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을 만나다

 

우연한 기회에 대선 주자 중의 한 명인 안희정 충남 도지사를 지근거리에서 만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대선정국으로 돌입하고, 실제 대선 후보가 된다면 아마 특별 기획 시리즈 인터뷰로 정식 인터뷰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 때가서 봐야 할 일.

누군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때 일단 직접 육성으로 이야기를 들어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면을 통한 텍스트로,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한 컨텐츠로, 카메라를 통한 화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육성으로 생각을 들어본다는 것은 미세한 표정과 팔동작이 표현하는 언어가 첨가되고 눈빛과 몸동작이 더해지면서 훨씬 더 풍부한 언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장소는 어떤 일요일의 홍대 근처, 행사 제목은 “안희정, 디지털 인플루언서와 만나다” 였다. 마치 내가 무슨 인플루엔자가 된 것같은 기분이 드는 제목.

그 자리에서 나왔던 모든 이야기들을 줄줄이 읊을 생각은 없다. 그런 자리에서는 또 그런 자리에서 어울리는 화법이 있고 내용이 있는데 그걸 또 텍스트로 옮기면 불필요한 왜곡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차피 안희정 지사가 대선에 출마하게 되면 독자 여러분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훨씬 더 자주 듣게 되실 것이다.

대신 확실하게 전달해 드리고 싶은 것이 몇가지 있기에 이 글을 쓰는 것뿐이다.

 

들러리는 아니다

그 첫번째는, 안희정 차차기론이다.

본인도 의식을 했는지, 이 부분을 매우 강조해서 이야기를 했다. 안희정은 차차기 아니냐 하는 지적. 즉 이번에 뽑게 될 차기는 문재인, 그 다음번에 안희정, 이런 순서 아니냐는 얘기다. 이 얘기는 바로 안희정은 이번 대선에서는 같은 친노 계열의 정치인으로 문재인을 붐업 시키기 위한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을 하고, 문재인 다음으로 대권을 노리는 차차기 후보로,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지적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이 사회에 널리 퍼져있으며, 안희정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인 점과 나름 꽤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이번에 진검승부 할 사람은 아니지 않나? 라는 분위기 말이다. 안희정이 젊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노무현과의 깊은 관계로 인해 문재인과 안희정은 한편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하여간 그런 지적이 나오자 안 지사는 단호하게 답변을 한다.

문재인으로 무난히 정권 교체가 될 거 같으면 이렇게 나올 일이 없다. 하지만 안 될 것 같으니까 이렇게 나온 것 아닌가? 라는 답변이었다.

농담도 아니고 지나가는 말로 흘린 것도 아니다. 진지하게 무거운 톤으로 말을 한다. 표정은 단호했고 눈빛으로 사람들의 동의를 구했다. 몇몇은 끄덕거렸고, 몇몇은 탄식을 뱉었다.

안희정, 그는 이번 대선에 결코 들러리로 나온 것은 아니다. 그 밖에도 징후는 많이 보였으나 본인이 수 십 명 앞에서 단호하게 선언 하듯이 말을 했는데, 이 이상 가는 증거는 없을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중이다.

 

정치인의 역할

두번째, 정치의 역할에 대한 견해가 좋았다.

실업률 문제나 청년 창업, 또 차세대 먹거리는 무엇일까 등등 이런 저런 질문 속에서 나온 답변이다.

자신은 직업 정치인이며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 무척 많은 시간 고민을 해 왔다는 안희정 지사는, 정치인이 모든 문제에 대해 디테일한 답변을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입장의 답변을 한다.

정치인의 역할은 이 사회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전부라는 것. 그렇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이 사회에 공급하게 되면 이 사회에 숨어 있는 각 분야의 뛰어난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일을 제대로 하게 될 것이며 그게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길이라는 소신을 표출한다.

이는 매우 타당하며 옳은 주장이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자신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다 가지고 있으며 내가 권력을 잡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친다. 그거 백퍼센트 거짓말이며 허세에 불과하다. 정치인들이 평생 기업운영에 몰두하는 기업인들의 입장을 알 방법이 없으며 평생 공부만 하는 학자의 입장을 알 수가 없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문제가 있으며 자신이 겪는 문제에 대한 해법은 자신이 가장 잘 알 듯이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는 해당 분야의 실력자들이 있으며 그 실력자들이 그 분야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가장 잘 알고있다. 그 실력자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필요한 결정권을 제공하는, 즉 더 많은 민주주의가 제공되면 문제는 해결된다.

기존의 우리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자꾸 확대되는 이유는 해당 분야의 결정권이 “민주주의의 부족”으로 인하여 진짜 실력자에게 가지 않고 엉터리, 예를 들면 차은택 같은 사람들에게 가기 때문이다.

