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썰] 인류, 날개를 잃어버리다.

 

아득한 4만 2천여 년 전, 머나먼 버나드 항성계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태양계 인류의 시조들이 거대한 항성 간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로 왔습니다. 그들이 왜 버나드를 떠나 이곳 태양계까지 왔는지 이유는 불명확합니다. 태양계 정착 7천 년 뒤에 발생한 거대한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역사기록들이 소실되었고, 남아있는 단편적인 일부 자료들을 짜깁기 하였기에 각 행성인들의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설명하는 내용들은 우리 화성인들이 대체적으로 믿고 있는 고대사 이야기입니다.

 

 

[ 버나드를 떠나 태양계로 온 10만의 이주민들 ]

 

일부 기록에 따르면 버나드 항성계를 완전히 정복한 버나드 제2행성인들은 수천 년 이상 고도의 과학기술 문명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버나드 항성계에만 갇혀서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으며, 정체된 사회로 인해 차츰 문명이 퇴보할 조짐을 보였습니다. 이에 모성인 버나드 태양계를 떠나 새로운 태양계로 대규모 이주를 감행하는 것이 버나드 문명의 숙명이라 믿고 추진하는 세력이 출현했죠.

 

발달된 문명이라도 더 이상 정복하거나 도전할 목표를 찾지 못한다면 제한된 영역과 자원을 놓고 내부적인 다툼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천 년간 확장형 고도 문명을 유지하다 보니 각 행성들의 주요 자원들은 차츰 고갈되어 갔을 겁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버나드 항성계에는 이주민들이 떠날 무렵에 수십 개의 국가와 연합으로 세력이 나뉘어서 잦은 전쟁과, 일부 지배계층의 권력 독점이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이주계획은 비교적 변방에 속했던 외행성계(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차가운 거대 가스 행성들과 암석형 위성들을 칭함)의 자유주의 세력이 주축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버나드 내행성계의 오래된 여러 문명 행성들은 이미 자원을 거의 소진했거나, 구시대의 폐습에 젖어서 미지의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하려는 활력조차 상실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좁은 영토와 인구, 자원을 놓고 경쟁을 일삼았기에 세력도 차츰 약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외행성계는 열악한 환경이므로 적은 인구의 작은 세력들이 여럿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특성상 과학자, 기술자의 비중이 높았고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였기에 구습에 물들지 않고 새로운 진화를 모색했겠죠. 버나드 문명의 쇠락을 직감한 일부 선지자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인류 이주계획’을 구상하였고, 세력을 규합하여 외행성계의 기술과 자원을 결집해서 ‘이주선’을 건조했던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이주선은 하나의 버나드 사회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10만 명에 이르는 많은 인원이 탑승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사회에서 오로지 자유의지에 따라 우주 개척 모험에 참여한 것이죠. 당초에는 내행성계의 많은 참여자들까지 함께할 예정이었으나 이주선 출항 직전에 내행성계와 외행성계의 극심한 갈등 고조로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주로 외행성계 출신의 버나드인들이 이주선을 타고 출발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 방주 ]

 

그들은 수백 년에 걸친 ‘항성 간 이주계획’을 차근차근 준비했으며, 결국 초거대 항성 간 우주선(편의상 ‘방주’라고 칭함)을 버나드 외행성계에서 건조하여 완성에 이릅니다. 방주의 크기는 여러 문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직경 1.5~2km, 길이는 10~17km 정도로 추정되며, 덩치에 비해 미약한 추진력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어서 수십 년의 가속을 통해 광속의 1/20에 이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방주의 엔진은 거대한 플라스마 이온 엔진의 일종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기술 자료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외행성계의 거대 가스 행성에서 채집한 가스를 사용해서 매우 높은 효율의 추진력을 얻었으리라 여겨집니다.

 

방주 내부는 10만 명의 인원이 수백 년간 독자적인 생태계와 사회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일종의 도시국가 시스템을 구현했습니다. 차디찬 암흑의 우주공간을 홀로 항해하면서, 태양의 따뜻한 에너지 없이 버텨야 했으므로 고도로 발달된 핵융합 기술로 에너지를 얻어냅니다. 하지만 300년가량의 긴 항해 도중에 내부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내부 집단 간의 갈등으로 충돌한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새로운 태양을 찾아 문명의 씨앗을 다시 뿌린다는 공통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극단적인 파국 없이 그럭저럭 태양계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합니다.

