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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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절대 하지 마! 과연 애정 어린 덕담일까. 정치는 사익 추구라는 생각으로 접근해 본다. 공익을 위한 정치는 이 나라에서 찾기 너무 어렵기에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선 잡기쯤으로 해 두려 한다. 정치는 뭔가? 그동안 막막하게 접근했던 시선을 현재 내 생각을 기준으로 해 본다. 나를 위해 정치를 한다고 말하니까 “정치하게요?” 하는 질문부터 “정치인도 아니면서” 까지 다양한 말들이 들린다.

우선 ‘나’를 위한 정치의 순서를 생각해 본다. 먼저 사회에서 이슈로 오르내리는 일들에서 스스로 분노 조절이 가능할 수 있는가이다. 불의에 들끓는 청춘도 아닌 시간대에 있는 인간에게 분노 조절이 안 된다는 의미는 일면 자기 분노조절 장애 같기만 하니까. 나이 들먹이며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으로 근거 있는 일에 분노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두 번째는 사회에서 덜 건드렸으면 하는 사생활 영역이다. 내가 무엇을 하건 내 자유 의지의 발동에서라면 그 책임도 내가 지겠다는 의미이다. 이 영역을 국가가 나서서 지나치게 법 조항으로 규정해버리면 개인의 자유권이 심하게 위축된다. 이 이유만으로도 나는 현 정부가 얼마나 시대 감각이 없는 집단인가를 주저 없이 따질 수밖에 없고 분노 조절에 심장이 벌떡거린다.

세 번째는 노동이다. 잘 누리며 살기 위해 일이 필요한데 그 일로 하여 내 삶이 황폐해진다는 것은 너무 부당하기에 그렇다. 내게 필요한 만큼 노동할 시간의 선택권이 당연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노동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생존을 위해 일할 권리, 그 사회권은 자유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선 어림 반 푼도 없다. 나의 능력으로 하는 일이 타인의 기득권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노동환경이다. 이 세 가지가 내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다.

정치 문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면 회피하거나 그건 정치인이 알아서 할 문제라며 외면하곤 한다. 아마도 피차 모처럼 만나서 열 내며 얼굴 맞대고 지껄일 노력의 수고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그동안 어떻게 잘 지냈느냐고 묻는다. 못 지냈어, 열 받아서. 왜?라고 묻는다. 정치 때문이라 응수하면 에이, 그러니까 참 피곤하게 살아, 하며 웃어준다. 마주하지 않고 옆에 앉아 있다면 오른팔 뒤꿈치로 명치를 때릴 수 있을 텐데.

궁금하다. 어째 정치는 없고 정치인만 동동 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중은 왜 대표 정치인에게 해바라기를 할까. 선거는 이기는 게 목표니까 인물론으로 기선을 제압해야 하는 거라고 누군가 말해주던데 그게 영 석연치 않았다. 그렇게 해서 계파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분열이란 말로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드는데 싶었다.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고 정치인이라는 말에 오랫동안 주입된 한국사회의 학습효과 결과물의 하나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정치인에게 속지 않으면 될 것 같다. 그러려면 정치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들의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지키려면 더 열심히 고민하고 나를 대신할 인간을 선택하게 될 테니까. 정치 집단이라는 관계에만 집착하게 되면 비판이 사라지지 않을까. 비판 없는 정치는 단절이다. 새누리당의 일관된 모습의 집단주의는 비슷한 견해를 지닌 인맥으로 벽을 친다. 그 벽에 무력해지는 건 야당의 몫처럼 되어 버렸다.

대체로 두 개의 프레임으로 가면 아주 쉽다. 오지선다형 시험이 쉽지 않은 것이 그렇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얼마나 산뜻한가. 확률도 높다. 자그마치 50%이다. 벼락치기로 절반의 행운을 늘 끌고 갈 재주만 있다면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제법 괜찮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되니까. 그런데 정치는 시험 답안지처럼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지선다형쯤일 정당 선택 문제를 풀기 위해 나의 정치를 도와줄 정책과 책임감 있는 정당 찾는 일과 대의해 줄 국회의원을 이용해야만 가능하다. 내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투표는 지금을 바꾸는 것은 분명 아니다. 무엇이든 섣부른 기대와 너무 빠른 결과를 원한다면 다시 반복되는 정치 혐오와 냉소는 별 도움이 안 되며 오히려 원하지 않는 정치 환경을 제공해 주기도 하니까. 그동안 겪을 만큼 지나온 시간이 있으니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말의 힘은 사라졌다고 본다. 다만 그 말의 힘을 살리기 위한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아직도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루는 정치판을 기대한다. 2016년 총선을 지나면서 지난 4년 간 국회의원으로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온 국회의원을 우선 선택했던 것일까? 나는 4선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부디 다음 총선에선 자발적으로 물러나서 젊은 정치인을 위한 아낌없는 노력을 해주었으면 한다. 자연스럽게 물갈이라는 말과 혁신이라는 말을 꺼내 들 필요도 없어진다. 그만큼 세대의 불협화음이라는 잡음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국회의원 4번이면 충분한 기회의 시간이었고 그러고도 부족하다면 내 뒤에 서 있는 젊은 정치인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면 된다. 새로운 인재의 영입만이 부패하여 죽은 정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들의 역동성이 시스템의 고착화를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부평초 같은 민주주의를 걷어내고 생기 있는 건강한 묘목들을 정치판에 심을 노력이 요구되는 시대임을 모르지 않을 것 같다. 기성세대가 가르치기보다는 젊은 세대의 삶에서 배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그 건강함은 위장이었고 땅속으로 들어가 불량한 뿌리 내림을 지금까지 키웠을 뿐이다. 그 썩은 뿌리를 캐내 버리고 새로운 뿌리 내림을 위한 자체 세력을 키우는 일과 텃밭을 내어주어 그 묘목을 지켜줄 바람막이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적어도 한 세대 이후에는 건강한 민주주의로 세대 간의 활기가 넘치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는 그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시작이다. 나는 너무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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