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와 뱃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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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귀천 없음은 학교에서 배운 교훈이죠. 사람마다 제 몫을 타고난다는 말도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나에게 희망을 품게 하기 위한 과한 칭찬이라 여기더라도 그런 말을 듣는 그 순간의 나는 벅찬 기운을 느끼기도 합니다. 늘 현실 감각을 깨달으려고 애쓰는 나는 또 지금을 말합니다. 지금이 없으면 내일도 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현실감이란 게 꼭 타인의 시간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곤 해요. 과연 내 현실은 어떻고 내 지금은 어떤가? 이런 물음을 던지며 이 설화를 읽어보면 조금은 알듯 합니다.

 

학자가 나귀를 끌고 길을 갑니다. 봇짐 속에도 책, 나귀 등에도 책, 어딜 가나 책, 책, ·······.

학자는 평생 책만 읽으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이 길가 공터에서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쯧쯧, 한창 책을 읽어야 할 나이에 저렇게 놀기만 하다니······.”

 

학자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젓습니다. 한참 가다 보니 큰 강이 나왔습니다. 강기슭엔 달랑 나룻배 한 척이 떠 있고, 배 위엔 뱃사공이 한가롭게 졸고 있습니다.

 

“여보게, 뱃사공! 나를 강 건너까지 좀 태워 주게.”

“네, 어서 타십시오.”

 

학자와 나귀가 배에 오르자, 배는 꽉 찼습니다. 산들바람. 잔물결에도 배는 기우뚱거렸습니다.

배가 흔들려도 학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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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그리 재미나게 보십니까?” 뱃사공이 물었습니다.

“자넨 책 제목을 보고도 모르겠는가?” 학자가 책 표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는 까막눈이라 무슨 글자인지 하나도 모릅니다.”

“아니, 글을 못 읽고서 어떻게 살 수 있지?”

“하하, 그래도 저는 노를 젓고 헤엄도 아주 잘 치거든요.” 뱃사공이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학자는 뱃사공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인생에는 노를 젓고 헤엄을 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네.” 하고 말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책을 읽고 학문을 닦는 일이지.”

 

머쓱해진 뱃사공은 입을 꾹 다물고 열심히 노만 저었습니다.

한참 노를 저어 가는데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물결도 거칠게 일기 시작했습니다.

뱃사공은 서둘러 노를 저었습니다. 기우뚱기우뚱, 휘청휘청

배는 점점 심하게 흔들리는데도 학자는 계속 중얼거리기만 합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세상을 알 수 없어.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별안간 세찬 바람이 불어와 배가 휙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앗! 사람 살려!”

“어푸, 어푸!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학자가 소리쳤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여태 헤엄치는 법도 못 배우셨습니까?”

“어푸, 어푸! 난 헤엄을 못 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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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공은 뭍으로 헤엄치다가 다시 학자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물에 빠진 학자를 그냥 놔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휴우, 고맙네.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일세.” 학자가 말했습니다.

“하하, 너무 책만 보느라 수영 배울 틈이 없었나 보군요. 어떠세요?

살아가는 데는 헤엄치는 일도 꽤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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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공의 말에 학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학자와 뱃사공> 원작. 중동 설화 / 글. 김진락

 

개인의 재능이 제 각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하면서 살아온 인류의 역사. 인류는 그렇게 진보했습니다. 어느 하나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말은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되묻는 물음이 나를 귀찮게 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내 몫을 잘 발휘하고 있는 걸까?

다양한 능력이 그 쓰임대로 쓰이는 사회는 문제가 적을 겁니다.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자연스레 나누며 살아가는 세계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 분배가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사회라면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제거해 가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겠지요. 이 중동 설화에서처럼 자기한테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국가 경쟁력이라 해서 경제 순위만 높아지는 정책만을 추진한다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삶도 높아져야 할 겁니다. 그런데 삶이 높아진다고 삶의 질이 좋아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 정책이어야 하는 이유겠지요. 국가의 경쟁력은 숫자로만 생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제 역할을 못할 때 불협화음은 자기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치게 합니다. 책을 읽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학자처럼 뱃사공의 노를 젓는 일은 그 중요함으로 따지면 다를 게 없습니다. 뱃사공의 능력을 무시하고 학문을 배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학자를 기꺼이 외면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뱃사공은 헤엄을 칠 줄 모르는 학자를 구해주었습니다.

인간애입니다. 자연스레 인류가 진보하면서 가슴에 품었던 사랑의 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이기에 바다에 빠진 사람을, 헤엄도 칠 줄 모르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은 거겠지요. 학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가 가진 능력과 상관없이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잖아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배가 세계라는 바다에서 이토록 출렁거리는데 선장 혼자 외칩니다. 무조건 자기 생각과 판단만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어리석은 선장은 공동체를 분열하게 만들죠. 그 어리석음을 자기 이익으로 이용하려는 사람과 배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치열해집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공동체가 준 힘을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용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말만 늘어놓습니다. 이런 선장에게 맡긴 배는 길을 잃고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되는 일,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침몰하기 전에 배를 구하는 일은 공동체 구성원의 몫은 아닐지요.

 

[나를 위한 철학 동화] 원작. 학자와 뱃사공 / 글. 김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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