 

버나드를 출발할 무렵에 과학자들은 어느 항성계가 가장 인간이 거주하기 좋을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전파 통신으로 인접한 수백 광년의 항성들을 전수조사했지만 어떤 별에서도 발달된 문명체의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항성계의 구성 물질과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던 20~30광년 내의 항성들 중에서 그나마 버나드 이주선이 도달하기 유리하고, 거주에 적합한 행성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몇몇 별들이 최종 목적지로 물망에 오릅니다. 많은 논의 끝에 결국 우리 태양계가 목적지로 정해졌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주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버나드인들은 몇 차례의 대규모 이주 선단을 계속 추진하려 했으며, 방주가 최초의 이주선이었습니다.

 

방주는 차츰 가속하여 60년가량 지난 뒤에 최대 속도에 이릅니다. 하지만 버나드 출발 10여 년 만에 이미 너무 멀어져서 통신은 완전히 두절되었으며, 제2차 이주 선단이 또 다른 별을 향해 출발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주선은 여러 가지 정황상 건조에 난항을 겪었으며, 버나드 항성계의 내분이 심화되고 있었다는 소식만 전해집니다. 아마도 비극적인 결말이라면 방주에 탑승한 10만 명이 버나드 최후의 생존자들이며, 방주가 태양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버나드 문명은 소멸했을지 모릅니다. 물론 버나드 문명은 여전히 건재하고, 여러 별들로 이주선을 계속 보내면서 진정한 ‘우주 문명’에 도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방주는 우리 인류를 버나드에서 태양계로 무사히 이주시켜 새로운 문명체로 개화시키는 씨앗 역할을 완수했습니다. 방주는 구조상 중력이 강한 내행성계까지 진입하기 어려워서 토성 근처까지 도달한 후, 작은 우주선들을 이용해서 본격적인 태양계 이주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죠.

 

방주로 운반해온 많은 자재와 인력은 각자가 선택한 행성으로 나뉘어 보내집니다. 거대한 껍데기만 남은 방주는 마지막 남은 추진력을 이용해서 버나드인들이 거주한 가장 외곽 행성인 에우로파까지 이동합니다. 이후 태양계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여러 용도로 활용되다가, 파국 과정에서 파괴를 피하기 위해 에우로파의 깊은 심연 속에 가라앉게 됩니다. 파국은 각 행성들을 심각하게 파괴시키고 행성 문명들을 퇴보시킵니다. 파국 이후에 잠시간 화성과 에우로파 간에 통신이 지속되었는데, 에우로파인 일부가 태양계 문명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고향인 버나드로 되돌아가기 위해 방주를 재건하려 한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이후 에우로파와의 연락이 급작스럽게 단절되었으며, 에우로파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여태껏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 중력 우물 : Gravity Well ]

 

3만 5천 년 전에 있었던 태양계 행성 간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간단한 우주과학 상식을 논해 봅니다. 지구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구의 강력한 중력을 받아왔기에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지표면에서 단 1미터도 도약하기 힘들죠. 한마디로 지구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혀서 바깥 우주로 나갈 수 없는 셈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도구를 발명해서 차츰 중력을 거스르고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로켓을 이용해서 지구 중력권을 벗어나 다른 행성까지 탐사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 지표면에서 벗어나는 게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는 ‘중력 우물’ 때문입니다. 지구인들은 비교적 강력한 중력을 가진 지구라는 행성이 파놓은 중력 우물의 밑바닥에 빠져서 위로 보이는 장엄한 별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위 그림을 보면 행성(또는 태양)은 중력을 가지고 주변 공간을 왜곡시킵니다. 중력권을 지나는 모든 물체는 중력에 의해 끌어당겨지는 힘을 받게 되죠. 마치 욕조에 물 빠지는 구멍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구멍으로 물이 빨려 들어가면서 소용돌이치게 되죠. 마찬가지로 중력에 의해 행성으로 끌려들어 가는 물체들은 그대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중력원에 가까울수록 점점 빠르게 회전하면서 끌려갑니다. 중력 우물의 효과에 대해서는 따로 자세한 설명은 안 하겠습니다. 수많은 책과 인터넷 정보를 참조하십시오.

