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은, 관악에 있습니다.

우리,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은, 관악에 있습니다.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사임했다는 소식을 막 들었습니다. 세달 여에 걸친 투쟁 끝에 승리를 이끌어내신 이화여대 학생분들께 축하와 더 큰 응원을 보냅니다. 승리의 기운이 한강을 건너 여기까지도 밀려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여기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입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 10월 10일,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전면철회를 주장하며 본부를 점했으며, 현재까지 본부를 지키고 농성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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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시흥캠퍼스가 생기면 학교도 넓어지고 좋은 거 아니야?” “시흥시 주민들에게 약속해 놓고 파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조성에 참여할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저는 총학생회에서도, 단과대 학생회나 무슨 단체 같은 것에서도 활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문을 꽤나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런 의문에 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답을 드리기 위해선, 조금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무려 9년 전인, 2007년의 일입니다.

 2007년, 서울대학교에서는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 2007-2025>라는 계획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계획은, 2025년까지 서울대학교가 전세계 10위권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높은 목표이긴 하지만, 대학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학교가 다양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그런데, 이 계획서의 ‘국제화’ 항목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글로벌 리더십 캠퍼스를 구축하고, 신학문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위해 거주대학을 활용할 것.

 

‘거주대학’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기로 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리더십 캠퍼스 구축’이었습니다.

바로 이 ‘글로벌 리더십 캠퍼스’가, 시흥캠퍼스 논의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측에서 새로운 캠퍼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은 계획서에서도 제시됐듯이 국제화 문제입니다. 학교는 내국인의 외국 유학이라는 기존 방식의 국제화가 아니라, 유수한 외국의 인재를 유입하는 방식의 국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옳은 말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국제화가 진행된다면 좋겠지요.

 

그런데 이 다음부터 논리구조가 이상하게 전개됩니다. 그런 국제화를 시행하기 위해, 새로운 캠퍼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타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관악캠퍼스에서는 왜 국제화를 하지 못하는지 의문이지만, 학교가 지금까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니 저도 답해 드릴 순 없습니다. 전직 기획처장님의 “국제공항이 가까워서”라는 답변은 답변이라기엔 많이 민망하니까요.

 

학교가 주장한 또 하나의 이유는 ‘관악캠퍼스의 포화’였습니다. 관악캠퍼스가 너무 꽉 차 있어서, 새로운 연구소를 짓거나 학생 자치 공간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었죠.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공간이 부족한 걸까요? 이건 조금 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 이야기를 했었죠? 그런데 사실 이 계획서에는, 지금 말하고 있는 ‘글로벌 캠퍼스’ 말고, 또 다른 캠퍼스 하나를 더 지어야 한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 캠퍼스는 바이오 산업이나 친환경 사업 관련 연구를 하는 캠퍼스로 계획되었죠.

 

이 캠퍼스는 어떻게 됐냐구요? 만들어졌습니다. 이미 완공되어 있어요. 강원도 평창시에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가 설립되었고, 현재 운영 중에 있습니다. 270만m² 크기의 거대한 캠퍼스를, 3,400억 정도의 돈을 들여서 만들었습니다. 물론 아직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이던 시절에 세운 계획이니,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졌죠.

 

그런데 이 캠퍼스, 운영이 잘 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거대한 캠퍼스에 상주하는 교수는 15명 남짓에 불과합니다. 학생들은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죠. 물론 농생물학 등의 연구는 큰 토지가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교수님들이 장원을 만들고 영주가 되신 게 아니라면 이건 너무 넓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들어선다는 기업 연구소는 감감 무소식이고, 학교는 현재 이 캠퍼스 유지에만 매년 250억 정도의 돈을 쓰고 있습니다. 심각한 수준이죠. 서울대학교의 계획 없는 공간 운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관악캠퍼스라고 다를까요? 서울대학교가, 평창캠퍼스를 제외하고 가지고 있는 땅은 모두 400만m² 정도 됩니다. 거대하죠. 국내에서 가장 넓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봐도 좁지 않아요. 그 넓은 중국의 북경대보다 크고, 예일대는 학교 안의 골프장까지 합해도 서울대보다 좁습니다. 동경대는 크기가 서울대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관악캠퍼스가 오래 전부터 난개발되어 왔고, 개발제한구역이 걸린 부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간 부족’이라니, 이렇게 거대한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 주제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국제화도, 공간 부족도, 시흥캠퍼스 건립의 이유가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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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런 알 수 없는 이유로, 서울대학교는 2007년에 국제화 캠퍼스 부지를 공모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시흥시가 선택됐죠. 시흥시는 현재 ‘배곧 신도시’라 불리는 새로운 신도시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서울대학교가 들어올 부지를 마련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6월, 서울대학교와 시흥시가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물론 ‘양해각서’라는 문서는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양해각서를 통해 시흥시와 서울대학교가 약속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시흥시는 서울대학교에 약 20만 평 정도 되는 땅을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그리고 민간 건설업체 하나를 선정해서, 서울대학교 주변에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 줍니다.

