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과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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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경쟁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경쟁은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냐? 그렇다면 승자와 패자라는 경계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만드는 기준은 또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경쟁’을 하지 않은 자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지 모릅니다.

‘정신승리 법’은 루쉰의 『아 Q 정전』에서 문학적으로 ‘패자’의 의미로 또는 ‘어리석은 자’의 자기합리화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지나면서 또 다른 가능성이 있지는 않았을까 싶네요. 옳지 않은 군중 심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신승리법.

파리들은 꿀에 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파리의 무리 생활에서 자연스레 얻어낸 경험치겠지요. 잘못된 행동인 줄 알면서 다른 파리들이 마구 몰려들면 따라 하게 됩니다. 군중심리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에게 비슷하게 적용되어온 생존과 관련된 일이지 싶더군요.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꿀로 달려든 이야기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꿀은 살아가면서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윙윙, 윙윙 ~.

천장에 파리들이 잔뜩. 이야옹 ~

언제 들어왔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혀를 날름날름. 꿀단지를 탐내고 있습니다. 쨍그랑!

“이 녀석! 또 꿀단지를 건드렸구나!”

이야옹~

“헤헤, 바보 같은 고양이 녀석, 매일 혼나면서 또 꿀을 탐내다니!”

“글쎄 말이야. 혼날 걸 뻔히 알면서 매번 왜 저러나 몰라.”

파리들이 윙윙거립니다. “킁킁, 그런데 꿀 냄새가 너무 좋다.”

“그래, 냄새만큼이나 맛도 기막히게 좋을 거야.”

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 파리 떼가 붕붕, 날아들었습니다. “야아, 꿀이다, 꿀!”

붕붕, 윙윙 ~ 파리 떼가 꿀 위로 정신없이 날아갑니다.

“안 돼! 꿀은 너무 끈적끈적해.”

“잘못하면 딱 달라붙어서 꼼짝도 못 할 거야.”

파리들은 꿀에 앉지도 못하고 그저 붕붕, 윙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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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지만 너무너무 맛있겠어.”

“딱 한 입만 쪽쪽 빨아먹고 싶어.”

어린 파리들은 자기도 모르게 점점 가까이 날아갑니다.

“에잇, 더 이상 못 참겠어!” 성미 급한 파리 한 마리가 마침내 꿀에 살짝 내려앉았습니다.

냠냠 쩝쩝. “아, 너무너무 달고 맛있다!”

붕붕붕, 와아아 ~~ 파리 떼가 미친 듯이 꿀 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어, 잠깐! 다리가 꿀에 붙어 버렸어!”

“어, 난 날개가 붙었어! 떨어지지 않아!”

“얘들아, 오지 마! 오지 마! 잘못하면 다 죽어!”

꿀에 붙은 파리들이 소리쳤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너희들끼리 꿀은 다 먹으려는 거지?”

다른 파리들도 모두 꿀 위로 새까맣게 달라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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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큰일이다!” 어느새 파리들은 모두 꿀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파리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꿀로 달려들다니, 쯧쯧.”    <꿀과 파리> 글. 김성헌

승자를 위해 패자를 억지 부려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요? 그럼 승자에 속하기 위한 구분은 또 무엇인가요. 그 구분은 누가 만들었던가요? 끊임없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물음표를 던지다 보면 그 원인은 인류가 문명을 이루며 살아온 지나온 역사 속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그 역사를 통해 성찰이 필요한 데 그것은 늘 뒤로 밀려나곤 합니다. 아마도 군중으로 살아가기가 더 쉬웠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그래야만 살아남는 자가 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엘리아스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에서 인류가 직면해 있는 위기 상황을 추적하여 ‘살아남는 자’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무리’가 군중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며 통상적인 사회학적 개념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단위임을 전제하죠. 네 가지로 나눈 그 무리가 살아남은 자로 인류라는 명맥을 유지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카네티는 현대 군중의 기본적 속성 중의 하나인 성장 욕구가 오히려 성장 능력이 없는 무리의 상태부터 나타났다고 보고 있죠. 단 한 사람의 개인이 인류의 선량한 부분을 쉽사리 파괴할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했으면 하는 겁니다.

세월호 참사 900일이 이미 지난 시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과연 내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나는 살아남는 자로서 고개를 들고 하늘 보기가 편안하지 않습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한국 사회를 제대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이 나라는 정신지체자 같은 권력자가 벌이는 황당한 일을 꾸역꾸역 지켜봐야 할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 군중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허영에 그칠 뿐일지라도 ‘역사의 존재’로 살아있는 자가 되어 그들이 군중 속으로 몰아넣는 일을 훼방 놓을 겁니다.

 

[나를 위한 철학 동화] 꿀과 파리 /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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