 

중력 우물은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웅덩이 모양이 아니라, 실제로는 나팔 모양의 원추 뿔 형태에 가깝습니다. 중력 우물의 가장자리에선 경사도가 낮아서 아래로 내려가기도 쉽고, 빠져나가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경사도가 커져서 바닥으로 추락하기 쉬워지고, 위로는 다시 올라가기 힘들어집니다. 별의 중력 크기에 따라서 또 그 차이가 명확해지죠. 지름 수십 km의 소행성은 거의 중력 효과를 낼 수 없어서 중력 우물이라 칭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 Credit : sciseek.com >

위 그림은 매우 직관적으로 중력의 크기에 따른 비교가 되겠네요. 태양계의 암석형 행성과 위성 중에서 지구는 상당히 중력이 큰 편입니다. 목성과 같은 가스 행성은 중력이 매우 강력하지만 생명체가 생존하기 불가능에 가깝기에 논외로 합시다. 지구라는 중력 우물에 빠진 사람은 그림처럼 혼자서 바깥세상으로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로프를 내려주거나, 전문 등반 장비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달은 중력 우물이 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얕습니다. 헉헉거리더라도 혼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죠. 소행성은? 후훗….

 

< Credit : xkcd.com >

위 그림은 태양계 주요 행성, 위성들의 중력 우물이 중첩되서 표시된 것입니다. 태양계만 들여다보면 전체 질량의 99%를 차지하는 태양을 중심으로 거대한 중력 우물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각 행성들도 각자의 중력을 가지고 ‘중력 우물 속의 또 다른 작은 중력 우물’을 구성하고 있죠. 이걸 직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태양은 일단 한번 추락(?) 하면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낭떠러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태양이라는 중력 우물의 거대한 산기슭에 수성, 금성, 지구가 차례로 독자적인 중력 우물을 파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 만약 금성에서 수성까지 가려면 매우 쉽습니다. 조금만 삐끗하면 태양의 중력 덕분에 맹렬한 속도로 추락하죠. 반면에 수성에서 금성까지 기어올라가는 것은 엄청 힘들어 보입니다. 지구는 수심이 낮은 우물입니다만, 저기서 빠져나와 옆에 있는 달까지 가는 것도 꽤 힘들죠. 태양계는 저렇게 엄청난 산맥(?) 들과 골짜기가 중첩된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목성은 지구에 비하면 메머드급 웅덩이입니다.

 

행성 표면에 거주하는 문명체가 우주로 도약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저런 중력 우물입니다. 태양계 암석행성들 중에서 가장 큰 금성과 지구의 중력 우물도 만만찮은 수준입니다. 금성과 지구에서는 우주로 나아가려면 엄청난 로켓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우주로 나가기 힘든 환경이라서 우주 진출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화성이나 에우로파는 중력이 약해서 우주 진출이 상대적으로 쉬운 곳들입니다. 달은 중력이 지구의 1/6이라서 매우 수월하다고 봐야겠죠. 그러나 중력이 작은 행성과 위성들은 덩치도 작아서 문명이 커나가는데 제약이 있습니다.

 

( 여러 행성들은 서로의 중력 우물로 상호 간섭을 일으켜 우주공간을 복잡하게 뒤틀어 놓는다. 우주는 결코 평탄하지 않다. )
( 행성간에는 정해진 날짜에 열리는 특별한 항로가 있다. 별을 바라보며 앞으로만 날아가도 목적지에 쉽사리 도착할 수 없다. )

 

일부 지구인들은 우주로 본격적인 진출을 하기 위해서 ‘궤도 엘리베이터, 또는 우주 엘리베이터’라는 구조물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저런 중력 우물 바닥(지표면)에서 벗어나 중력 자유지대까지 사람과 물자를 쉽게 운반할 수 있는 고속도로에 해당하기 때문이죠. 궤도 엘리베이터의 건설 비용은 우주적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한 번만 건설하면 그 뒤로는 우주로 값싸게 수학여행을 가는 것도 가능해지죠.

 

중력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서 지금 지구인들은 화학연료 방식의 로켓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고요. 반중력 장치라는 구상도 있는데 그것은 버나드인들도 이론조차 개척하지 못한 미지의 분야입니다.

 

 

[ 파국 ]

 

우리는 행성들이 파괴된 그 전쟁을 ‘파국’이라 부릅니다. 파국은 태양계 문명의 중심 행성이었던 이곳 지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애초에 방주를 통해 가져온 발달된 버나드인들의 과학문명은 ‘궤도 엘리베이터’라고 불리는 우주 출입 기지를 중심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앞서 설명한 ‘중력 우물’을 벗어나서 다른 행성들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수단이었죠. 버나드인들은 이곳 태양계로 오기 전에도 궤도 엘리베이터를 버나드 행성들에 설치해서 우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궤도 엘리베이터는 중력이 큰 행성에 건설하려면 엄청난 건설공사를 해야 합니다.