 

신도시 부지이기도 하고, 대학이 들어온다고 하니 땅값이 꽤나 오르겠죠? 분양 과정에서 민간 건설업체가 이익을 많이 볼 겁니다. 그런데 이 이익은 서울대학교 덕분에 번 것도 일부 있으니, 이 민간 건설업체는 3000억 원 규모의 건물을 서울대학교에 무상으로 지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분양 실적에 따라 최대 1500억을 서울대학교에 직접 지급하여야 하죠. 이렇게 합의가 됐습니다.

 

결국 서울대학교는 시흥시에 들어간다는 약속을 해 주고, 그 대가로 20만 평 정도의 땅과, 4500억이라는 이익을 취할 수 있게 된 겁니다.

 

2011년에 사업 마스터플랜이 완성되었고, 2012년부터 배곧신도시가 착공에 들어갔습니다. 위에서 말한 ‘민간업체’는 2013년에 ‘한라’라는 건설업체로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민간업체 선정 때까지 시흥캠퍼스의 진척 상황을 전혀 안내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캠퍼스가 새로 생긴다는 소식과, 이미 민간업체 선정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갑작스럽게 접하게 된 거죠. 심지어 본부 측의 통보도 아니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소식을 접했습니다.

 

비민주적으로 추진된 캠퍼스에 대해 학생들은 당연히 반발했습니다. 당시 총학생회는 단식 투쟁, 천막 투쟁 등을 이어갔죠. 학교는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화협의회’라는 기구를 만들고, 이 기구에서 학생 측과 학교 측이 시흥캠퍼스에 대해 직접 토론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7월에 신임 성낙인 총장이 부임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화협의회는 최소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총장은 이 약속을 어겼습니다. 2014년 9월에 한 번, 8개월 뒤에 한 번, 그리고 또 1년 뒤에야 또 한 번의 회의를 열었죠. 이 기구는 사실상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약속을 어긴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낙인 총장은 학생들에게, ‘실시협약’을 체결하기 전에 대화협의회를 통해 반드시 이야기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실시협약’은 양해각서와 다르게 실제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협약이죠. 하지만 성낙인 총장은 대화협의회를 열지 않았고, 지난 8월 22일 학생들에게 30분 전에 보낸 메일 한 통으로 실시협약 체결을 알렸습니다. 체결식조차 없었던 졸속 협약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총조사’라는 것을 실시해,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체결 반대라는 의견을 제시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의견과, 총장의 약속은 허공에 사라지고 말았죠. 학생 측은 항의하며 총장에게 직접 찾아가기도 했지만 청원경찰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실시협약 체결 이후 9월 6일, 학생들은 총장 명의로 메일을 받았습니다. “신뢰의 서울대학교를 약속합니다.”라는 제목이었죠. 이 메일에서 성 총장은 시흥시와의 신뢰를 지키게 되어 다행이라며, 불통에 대한 지적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다니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사과같지만 사과는 아닌, 애매한 내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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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캠퍼스는 이렇게 학생들의 뜻을 완전히 무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협약을 만들고 체결하는 과정까지 학생들의 의견이 들어갈 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시흥캠퍼스에서 무엇을 그리 하고 싶길래 이런 방식으로 일처리가 되는 걸까요? 시흥캠퍼스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려 하는 걸까요?

 

처음 학교에서 제시한 운영 형태는 위에서 말한 ‘거주 대학’이라는 형태였습니다. Residential College, 줄여서 ‘RC’라고 흔히 부르는 방식입니다. 학생들 전부가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형태죠. 사실 이것도 나쁜 형태는 아닙니다. 대학생 주거난을 해소하고, 집중적인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실제로 유럽의 많은 대학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죠.

 

하지만 지금 서울대학교가 선택하고 있는, 하나의 캠퍼스와 단과대가 있는 형태도 역시 나쁜 형태는 아닙니다. 미국의 많은 대학교는 이런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어느 한 쪽이 옳은 게 아니죠. 또한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을 RC형태로 바꾸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갑니다. 기숙사도 지어야 하고, 프로그램도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자율권 침해 문제도 심각합니다.

 

학생들은 반발했습니다. 학생들을 의무로 기숙하게 하는 학교를 만들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으니까요. 강한 반발에 부딪힌 학교 측도 결국 “학생들의 동의 없는 강제 RC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RC를 하지 않는다면, 그 넓은 시흥캠퍼스에는 누가 들어갈까요?

 

총장님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계획이 없다.”

