넘어선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하며 그 시나리오는 세계 최강대국 4개국, 미, 중, 러, 일의 이익에도 일치해야 하고, 동북아 평화에도 이바지하는 길이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는 대등한 관계에서의 동맹관계를 재설정 해야 하며, 미국 주도의 한미일 삼각동맹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상황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진다면 그때에 가서야 비로소 사드 따위를 대한민국에 설치하겠다는 미국, 아니 미군의 제안 같은 것이 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한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미군의 주장에 대해 우리가 근본적으로 확실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이 쪽이다.

그렇게 하려면 어째야 할까?

이 사회를 뜯어 고쳐야 한다. 미국이 사드 같은 걸 배치하겠다고 나서면 우리가 들어 줘야지 별 수 있겠냐고 생각하는 과반 유권자의 체념적인 태도도 바꿔야 한다. 그건 절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기나긴 시간 동안 쌓이는 신뢰와 설득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사회를 뜯어 고치려면 정권을 잡아야 한다. 혁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과격한 전술은 정권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를 설득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유권자의 과반수가 사드 배치를 찬성한다면? 정권을 잡으려 하는 정당이라면 찬성하는 게 맞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정권을 잡고, 그 정권을 활용해 국가를 뜯어 고쳐가며,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쌓고, 천천히 차근 차근 바꿔나가는 것, 이게 가장 과격하고 급진적인 길이다.

어느 쪽이 강성 야당일까?

정권 잡을 가능성은 없이 맨날 말로만 떠드는 야당과,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정권을 잡아 이 사회를 뜯어 고치겠다고 벼르는 야당, 둘 중에서 말이다.

 

오바마의 전술

오바마는 미국 사회에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온 대통령이다. 그 중에서도 “동성혼”을 합법화 시킨 것은 아마 인권운동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큰 변화였을 것이다. 그걸 오바마가 자신의 집권 시기에 이루어 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동성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여론은 1988년 기준으로 12%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이 12%의 비율은 20년이 지난 2008년에는 39%가 된다. 그리고 2015년 6월에는 60%를 넘어선다.

오바마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동성혼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조금씩 반동성애 그룹의 기반을 하나씩 하나씩 흔들어 놓기 시작한다. 동성애자 군복무 제한조치를 철폐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의 전략이었다.

결국 여론은 점진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동성혼 찬성의 여론이 과반을 넘어서는 순간 오바마는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재선 과정에서는 아예 동성혼 찬성을 본격적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의 결혼을 막을 권한은 없다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리게 된다.

오바마의 이런 태도,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바로 오바마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급진적 현실주의자 “사울 알린스키”에게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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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이름은 항상 사울인지 소울인지 솔인지 헷갈린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알린스키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정치인은 정의당 조성수 소장이다.

 

가장 급진적인 태도는?

다시 돌아가서 얘기하자면..

가장 급진적인 태도는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가장 급진적이라며 떠드는 것은 전혀 급진적인 자세가 아니다. 그렇게 떠들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많은 운동권 인사들이 이 점을 혼동한다. 이제는 팔구십년대 방식으로 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바뀔 세상은 없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회를 바꾸는 길이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회를 바꾸는 길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아주 작은 변화라도 실질적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 실질적인 변화에 사람들이 만족하기 시작한다면 더욱 중요한 변화를 기대하게 될것이며, 역사적이고 중요한 변화는 그 다음에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역사적이고 중요한 변화들이 반복되어 누적된다면 그 때에 가서야 우리 사회는 겨우 반걸음쯤 진보하게 된다. 그 과정은 매우 길고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 될 것이.

이 과정 자체를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는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다수파가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전략이다.

라고 설명하면서 이런 얘기를 덧붙인다.

다수파가 되는 것은 고립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지루하고, 오래 걸리고, 환호성이 없고, 꿈이 같은 이들에게 욕을 먹고, 실패 확률이 높고, 전망이 뿌옇고, 섹시하지 않다. 이런 길을 가는 다수파-급진주의자야말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지점에서, 천관율 기자의 저 설명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의미로 이 글을 썼음을 밝힌다.

 

 

 







2 thoughts on “가장 급진적인 전략은?

  1. 글을 읽고 알린스키와 조성주 선생님 책을 구입해 읽었습니다. 좀 더 일찍 읽지 못한게 아쉬울 정도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2. 물뚝님과 조성주 소장님이 함께 했던 강연을 인상깊게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커다란 담론과 유토피아적 결과만 생각하다보면 오히려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더라구요. 또 한번 물뚝님의 글에 작은 행동부터 실천하자 라는 마음을 먹고 갑니다. 😀

    +알린스키 사진 아래에 조성주님 성함에 오타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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