 

태양계에 도착한 이주민들은 초기에는 로켓 형태의 수송선을 이용해서 각 행성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정착이 완료되어 가면서 지구에 먼저 궤도 엘리베이터를 건설했죠. 20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몇 세대를 거쳐 드디어 완성된 지구의 첫 궤도 엘리베이터는 지금은 대서양 한가운데, 적도 인근의 아틀란티스 대륙에 위치했었습니다. 즉, 아틀란티스가 지구에 정착한 버나드인들의 사회, 경제적 중심지였던 셈이죠. 아틀란티스의 궤도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사람들은 손쉽게 다른 행성으로 오고 갔으며, 소행성대에서 채취한 막대한 자원들이 지구로 유입되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버나드 이주민들의 ‘항성 간 이주계획’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었죠.

 

지구의 궤도 엘리베이터에 이어, 금성에도 몇백 년의 시차를 두고 궤도 엘리베이터가 완성되었습니다. 금성 역시 급속도로 발전했으나 지구에 비해 다소 열악한 환경이므로 여전히 지구 중심의 태양계 문명이 유지된 편입니다. 화성, 에우로파는 중력이 비교적 약해서 굳이 궤도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어느 정도 로켓 기술로도 커버가 가능했습니다.

 

< Credit : extremetech.com >

이런 구도에서 궤도 엘리베이터를 장악한 세력이 태양계 문명의 중심축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지구 상의 아틀란티스는 처음엔 공화정 형태의 사회였으나, 어느덧 소수의 왕족과 귀족들이 세습하는 왕정국가로 변모했습니다. 지구 상의 모든 세력들은 다른 행성과의 왕래를 위해선 아틀란티스의 궤도 엘리베이터에 의존했기에 어쩔 수 없이 굴복했습니다. 이런 상황도 잠시, 지구 반대편의 태평양 적도지역에 위치한 뮤 대륙에서 또 다른 궤도 엘리베이터를 건설했습니다. 아틀란티스는 우주로 가는 새로운 통로가 개척되자 독점적 지위에서 추락하게 됩니다. 아틀란티스의 억압에 반발했던 지구의 많은 지역들이 뮤와 친선을 도모하게 되죠. 아틀란티스, 뮤에 이어 커다란 세력을 형성했던 인디아 지역도 뮤와 연합하게 됩니다.

 

금성의 지배자들은 전통적으로 아틀란티스와 혈연관계였습니다. 태양계의 핵심 행성인 지구에서 아틀란티스가 차츰 수세로 몰리는 것에 반해, 금성은 여전히 아틀란티스 계열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죠. 우리 화성은 뭐 변방이라서, 주로 과학기술자 위주의 오지에 가까웠기에 이런 세력 갈등에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무역과 자원 채취업에 종사하던 에우로파를 비롯한 소행성 식민지들은 두 세력의 눈치만 살폈죠.

 

결국 아틀란티스가 먼저 공세에 나섭니다. 아틀란티스-금성 동맹군은 뮤를 위시한 많은 지구 세력들을 다시 복속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금성에서 건조한 우주 함선들로 뮤의 궤도 엘리베이터를 공격합니다. 하지만 이미 눈치를 챘던 뮤 세력은 궤도 엘리베이터를 군사요새화한 뒤였습니다. 우주전쟁이 발발했고 아틀란티스 동맹군의 함대는 패퇴합니다. 지구 상에서는 아예 세계 대전이 발발했죠. 뮤와 인디아를 비롯한 여러 세력들이 연합하여 아틀란티스 대륙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아틀란티스 세력은 아직 우위를 점하고 있던 우주 교역권을 이용해서 지구에 대한 금수조치에 돌입합니다.

 

남아있는 사료에 의하면 이 전쟁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일부 직업군인들만의 전쟁에서, 막판에는 그릇된 애국심에 호소한 총동원 체제의 대규모 전쟁으로 확전이 되었습니다. 행성 간 교역이 단절되어 태양계 전체의 경제는 피폐해졌을 것입니다. 전세는 차츰 아틀란티스에게 불리해졌는데, 그들은 패전을 직감하고 결국 금단의 병기를 사용했습니다.

