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서 제일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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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인간. 좀 멋져 보입니다. 그나마 그렇게 느끼는 것은 그 대상이 갖춘 내면의 감성이 발휘될 때입니다. 자긍심의 문제겠죠. 자신감으로 세상을 향해 고개 들고 우뚝 서 있는 모습 말입니다.

나를 봐. 부족한 게 없어. 인물 잘 났지, 학벌 좋지, 지식은 넘치지, 나? 진짜 열심히 했다고. 그러니 니들도 해 봐. 꿈은 이루어진다니까. 그 모습에서 인간다움을 만나지 못한다면 오만을 가리키는 편견이 덧칠을 하게 됩니다. 대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워지죠. 매력은커녕 안쓰러워지기까지 하죠.

우리는 왜 상대적 박탈감에 허덕이는 걸까요? 그보다 나은 것이 없는 현실의 나에게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그 행복이 나만 멀리 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행복은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 같은 건 아니었나 싶더군요. 매 순간의 행복이 쌓여 가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견딜 수 있도록 하는 마법 같은 말인가 싶거든요.

 

머나먼 북극 하늘에 밤이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 자기 빛을 내며 반짝입니다.

어느 날, 별들은 제 짝을 찾아 하나둘씩 별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난 황소자리야. 나보다 더 큰 별자리는 없을 걸?”

 

그러자 사자자리, 큰 곰자리, 물고기자리, 큰 개자리 별들이 질세라 빛을 냅니다. 그때 둥근달이 둥실 떠올랐습니다.

 

“하하하, 다들 조용히 해. 누가 뭐래도 내가 제일 크니까 말이야.” 달빛이 환하게 빛나자 별빛이 점점 희미해집니다.

“그리고 저길 좀 봐. 온 세상이 환해졌지?”

 

저 멀리 호수 위에도 달빛이 환하게 비칩니다. 반짝반짝 물결은 달빛을 받으며 찰랑거립니다.

 

“어때? 밤하늘에서 나보다 크고 환한 건 없지?” 그때 호수가 말했습니다.

“이봐, 달님! 여길 잘 봐. 네가 아무리 커도 내 안에 다 들어와 있잖아?”

 

정말 호수 위에도 달이 둥실 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어디서 나타났는지 생쥐 한 마리가 찍찍댑니다.

 

“찍찍, 찍찍! 호수님, 호수님, 내 눈을 잘 들여다보세요!” 아! 작고 작은 생쥐의 눈 속에 호수도, 달도, 다 들어와 있습니다.

“어때요? 밤하늘 달님보다, 커다란 호수보다 내가 더 크죠?”

 

으쓱으쓱, 생쥐가 한 마리 캄캄한 숲 속을 걸어갑니다. 달도 호수도 자기 눈 속에 있으니 부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그런데 저게 뭘까?’

 

저런! 부엉이가 생쥐를 단숨에 낚아챘습니다. 생쥐는 찍소리도 못 하고 그만 부엉이 먹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엉이는 먹이를 새끼들에게 나누어 먹였습니다. 새끼들이 실컷 먹고 나서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 그럼 이제 우리 뱃속이 제일 큰 거죠? 그렇죠?”

“글쎄, 잘 모르겠는 걸?” 엄마 부엉이는 날개를 활짝 펴고 숲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누가 제일 큰지 한번 알아볼까?”

 

호수 위에도 작은 그림자 하나가 부엉이를 따라 날고 있습니다. 점점 더 높이, 점점 더 멀리, 부엉이는 달님 속으로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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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날아도 달님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달님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부엉이는 끝없는 하늘로 사라집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커> 원작. 에스키모 설화 / 글. 김진락

 

작은 생쥐의 오만함을 생각해 보자고요. 자기 눈 속에 달님과 호수가 들어 있다고 큰소리를 치잖아요. 그 생쥐를 부엉이가 삼켜 버렸어요. 부엉이 새끼들의 말도 귀엽기까지 하죠. 광활한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한 행성에서 크기를 재봤자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도 비슷할 것 같아요. 세계지도를 펼치면 쉽게 발견할 만큼도 아니잖아요. 그 안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봤자 달님이 내려다볼 땐 귀엽게 보일지도요.

생명체라는 공통점으로 세상을 들여다 보고 생각하게 되면 내 생각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생명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이 세상이 ‘인간’이라는 종의 중심으로 움직이는 거라면 적어도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지요. 하루 12시간 노동을 해서 140만 원을 받는다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나요? 노동의 강도 문제가 아니지요. 노동자를 기업 효율성의 도구로 이용하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업의 오만입니다.

 

[나를 위한 철학 동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커> 원작. 에스키모 설화 / 글. 김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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