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2016년,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2016년을 ‘올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매번 한 해는 365일로 똑같지만, 올해는 왜인지 더 길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아마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 한 번 정리해 보자. 이 길었던 한 해를, 우리는 어떤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으며 헤쳐나왔을까. 2016년을 총정리해보자.

 

 

1월 1일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 중 누구도 이렇게나 다이나믹한 한 해를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전조는 있었다. 2016년은 1월 1일 0시를 기해,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가 무효화되는 대사건을 겪으며 시작되었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판결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는 현재의 선거구별 인구 격차가 지나치게 크니, 새롭게 선거구를 개편해 가장 큰 선거구와 가장 작은 선거구의 인구 비율을 최대 2:1로 조정하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12월 31일을 선거구 합의의 마감 기한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선거구 합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회는 마감 기한까지 선거구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인구가 많은 도시 지역 지역구를 나누거나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구를 통합해야 하는데, 지역구를 나누면 의원정수가 늘어나고 지역구를 합치면 현직 의원이 자기 지역구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1월 1일 0시를 기해 국회의원 선거구는 무효화됐다. 다가오는 20대 총선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이 모두 불법화되었다. 이 합의는 결국 2월 23일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지역구 의석은 253석으로 늘어난 대신 비례대표 의석은 47석으로 줄어 의원정수 300석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됐다.

이 기간 동안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치로 예비후보의 선거운동 자체는 가능해졌으나, 지역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정치인들, 특히 이름을 많이 알려야 하는 신인 정치인들의 고충이 있었다.

 

 

2월 2일

국민의당이 창당했다. 뭔가 아주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었던 정당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주축이 되어 올 2월 2일에 만들어진 정당이다.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김한길 의원 등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파와,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회의’ 계열에 정동영, 박주선, 주승용, 박지원 등의 호남 거물 정치인들까지 합세하며 나름 원내교섭단체까지 꾸린 정당을 만들었다.

안철수-천정배 공동지도체제로 출범한 이 정당은 이 포지션대로 4.13 총선을 치뤘다. 이후 홍보위원장 리베이트 사건에 책임을 지고 두 대표가 물러났고, 6월 29일부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전당대회를 통한 공식 당대표를 선출하지 못했다.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월 5일부터 김동철 의원이 맡고 있다.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중단되었다.

사건은 올 2월 2일, 북한이 광명성 4호 로켓을 발사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 정부는 이것을 북한의 도발로 규정했고, 며칠 뒤인 2월 10일 협의 없이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성공단을 통해 유입된 자금이 북한의 핵무장에 이용되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다른 문제를 떠나, 이는 중대한 재산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의 이 조치로 인해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 5월 20일 개성공단 가동중단 100일을 맞아 개성공단기업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남측 기업은 100일동안 최소 8152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 입주기업에 속한 노동자 중 80%가 직장을 잃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중단하기 위해선 통일부 장관이 반드시 청문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마저도 즉시 중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서서히 중단시켜야 한다. 하지만 개성공단 중단은 이 법률에 따른 절차를 위배했다.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개성공단에 투자된 돈이 북한의 핵개발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부족하다. 당시 현안보고에서 정세균 의원의 증거 제시 요구에, 홍용표 장관은 “그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며 “자금이 들어간 증거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판단에 따라 개성공단 가동은 중지되었으며, 북한은 개성공단 자금을 모두 동결한 상황이다. 이미 자산을 청산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 조치 역시 최순실 씨의 불법적 국정개입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알려졌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기나긴 복선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2월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다. 현행 국회법상 직권상정은 여야 교섭단체 사이에 합의가 있거나,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만 가능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병호 국정원장을 통해 당시 상황이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다. 해당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08명이 테러방지법의 표결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을 신청했다. 1964년 신민당 김대중 의원이 김준연 의원의 구속 동의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진행했던 필리버스터 이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52년만에 벌어진 필리버스터였다.