이 답변에 대해 상당히 깊게 공감을 했고, 스스로를 직업 정치인으로 칭하는 만큼 확실하게 정치가 할 수 있는 영역과 하지 못할 영역, 해서는 안되는 영역에 대한 정리가 무척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어찌 보면 이 문제는 아주 쉬운 문제인데, 기존의 정치인들이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았던 탓이기도 하다. 왜냐면 사람들은 권력자에게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길 기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미개한 경향에 의지해 정치인은 자신을 만병통치약으로 과대포장해서 팔아온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제는 그런 시대는 끝이 나야 한다. 안희정 같은 정치인들이 성공하게 되면 그런 사회는 더 빨리 끝나게 된다. 기대감이 들었다.

 

비전은 약하다

세번째, 약점이다. 현 시대의 위기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어찌 보면 부수적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지도 모른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은 바로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이 비전은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위기를 남보다 빨리 인지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미래적 비전을 말할 수 있는 법이다.

지금 현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일까?

관습적으로 표현하자면 경제 문제이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실업률 문제다. 즉 역대 정권이 언제나 해결하겠다고 큰소리 쳐온 일자리 문제가 가장 심각한 위기요인이다.

이 문제는 아주 오래된 문제 아니냐고? 아니다. 실업률 문제는 항상 정권의 골치거리이긴 하지만, 이제부터 닥쳐올 사회에서는 그 일자리 문제는 정권 차원의 문제를 넘어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즉, 세상을 붕괴시킬 수 있는 문제라는 뜻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나아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중이다. 이걸 보통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부른다.

인공지능이 세계 최강의 프로 바둑 기사를 이기고,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트럭과 승용차를 몰게 되는 상황이 온다. 자율 주행차의 보급은 코앞으로 당도했으며 이게 실현되는 순간 엄청난 숫자의 일자리가 사라질 예정이다. 드론은 이미 전쟁을 대신하고 물건 배달을 대신하는 단계로 접어 들었고, 이족 보행, 4족 보행 로봇들이 거리를 누빌 날이 멀지 않았다.

과거에 그랬듯이 새로운 일자리가 창조될 것이라는 항변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미약하다. 또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일자리를 바꿔야 하는 기간 동안 새로 훈련받아야 할 노동자들의 입장은 가혹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실업률이 치솟게 되면 기업들의 매출은 급감하게 되고 시장은 축소되며, 언제나 성장하는 경제를 기반으로 설계된 근대적인 자본주의 하의 사회들은 붕괴하게 된다. 심지어 사회민주주의 체제 마저도 세수의 급감으로 인해 복지체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될것이다.

이런 미래의 위기 상황에 대한 안희정 지사의 인식은, “과연 그렇게 될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수준이었다.

이는 유시민 전 장관의 인식과도 맥이 통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실제로 국가 수준의 경제 시스템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것. 유시민 전 장관은 복지부를 운영하며 국민들의 의료를 지탱하고 복지를 담당하는 실제 데이터를 다뤄봤던 사람이다. 안희정 지사는 충남이라는 인구 수백만의 거대 지자체의 살림살이 전체를 관장했고 지금도 관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현실적인 데이터를 깊게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시스템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반응이 느리게 된다. 즉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런 면에서 안희정 지사가 가지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인식 부족은 이해는 가지만, 권장하고 공감하기는 힘든, 그러한 약점이 될 수 있다. 유럽과 미주에서 황급하게 기본소득이라는 기괴한 대안까지 실험하고 도입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그게 과연 진짜 위기겠냐는 식의 안일한 인식으로는 도저히 대처하기가 힘들 것이다. 불안한 일이다.

물론 다른 정치인 중에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있진 않다. 최소한 나는 아직 발견을 하지 못했다.

 

어디까지 갈까?

어찌되었거나 안희정 지사는 공식 비공식을 막론하고 이제는 대선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셈이다. 그가 문재인을 경쟁상대로 “진짜로” 간주하고 비판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문재인 지지자들은 안희정을 웬수 보듯이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희정 지사가 문재인과의 관계는 어찌 가져갈 것인지, 이재명, 박원순 두 시장과의 관계는 어찌 설정될 것인지, 또 안철수나 국민의당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지, 기타 다른 후보들과는 어떻게 경쟁을 하게 될지, 그들과의 경선은 판이 어떻게 꾸려질지 흥미진진하다.

나아가 충청이라는 같은 지역기반을 가지고 있는 반기문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지 사뭇 기대가 된다.

(이 기사를 써놓고 난 뒤에 안희정 지사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익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문을 안했다는 식으로 표출된 것은 아무리 전략적인 관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그리 아름다운 첫 펀치는 아니었던 것 같다. )

모든 것을 떠나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된다.

안희정 충남 도지사는 이제 19대 대통령 후보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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