 

방주에는 버나드에서 가져온 ‘그것’이 다량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규모 행성 환경 개조작업을 위한 일종의 무기입니다. 지구인들은 아마 ‘핵융합폭탄’이라고 부른다면서요? 다행히 ‘그것’을 사용치 않고서도 태양계 각 행성에 정착할 수 있었던 버나드 이주민들은 방주에 봉인한 상태로 뒀나 봅니다. 태양계 이주 7천 년이 지나고서, 아틀란티스인들은 ‘그것’을 꺼내서 지구 상의 뮤 대륙과 인디아, 그리고 각 대륙의 주요 정착지를 공격합니다. 수천만 명 이상의 이주민 후손들이 증발하고 도시들은 한순간에 사라지죠.

 

‘파국’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틀란티스의 선제 핵 공격에 이어,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거라면서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뮤 세력이 준비해뒀던 똑같은 핵융합폭탄이 사용되었습니다. 아틀란티스는 상대방이 ‘그것’을 이미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죠. 회심의 일격에 이은, 보복의 칼날이 부메랑처럼 날아옵니다. 뮤 연합군의 살아남은 우주 함선들은 아틀란티스의 후방 거점인 금성을 아예 말살하기 위해 행성을 파괴할 수준의 무기로 보복했습니다. 지구인들이 여태껏 실험한 가장 큰 핵폭탄은 TNT 50메가톤급이라고 하죠. 뮤 연합군이 사용한 핵폭탄들의 파괴력은 그보다 열배 이상 강력했다고 합니다.

 

금성은 불타버렸습니다. 모든 대지가 불탔고, 약간의 바다는 증발해 버렸습니다. 그 뒤로 금성은 초열지옥이 되었죠. 지구의 아틀란티스 대륙 역시 불타버렸습니다. 이미 고향과 가족을 모두 잃은 뮤 연합군의 잔존세력들은 지각을 뚫고 멘틀층을 움직일 정도의 공격을 가했습니다. 지각 대격변이 발생했고, 아틀란티스와 뮤는 하루아침에 모두 바닷속으로 사라집니다. 두 대륙과, 금성에 있었던 거대한 궤도 엘리베이터들도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우주공간에는 궤도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인 행성 간 항주선들이 잠시 떠돌다가 결국 고철이 되어 차츰 사라지게 됩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지구와 금성을 제외한, 화성과 에우로파는 독자적으로 버텨나가긴 어려웠기에 차츰 고립정책을 펼치게 되었죠. 다른 소행성 식민지들은 버텨낼 재간이 없었기에 화성, 에우로파 등에 난민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일부는 고향별(?)인 지구로 향했으나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파국이 일어난 뒤로 수천 년 동안 모든 태양계 문명체들은 거의 퇴화에 가까운 문명의 후퇴를 경험하게 됩니다. 가장 피해가 컸던 금성에서는 극지방의 거대 천연 공동에 건설된 셸터 요새도시만 살아남고 모든 대지는 지금껏 살 수 없는 혹독한 환경으로 변했습니다. 금성 생존자들은 수천 년간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하다가 입헌군주제 방식의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재도약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한된 영역에서만 사람이 살 수 있어서 인구가 제한적이고, 문명의 후퇴 이후에 복구하는 속도가 더딘 점은 있습니다.

 

지구는 파국 이후에 일시적으로 인류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환경 여건이 좋았고, 파괴가 주로 침몰한 두 대륙에 집중된 덕에 나머지 지역의 생태계는 빠르게 회복되었죠. 복구된 환경에도 불구하고 주요 도시가 모두 파괴된 탓에 문명의 단절이 이뤄졌습니다. 지구인들이 스스로 버나드 이주민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 계기죠.

 

 

[ 현재 ]

 

화성인과 금성인들은 지구인들에 비해 약간 더 발달된 로켓 방식의 우주선으로 지구에 오곤 합니다. 그러나 행성 간 왕복이 가능할 정도의 우주선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라서 대부분의 화성인, 금성인들은 지구에 관찰을 위해 편도 티켓을 얻어서 오곤 합니다. 그 이유는 아까 설명한 중력 우물 때문입니다. 궤도 엘리베이터를 다시 세우지 않는 이상, 인류가 태양계를 자유롭게 오고 가는 것은 큰 제약이 따릅니다.

