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것이 나를 만든다 – 오디오 논평

2016년 12월 17일 토요일, 물뚝심송 박성호의 오디오 논평 시작하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오늘 저는 형님가족과 함께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에 찾아가 보기로 했는데, 나이가 먹었는지 이젠 날씨가 추우면 밖에 나가기가 싫어져서.. 하지만 추울수록 더 활동적으로 생활을 해야겠죠.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유기농 분야에서 많이 나오는 말인데요. 오염된 먹거리를 많이 섭취하게 되면 그만큼 내 몸이 나빠지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록 내 몸은 건강해진다는 의미일 겁니다.

본질적으로 생각해 보면 인체는 지속적으로 물질대사를 하고 있고, 음식으로 섭취하거나 호흡으로 섭취한 물질들이 대사를 일으키면서 우리 몸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니까 정확하게 맞는 표현입니다.
사실 태어날 때 우리 몸을 이루고 있던 물질 원자들 중에 지금도 남아 있는 원자는 거의 없을 것 같군요. 모두 다 다른 원자로 순환배치되고, 전에 있던 것은 배설작용으로 몸 밖으로 나갔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유기농, 자연요법 이런 얘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런 움직임의 정신에는 동의하지만 그 실천적인 면에서 조금 과민하고, 비과학적인 주장들이 보여서 걱정하는 쪽이죠.

제가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지적인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것, 내가 읽는 것이 나를 만든다.

육체적인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자아를 구성하게 된다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겁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 바로 극단적인 정파성, 패거리즘, 편가르기 문화의 폐해에 대한 것이라는 점, 제 이야기를 자주 들어 주시는 분들은 모두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 일정 부분 열광을 동반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과거 노무현을 지지하던 시절, 저 역시 노빠였고, 노무현을 보고 열광을 했습니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어요. 그 유명한 연설, 조선왕조 육백년 동안 우리는, 으로 시작하는 그 연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나서지 마라. 이 부분이 나올 때 쯤이면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게 되죠.

이거 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일정 부분 정파성으로 인한 편향성도 용납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양쪽이 거의 비슷한 문제가 있을 때 우리 편을 편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거기다가 좀 사소한 잘못이라면 우리편의 잘못은 눈감아 주고, 상대편의 잘못은 은근히 까발려서 곤혹스럽게 만드는게 아주 통쾌한 스킬 아니겠습니까?

이런 거 다 용납되는 부분이 있어요. 어느 선까지는 애교로 봐주고 관습적으로 용납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선을 넘습니다. 우리편은 완전무결하고, 상대는 순수한 악의 결정체가 됩니다. 우리편은 모든 법과 규칙을 완벽히 지켰으나 상대편은 숨쉬는 것도 불법이 됩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오해하는 것 뿐이죠. 사회 일반의 상식으로 감당이 안되는 극단적인 편향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절대 용납이 안되는 선이죠. 그러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까지 해를 입히고 침몰하게 됩니다. 나도 침몰하고..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도 침몰하고..

이렇게 되는 이유는 뭘까 하고 고민을 해 본 겁니다.

그게 바로, 극단적으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피드백 문제라고 판단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주변을 먼저 보게 되어 있고, 공감이 되는 컨텐츠를 더 많이 보게 되어 있습니다. 똑같이 언론을 봐도, 맘에 드는 말을 하는 언론의 기사를 더 많이 보게 되고 더 공감하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더 좋아하고 자주 만나게 되어 있죠.

그런 습성은 SNS 공간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맘에 안드는 말을 하는 사람은 블락해 버리고 차단해 버리고 언팔합니다. 맘에 드는 말, 그것도 아주 자극적으로 강렬하게 하는 사람을 팔로우 하고 친구로 등록하고 수시로 멘션을 보내며 어울립니다.

즉, 어떤 단계가 지나면 나는 주변의 컨텐츠로부터 정보를 얻는게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확인해주고 강조해 주는 정보만 골라서 듣고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좀더 극단적이고 좀더 자극적인 정보들로 나를 채워가게 되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자신이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내 주변에서 생산된 극단적인 주장을 살짝 살짝 더 강하게 왜곡시켜서 주변에 퍼트리게 되는 겁니다.

결국 내가 보는 것이 나를 만들어 버린 거죠. 그리고 그게 절대 틀릴 리가 없다고 확신을 하게 됩니다.

거기다가 주변에서는 그런 나에 대해 열광하고 있는 거죠. 이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싸워 물리쳐야 할 악의 무리들이고, 그런 악의 무리들에게 내가 매몰차게 쌍욕을 하고 부정을 할 때 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환호를 해 줍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내 맘에 드는 컨텐츠를 찾아 읽는게 아니라,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품질이 갖춰진 “옳은” 컨텐츠를 찾아 읽어야 하는겁니다. 그게 불편하고 낯설고 거북하고 어렵더라도 말이죠.

일부러라도 내 의견에 반대가 되는 글들을 찾아서 균형을 맞춰줘야 합니다. 입에 안 맞는 거친 음식이라 하더라도 내게 필요한 영양소가 있다면 찾아서라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입에 달고 맛있는 음식만 골라서 계속 먹다보면 지나친 비만으로 인해 건강을 잃게 되듯이 내 맘에 맞는 컨텐츠만 찾아서 읽다보면 극단적인 광신적 빠돌이가 됩니다. 실제 현실과 동떨어지는 주장을 하게 되는 건 덤이고, 어느 순간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광신도들만 남아 있게 됩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깨어 있다는 말도 어느 한 정파가 써 버리는 바람에, 광신의 상징처럼 오염되어 버렸지만 원래는 좋은 말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느슨한 연대..

깨어 있다는 말은 내가 어떤 정치인을 잠안자고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라, 항상 무지와 맹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입에 쓴 음식을 먹듯, 내 의견을 바로 잡아줄 주장들을 접해야 하고, 항상 나와 다른 의견을 볼 때에도 저런 생각도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진지하게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정치판 이권 싸움만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확률로 보면 그런 싸움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어쩌면 상대방은 지금 당신의 맹신적인 행태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서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눈을 들어 하늘도 바라보고,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지켜 보시길 권합니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을 만듭니다.

2016년 12월 17일 물뚝심송 박성호의 오디오 논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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