 

특정 단과대학을 들어서 시흥으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학교 측이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학생들의 동의 없이 단과대 이전은 없을 거라고요. 현재 관악캠퍼스에는 시흥 이전을 원하는 단과대학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시흥캠퍼스에는 누가 들어갈까요?

 

총장님의 답변은 다시 이렇습니다. “계획이 없다.”

 

서울대학교 병원 분원도 시흥캠퍼스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병원은 서로 다른 법인입니다. 서울대학교가 병원을 넣겠다고 약속해줄 수 없어요. 하지만 각종 포털사이트 지도에는 이미 ‘서울대학교 병원 예정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동의는 어떻게 얻어야 할까요? 역시 계획이 없습니다.

 

학생들의 이동 편의를 위한, 관악-시흥간 셔틀버스 운행 이야기도 나왔죠. 하지만 시흥시는 상주 인원이 많길 원합니다. 이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이쯤 되면 예상하셨겠지만, 역시 계획이 없습니다.

 

시흥캠퍼스 건설 과정에서, 민간업체에게 받는 건물과 돈이 4500억 정도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사실 이 자금으로는 시흥캠퍼스 전부를 완공할 수 없습니다. 전부 완성하는 데는 1조 8천억 정도의 돈이 들어가요. 부족한 돈은 어디서 마련할까요? 이번에도 당연히, 계획이 없습니다.

 

총장님은 이런 말로 이 모든 문제를 정리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숙제다.”

 

 

20만 평 규모 땅에, 1조 원을 들여서 캠퍼스를 짓는데, 계획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2018년 3월부터 1차 운영을 시작한다는데, 대체 무얼 할 지는 학생도 모르고 학교도 모르고 시흥시도 모르고 건설업체도 모릅니다. 숙제는 총장님이 만들었는데 갑자기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어버렸어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정말 궁금해집니다. 이 캠퍼스는 대체 왜 지으려고 하는 걸까요?

 

문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돈’입니다.

 

서울대학교는 2011년, 학생들과 시민들의 반대를 뚫고 법인화를 강행했습니다. ‘국립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되었습니다. 과거엔 국가에 완전히 속한 국가기관이었다면, 지금은 일종의 공기업이 된 셈이죠. 국가가 법인을 세우고, 이사와 이사장을 선임해 그들이 학교를 관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기죠. 국가가 서울대학교에 돈을 줄 이유가 사라집니다. 물론 대학이고, 국립법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국고 보조금이 들어가지만, 예전처럼 많은 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서울대학교가 돈을 버는 방식은 다섯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국고 출연금, 등록금, 연구비, 기부금, 그리고 수익사업을 통한 이윤입니다. 국고 출연금은 말했듯이 늘릴 수가 없고, 등록금을 올리기엔 부담스럽죠. 연구비와 기부금은 학교에서 늘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학교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수익사업입니다.

 

단순한 수익사업이 아닙니다. 학교 로고를 박아서 기념품을 파는 정도가 아니죠. 건물을 올리는 정도로도 안 됩니다. 스케일이 크죠. 캠퍼스 하나를 통째로 새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생깁니다. 그렇게 ‘시흥캠퍼스’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20만 평의 땅과 3000억의 건물, 그리고 1500억의 자금. 서울대학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물론 학교를 운영하는 데 최소한의 운영 자금은 필요합니다. 학교 운영 자금이 충분해서 학생들의 등록금을 낮춰주거나, 복지 사업을 진행한다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단순히 건물을 세우고 자신의 임기 내에 치적을 만들기 위해서 수익사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무시된다? 교육 기능을 잃어버린다? 학교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흥캠퍼스를 두고 얼마나 많은 돈이 오가고 있는지는 이미 보셨습니다. 물론 시흥캠퍼스 완공과 운영에는 앞으로 더 많은 돈이 들어가겠지만, 그 때는 또 새로운 수익사업을 찾아나서면 되죠. 캠퍼스 안에 민자 기숙사를 만들어도 되고, 편의점이나 대기업 빵집을 유치해도 됩니다. 기업이 원하는 연구소를 유치해서, 기업이 원하는 연구만 진행해도 됩니다. 캠퍼스가 생기면 돈을 벌 방법이야 많습니다. 교육을 할 방법이 없어서 문제죠. 물론 그들에게는 큰 문제도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서울대학교가 돈을 버는 방식은 또 어떻습니까.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을 팔아 무상으로 토지를 제공받았고, 주변에 투기 붐을 일으켰죠. 그 과정에서 민간 토건자본이 돈을 벌어갔고, 그 이익의 일부를 서울대학교가 가져가는 형태입니다. 학교가 투기를 부추기고, 토건자본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거죠. 학교로서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흥캠퍼스에서 어떻게 교육을 할지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서울대학교가 시흥에 가는 이유는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죠. 학교가 바라는 것은 오직 돈입니다. 그 돈을 위한 계획만 철저하다면, 시흥에 캠퍼스를 짓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시흥캠퍼스는 단순히 캠퍼스를 하나 더 짓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계획이었다면,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좋은 캠퍼스를 만들고자 노력해도 됩니다. 총장의 ‘유감’ 정도에 굽히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흥캠퍼스는,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교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쫓아 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짓밟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좋은 캠퍼스’를 만들자며 움직일 수 없는 거죠. 투기자본을 이용해 돈을 버는,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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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생들은 파기되는 약속, 비전 없는 토건사업, 기업화된 대학을 ‘시흥캠퍼스’라는 하나의 상징을 통해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법인화 이후, 사실상 학생들이 학교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막아세우고 있습니다. 총장 직선제는 폐지되었고, 이사회가 총장을 선출합니다. 새로 이사를 선출해야 할 때, 신임 이사는 사실상 이사회에서 뽑습니다. 폐쇄적인 자기선출 구조죠. 제도적으로,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학생들은 지난 10월 10일, ‘전체학생총회’라는 기구를 소집했습니다. 이것을 서울대학교 학생회의 가장 높은 의사결정 기구로, 직접민주주의 기구입니다. 서울대학교 전체 재학생의 10% 이상이 모이면 성사되고, 현장에서 투표를 통해 학생회의 움직임을 결정합니다.