당시 김대중 의원이 세웠던 5시간 19분의 기록은 첫 타자였던 김광진 의원이 5시간 33분이라는 기록으로 깨고 출발했다. 다음으로는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이 올라왔고, 그 다음으로 은수미 의원이 올라와 10시간 18분을 발언하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다음으로는 필리버스터가 새누리당의 공약사항이었음을 지적해 새누리당의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신경민 의원, 공천에 탈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올라와 5시간 4분의 연설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강기정 의원, 5시간 17분의 연설을 마치고 내려와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서기호 의원, SNS 여론을 많이 전달한 김용익 의원, 박정희 시대의 노동정책에 항의하다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의원, 11시간 39분을 발언하면서 다시 최장 기록을 세운 정청래 의원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후 필리버스터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종료되었다. 필리버스터 종료를 두고 당내에서는 심한 잡음이 일었고, 그 과정에서 박영선 의원 등의 발언은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종걸 원내대표의 12시간 31분 최장 기록을 남기고 3월 2일 오후 7시 30분,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는 종료되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192시간 27분이라는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웠다. 2위 기록인 58시간과는 몇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숫자다. 3월 2일 통과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 현재까지 시행 중에 있다. 국정원은 안보를 이유로,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설정한 ‘테러 위험 인물’을 합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것이다.

 

 

 

3월 9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이 있었다. 이날을 시작으로 총 5번기의 대국이 있었고, 이 가운데 제 4국을 제외하고 4번의 대국에서 모두 알파고가 승리했다. 인간이 컴퓨터에 대항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보드게임이었던 바둑마저 이제 챔피언의 자리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앉게 되었다.

알파고의 승리를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술의 발전이 더욱 필요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인공지능 기술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의 인간에 대한 우위는 보다 확실해졌다.

기술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인간은 그 기술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다. 우리 인류 공동체는, 그 빠르게 성장한 기술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 기술은 우리에게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명확하게 확신할 수 없다. 왜인지 공포감이 엄습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술의 발달을 막아세울 순 없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막는 것이 옳은 방향도 아니다. 그럴수록 기술을 다루는 방향에 대한 수준 높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기술은 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알파고가 4국에서 패배한 뒤, 알파고 프로그램의 모니터에는 이런 문구가 떴다.

“Alphago resign: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

(“알파고 패배 기록이 게임 정보에 추가되었습니다.”)

 

 

3월 20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의 방문이었다.

미국의 턱밑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던 쿠바. 그래서 언제나 미국의 최전방 충돌구역이 되었던 쿠바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는 핵전쟁의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떠돌았었다. 하지만 교황의 중재로 2015년 교황의 중재를 통해 국교를 정상화한데 이어, 올해 3월 20일에는 미국 대통령의 공식 방문까지 받게 되었다.

어지러운 세상에도, 화해와 희망의 징표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4월 11일

4월 11일,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불리는 사건이 <시사저널>의 보도로 처음 공개되었다.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특별법 반대집회 과정에서 2500만 원을 시위대에게 나누어줬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이후 이어진 <시사저널>과 <JTBC>의 보도를 통해, 어버이연합이 유령회사를 세워서 시위대에게 일당을 제공했다는 것이 보다 구체적인 정황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이 유령회사에 자금을 대 준 것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크게 논란이 일었다.

또한 이 전체의 배후에 청와대 허현준 행정관이 있었다는 점 역시 드러났다. 결국 그간의 어버이연합 관련 집회들이 청와대의 기획 하에 재벌이 자금을 지원해, 어버이연합이 실행하는 로드맵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어버이연합 관련 간부들이 정상적인 의혹 해명 과정 없이 잠적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현재까지도 결론을 내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어, 늑장 수사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집회는 일당”이라며, “보수 2만원, 진보 5만원, 교회 2만원”이라던 김미화 탈북어버이대표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과연 연말 200만 집회의 자금책은 누구였을까. 다른 건 몰라도 일단 1천억 정도는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어야 한다.

 

 

4월 13일

대한민국 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모든 당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선거를 치뤘다. 새누리당은 ‘진박 감별사’ 논란과 비박계 공천 배제, 이를 계기로 한 김무성 대표의 ‘옥새 탈주’로 혼란스러웠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컷오프 과정에서 심한 잡음이 일었다. 국민의당은 야권연대 문제로 분열이 있었다. 기독당과 민주당이 컷오프 의원의 입당으로 원내정당이 되어 선거를 치르는 이변도 발생했다.

