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디에 사는가: 이번엔, 어느 나이든 농민의 죽음

우리, 어디에 사는가

이번엔, 어느 나이든 농민의 죽음

 시간이 참 빠릅니다.

 317일. 벌써 일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고 합니다. 317이라는 숫자를 보고는 조금은 놀랐습니다. 그 무거운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흘러갔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날의 날짜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11월 14일. 왜, 가끔 머릿속에 콕 박혀서 떠나지 않는 기억들이 있잖아요?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가도, 어느날 문득 떠올라 주체할 수 없는 기억들이요. 제겐 그 날이 그렇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서울시내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서울역 앞, 광화문 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 대학로까지. 뛰어다니느라 숨이 찼던 기억도 납니다. 돌이켜보면 결기나 사명감보다는, 호기심과 열정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민중총궐기 본대회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산명령이 떨어졌죠.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차벽이 통행로를 막고 있었고요.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매캐한 냄새를 맡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엔 그게 최루액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와, 시위라고는 몇 번 경험도 없던 저에겐 너무도 낯선 감각이었습니다.

 저는 곧 청계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물대포. 최루액. 차벽. 식용유. 경찰에게 캡사이신을 맞고 괴로워하던 친구의 모습. 파편이 되어버린 기억들이 하나같이 생생합니다. 방패와 차벽과 물대포와 최루액을 가지고 있는 경찰과,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맞서는 시위대. 분노와 슬픔과 억울함과 무력감이 뒤섞인 그 때의 복잡한 감정이 지금까지도 되살아나곤 합니다.

 그리고 그 때, 저는 보았습니다. 물대포를 맞아 다친 시민이 구급차를 타고 실려나갔고, 경찰은 구급차 안의 환자를 향해 물포를 쏘았습니다. 본능적으로 달려가 물포를 몸으로 막았습니다. 물포가 등에 닿던 순간, 그 절망적인 서늘함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그들을 향한 살의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분노한 일은, 그 전에도 그 뒤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사람이 달려가 물포를 맨몸으로 막았습니다. 환자는 안전하게 이송됐고, 그 뒤에 무사히 치료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서 있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그곳에서 한 농민이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쓰러졌습니다. 당신이었습니다. 피흘리며 쓰러진 농민을 향해 경찰은 계속해서 물포를 쏘았습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농민을 끌어낼 때도,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보낼 때도, 경찰은 물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젖은 몸을 이끌고 들어간 식당에서, 당신이 중태에 빠져 회생이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겁게 제 몸을 적시고 있는 한기가, 이번에는 그들의 저를 향한 살기로 느껴졌습니다. 공포스러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 해산집회가 시작됐고, 경찰도 떠나갔습니다. 저도 곧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종일 뛰어다녀 피곤했는데도, 쉽게 잠들지 못해 뒤척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300일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물포가 당신을 쓰러트렸지만, 사실 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었던 경찰이, 민중총궐기 이후에도 눈 하나 깜짝 않던 정권이, ‘폭력집회’를 운운하던 언론이, 국가폭력을 눈 앞에 두고도 병문안 한 번 오지 않던 정치인이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세웠습니다.

 경찰은 사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규정을 위반하고 물대포를 직사로 쏘아 당신을 결국 중태에 빠지게 만든 경찰은, 사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도 다를 바 없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박멸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사형선고였습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민중총궐기 과잉진압에 대해 “사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어제, 당신이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상황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마자, 경찰은 서울대병원 주위를 포위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눈 앞에 두고 부검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시체를 탈취할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았습니다.

 일반 시민도, 구급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봉쇄한 서울대병원의 정문. 슬픔이 아니라 결기를 가지고 모여야 하는 빈소. 운구되는 시신을 지키기 위해 스크럼을 짜야 하는 시민. 단 한 순간도, 죽음 앞에 슬퍼할 겨를을 주지 않는 그들입니다. 당신을 살해한 그들은 지금까지도 그대로였습니다.

 당신이 사망한 뒤, 경찰은 결국 부검 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영장이 발부되면, 경찰은 강제로 시신을 부검할 수 있습니다. 이미 300일 넘게 입원해 있었기에 사인을 알 수 있는 병원 기록이 충분한데도, 그들은 물포 사격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죽음에의 속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행히 부검 영장은 법원에 의해 기각됐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고 있으며, 서울대병원을 압수수색해 당신의 진료기록을 확보했습니다. 최소한의 예의를 요구하는 것은 이미 사치가 되어버렸습니다.

 6월 민주항쟁 당시,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의해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시신을 그들은 탈취하려 했었습니다. “이한열의 시신 1구”라 적힌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온 경찰. 1987년의 일입니다.

 노동운동 중 의문사한 박창수 열사의 시신을, 경찰은 장례식장 벽을 뚫고 들어와 탈취한 뒤 화장해 돌려줬습니다. 1991년의 일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어느 한 선이 무너져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죽음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시대입니다.

 시대가 과거로 회귀한다고들 하지요. 국정원이 간첩사건을 조작했을 때에도, 선거에 개입했을 때에도, 토건사업으로 국가를 중흥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던 때에도, 역사는 국가가 편찬해야 한다던 때에도, 수장되어가는 수백의 목숨을 눈앞에 두고 아무 일도 하지 못했을 때에도, 사실 저는 그것을 잘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일말의 희망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결별했다고 믿고 있는 과거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힘과, 그 힘에 붙어 살아가는 기생충들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아무런 주저 없이 병원 앞에 배치된 경찰을 보고 그것을 확신했습니다.

 저는 요즈음, 지나가는 교통경찰만 봐도 문득 그 때의 일이 떠올라 치미는 분노를 삭이며 살아갑니다. 서울대병원 앞에 묵묵히 서 있는 경찰을 보며, 저는 그 감정의 당위를 다시 한 번 발견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시대는, 지금보다 더욱 끔찍할지 모릅니다.

 

서울대병원 앞에 배치된 경찰병력.

 

 폭주하는 시대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당연스러워지는 세상입니다. 더이상 놀라지 않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의 세상입니다.

 다만 이것이 어느 한 시대의 서막이 아니기를, 저는 바랄 뿐입니다.

 우리의 시대가 어디쯤 위치하는지, 지금을 사는 우리는 모르기 마련이지요. 미래의 우리가 당신의 죽음을 역주하는 세상의 서막으로 기록할지, 그 정점으로 기록할지, 혹은 변화의 출발로 기록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바로 지금의 우리만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는 주체이기도 합니다. 무엇이라 기록될지는 바로 우리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권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일이, 당신의 죽음 앞에 선 저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일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쯤을 살고 있는지는 영원한 의문이지만, 그래서 또 영원한 확신이기도 합니다.

 

 300일이라는 시간 동안,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일말도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앞으로 긴 시간 동안 그 죽음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시대를 정의하는 하나의 징표를 말입니다.

 기억하겠다는 말로는 이제 부족합니다. 기억하게 만들겠습니다. 모두가 당신의 이름을 잊을지라도, 당신의 죽음 위에 단단하게 쌓여진 상식적인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남겨진 일은 남겨진 자들의 것입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그 열정 위에 우리가 서겠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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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으로 진보하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이전에 미리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이름을 듣지 못하는 세상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당신도, 저도 평화롭게 세상의 진보를 논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 결국 또 한 번의 죽음을 만들어내는 세상. 이 유감스러운 시대가 어서 종말을 맞기를 바랄 뿐입니다. 죽음을 그 죽음의 가치만큼 슬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리고 제가 꿈꾸는, 그리고 당신이 꿈꾸었을, 그 세상을 향해 저는 오늘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좋은 소식만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60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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