 

서울대학교 재학생은 16,000명이 조금 넘습니다. 10월 10일, 전체학생총회에는 2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총회를 성사시켰습니다. 여기서 투표를 통해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전면철회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투쟁 방식으로 본부 점거를 결의했습니다. 이 결의에 따라 학생들은 본부에 진입, 현재까지 농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12일 학생들과 대화를 요청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성 총장은 “나의 임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제까지 반대하지 않다가 왜 그러느냐”, “나는 소통을 했고, 사과를 했다.”고 주장하며 실시협약 철회는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분명 법적 효력이 있는 실시협약은 성 총장 본인이 체결했고, 학생들은 학생총회 전까지 보름 가까이 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캠프파이어라도 하고 논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소통과 사과 역시 미흡했죠. 결국 뚜렷한 성과는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총장실 점거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 있습니다. 총장실에서 학생들이 발견한 문건 중, 시흥캠퍼스 반대 학생들을 사찰한 문건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학번과 소속, 지도교수, 활동 내용 등을 적은 문서였죠. 성낙인 총장은 본인이 시킨 일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학생들이 시흥캠퍼스에 반대하는 동안, 학교는 학생들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학생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민주주의적 구조 따윈 없었습니다. 등록금을 내는 학생이 학교 운영에 참가할 자본주의적 구조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의 참여를 조직적으로 막아세우는, 독재의 구조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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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캠퍼스 반대에 대한 수많은 의문. 이것에 대한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메일을 보내고, 직접 찾아가고, 천막을 치다가, 이제는 본부에 들어갔습니다. 학생들은 총장실에서, 부총장실에서, 기획처장실에서, 대회의실에서, 그리고 본부의 차가운 복도에서 오늘도 밤을 지새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시흥캠퍼스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화되어 돈만 쫓아가고 있는 대학과, 그 과정에서 묻히는 학생들의 목소리, 교육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학교의 운영원리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적이지도, 그렇다고 자본주의적이지도 못한, 권위와 패권만이 존재하는 대학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서울대학교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결국 총장 사퇴라는 결실을 얻었습니다. 그 승리에 다시 한 번 축하와 응원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부러움과 함께, ‘우리도 이길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함께 따라 올라옵니다.

 

하지만, 꼭 이길 수 있다고 믿어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싸웁니다. 더이상 “이제까지 반대하지 않다가 왜 그러느냐”는 반문을 듣지 않기 위해 싸웁니다. 어느날 문득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싸웁니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기 위해 싸웁니다. 단 한 걸음의 진보를 위해 싸웁니다. 그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싸웁니다.

 

 

이곳, 우리가 점거하고 있는 총장실은 그런 공간입니다.

 

때로 지쳐하는 사람들을 보며, 소리치다 우는 친구를 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휴학계를 내고 온 동기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는 사람들을 보며, 추운 밤에도 촛불을 들고 모이는 학생들을 보며, 묘한 결의에 차 있는 캠퍼스를 보며,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 점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리고 어떻게 끝을 맺을지.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하지만 관악캠퍼스에, 강의실에, 본부의 차가운 바닥에, 도서관에, 광장에, 그리고 총장실에.

 

여기에, 아직 우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의문에 대한, 저의 대답입니다. 오늘도 총장실에서 잠을 청하는 우리 모두의 대답입니다. 함께 이 결정을 만든 2000명 학생들의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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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63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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