물론 그 결과보다 심한 이변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 무력화선인 180석, 심지어 개헌선인 200석까지 노리던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어 2당으로 주저앉았다. 많은 중진들이 낙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참패했지만 수도권에서 압승하고 영남권 의석을 얻어가며 123석을 얻어 1당이 되었다. 국민의당은 호남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가 38석의 굳건한 3당이 되었고, 정의당은 6석을 가져가 나름의 승리를 이뤄냈다. 무소속은 모두 11석, 이중 여당 성향이 7명, 야당 성향이 4명이었다.

여소야대 체제가 열렸다. 야당 성향 의석을 모두 합하면 무려 171석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20대 국회를 이끌어갈 전반기 의장단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정세균 의장, 새누리당 심재철 부의장, 국민의당 박주선 부의장이 선출되었다.

 

 

5월 10일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후보가 당선되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초법적인 마약범 사살 작전을 예고하던 그였다. 흔히 ‘필리핀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렸지만, 막상 취임한 그는 예상보다 더 심각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완전사형폐지국가인 필리핀에서, 절차 없이 마약범에 대한 즉각 사살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필리핀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두테르테 취임 이후 절차 없이 사살된 사람만 5927명에 달한다. 이중 2086명은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나머지 3841명은 민간인 자경단에 의해 살해되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불법적 살인을 반대하는 인권운동가 역시 사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일도 있었다. 두테르테 대통령 자신도, 시장 재직 시절 마약범을 살해한 적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리핀 안에서 두테르테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기가 그만큼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 그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5월 11일

이탈리아가 동성 커플의 시민결합을 허용했다. 이 조치를 통해, 유럽연합 28개국은 단 한 국가도 빠짐없이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게 되었다. 2015년 6월 26일 대법원 판결을 통해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모든 국가가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희망적인 소식이 다시 한 번 들려온 것이다.

물론 여전히 유럽에서도 많은 국가들이 동성 커플의 ‘시민 결합’을 허용하며 법적 지위만을 보장하고, 이를 ‘결혼’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입양 역시 불가능한 국가가 많다. 하지만 세상은 아주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당장 지난 12월 26일에는, 대만 입법원 사법법제위원회가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본회의를 통해 최종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내년 4월 경에는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대만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 결혼을 허용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법원은 지난 5월 25일, 김조광수-김승환 씨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관련된 소송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12월 6일에는 이들이 낸 항소 역시 기각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서부지법은 “성적 소수자라고 하여 그 개인의 권리실현에 장애가 있거나 미흡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입법적 결단을 통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모두, 올 한 해 이 땅 위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5월 14일

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가 구속되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5년 전인 2011년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5년이 지난 2016년에 와서야 제대로 된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 결과 연구결과의 조작 등이 밝혀졌고,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측에서 직접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에 신고된 사망자는 464명. 전체 피해자는 2399명에 달한다.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판매된 것이 2001년이고, 문제가 알려진 2011년까지 10여년간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 많은 사망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방의 세월호 참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화학 참사에서, 정부와 기업의 일관된 책임 회피와 변명은 어쩌면 사건 그 자체보다 더 큰 충격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5월 17일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강남역 일대에 포스트잇을 이용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수 차례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과 한국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어려운 문제들이 끝도 없이 산적해 있는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을 두고 충돌했던 두 진영 모두, 완벽했다고 말할 순 없다.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조차 몇몇 가지의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어째서 그 작은 실수에만 분노하는가. 한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한 사람에게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지에 몰아넣은 이 사회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가. 왜 그 거대한 폭력 앞에선 하나같이 입을 다무는가.

답은 단순하다. 모두가 그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 김모 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시 한 번 포스트잇을 이용한 추모가 이어졌다.

저비용이라는 환상이 만들어낸 사회 전체의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열아홉의 노동자를, 기차가 달려오는 스크린도어 뒤로 몰아넣은 사회. 그 대가로 쥐어준 140만원 남짓의 월급봉투. 세월호 참사에서 사망한 학생들과 같은 나이인 그 노동자는, 아주 우연찮은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여기 국가는 없다. 자본의 폭주 뒤에 죽어가는 노동자를 구해내지 못하는 그 스크린도어 뒤에, 국가는 없다. 전태일이 분신하고 4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기 국가는 없다.