 

금성은 중력이 강한 행성이므로 우주로 가기 위해선 꽤 강력한 로켓이 필요합니다. 지구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화성은 중력이 약해서 작은 로켓으로도 충분히 우주로 갈 수 있습니다. 고대에 화성 궤도 엘리베이터가 존재치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죠. 그러나 화성의 인구는 매우 적고, 경제력도 미약합니다.

 

금성의 경제규모가 화성에 비해 몇십 배 이상 더 큽니다. 금성인들은 아예 우주공간에 태양계를 누빌 수 있는 ‘행성 간 항주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만, 그 유지비용이 너무 커서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행성 간 항주선은 여러 행성들까지 자력으로 왕복이 가능하며, 행성 표면에도 착륙선을 내려보내고 다시 회수할 수 있습니다. 고대 태양계 문명의 항주선은 그저 각 행성의 궤도 엘리베이터만 연결하면 되었기에 비용이 저렴했던 것에 비하면 참혹한 여건입니다. 어쨌든 금성인들은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기술 수준을 지니고 있으며 고대 문명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거주 가능 지역의 규모나 인구, 자원 등으로 봐도 태양계에서 가장 잠재력이 큰 행성입니다. 경제규모 또한 다른 행성들에 비할 수 없이 거대합니다. 하지만 지금 지구인들은 그들의 뿌리를 망각하고 이 작은 행성에서 서로 빼앗는 끝없는 다툼에만 빠져있습니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저 찬란한 별들을 보지 못하고 중력 우물의 함정에 빠져있는 거죠? 최근 백 년 내에 지구인들이 우주로 본격적인 진출을 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본격적인 우주 진출을 위함이 아니라, 지구별 내부의 군사적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측면이 큽니다.

 

우리 화성인들은 고대사로부터 버나드인들이 왜 그들의 모성을 버리고 이곳 태양계로 왔는지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또한 그 이유가 여전히 이곳 태양계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술문명의 태생적 한계라고 여기는 편이죠. 화성인 독자적으로는 태양계의 문명 공동체를 재건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금성인들과는 말이 잘 안 통해서 같이 하기도 힘들고요. 그저 황량하고 고요한 붉은 행성에 머물면서 우주를 관찰하는 것이 천성인 종족이니 이해 바랍니다.

 

금성인들은 예전부터 자주 지구인의 독자적인 문명 발달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부터 시작해서, 중세의 과학적 자각, 근현대의 극적인 과학기술 발전에 이르기까지. 그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금성 패권주의에 연관이 있으리라는 분석이 대세입니다. 금성인들조차도 자신들의 문명 규모로는 도저히 태양계 전체를 다시금 아우르는 게 불가능하기에, 거대한 지구를 움직여서 태양계를 도모하려 한다는 음모론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화성 관찰자들은 종종 금성인으로 추종되는 일부 지구의 유력자들이 우주개발을 내세워서 화성에 대한 적대적 행위를 시도하는 것을 감지하곤 합니다. 우리 화성인들이 금성인들의 너무 감성적이고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을 싫어하듯, 그들도 역시 화성인들은 아웃사이더나 방관자로 치부하며 멸시하곤 합니다.

 

지구인들은 조만간 몇 년 이내로 화성에 직접 진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화성인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시도에 대해 우호적입니다. 만약 지구인들이 직접 화성에 와서 우릴 발견한다면 수만 년에 걸친 태양계 문명 이야기를 해줄 용의가 있습니다. 저 같은 일개 관찰자가 지구에 와서 이렇게 이야기해도 믿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지구인이 직접 화성에 와서 이야기를 듣는다면 누가 안 믿겠습니까?

 

제가 알던 지구인들은 한결같이 ‘태양계 고대사 이야기’를 듣곤, 제가 화성인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하더군요. 유감스럽지만 우리 화성인들과 지구인들은 모두 같은 조상을 가진 같은 종족입니다. 화성에서 타고 온 우주선도 열악한 화성의 경제력 덕분에 지구 대기권 돌입 후 지상에 우릴 내려놓고 완전히 타버렸기에 보여줄 수도 없습니다. 광선총이나, 첨단 과학 제품도 SF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십수 년 전에 지구에 도착한 이후로 이제는 화성에서 가져온 과자 봉지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똑똑~~~”

 

음… 더 쓰려고 했는데 그들이 오고 있군요. 잠시 자리를 피해야겠습니다. 저 같은 화성인조차도 피하고 싶은 두려운 대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해피 뉴 이어~”

 

나이는 피할 수 없네요. 새해에 또 봅시다 지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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