컵라면 하나 비우지 못한 생일 하루 전날, 그 젊은 노동자는 어쩌면 46년 전 전태일과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돌아와 다시 한 명의 노동자를 죽였다.

 

 

6월 21일

영남권 신공항 논의가 백지화되었다. 정부는 영남권 신공항의 후보지였던 가덕도와 밀양 모두가 신공항 입지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김해공항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영남권 신공항을 두고 선거 때마다 논란이 일었던 것이 벌써 한참이다. 영남권 신공항 논의 자체는 1990년대부터 나왔다. 백지화에 백지화를 거듭했던 영남권 신공항은 다시 한 번 백지화를 맞았고, 김해공항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김해공항 확장 자체가 얼마나 많은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비용 측면에선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이어졌던 소모적인 정치논쟁이 다시 한 번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6월 24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EU의 전신인 ECC에 영국이 가입한 이후 43년만에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게 되었다.

잔류파였던 노동당 조 콕스 하원의원이 탈퇴파 극단주의자의 총격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격렬하게 이루어졌던 선거였다. 그러나 탈퇴 결정 직후 탈퇴파 정치인들은 하나둘 말을 바꿨다. EU 분담금으로 내는 5500억원 정도를 모두 의료복지에 사용할 수 있다던 정치인은 발언을 철회했고, 이민자를 완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 정치인 역시 “엄격히 관리하자는 것일 뿐”이라며 말을 바꿨다.

파운드화와 유로화가 폭락했고, 대신 엔화가 폭등하는 국제시장 급변도 발생했다. 약속에 따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퇴하고 테레사 메이가 신임 총리로 선출되었다. EU 탈퇴 협상은 아직 개시조차 하지 못했으며, 2018년 10월까지는 협상 완료를 목표로 삼고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7월 6일

세계 각지에 순차적으로 ‘포켓몬 고’가 출시되기 시작했다. 출시 직후부터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쓰러져가던 닌텐도 사를 한 번에 일으켜 세웠다. 닌텐도 사의 주식은 하루 만에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한국에서는 지도 데이터 문제로 속초에서만 플레이가 가능해, ‘속초 원정’과 같은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구시대적 인터넷 규제가 다시 한 번 문제가 되었으나, 현재까지 포켓몬 고는 한국에서 플레이할 수 없다.

 

 

7월 7일

이날 저녁,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며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등장했던 이 대사는, 어쩌면 한국의 상류층들이 국민들을 대하는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나 입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 대사가, 언제나 문학작품을 뛰어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선 고위 공직자의 입밖으로 나오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나향욱 정책기획관은 사과했으며, 교육부는 나 기획관을 파면조치했다. 나 기획관은 이에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것이 나 기획관의 발언이었는지, 아니면 교육부의 파면조치였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자.

 

 

7월 13일

대한민국 국방부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경상북도 성주군 성산포대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두고 각종 논란이 이어졌고, 배치의 비민주성에 대해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사드 배치 대상 지역으로 선정된 성주군에서는 큰 반발 여론이 일어났다. 지역과의 협의 없이 시설을 들여오겠다는 졸속 발표가 분노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몽골 순방을 떠났고, 황교안 총리는 성주로 내려갔다 계란 세례를 맞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사드 배치 위치는 수정되어 성주군 초전면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부지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되었다. 제대로 된 타당성 평가도 없이 이루어진 배치와 졸속 이전 역시 논란이 되었다. 또한 바뀐 사드 부지가 칠곡군과 인접해 있어 칠곡군 주민들의 항의까지 받게 되었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상용복수비자 발급이 중지되었으며, 한국 연예인들의 활동이 제재되고 있다. 내년 1월과 2월에는 한국행 전세기 출항을 금지한다고 알려졌다. 지난 12월 16일에는 중국 항공모함이 서해에서 최초로 실탄 사격훈련을 하며 무력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졸속으로 벌어진 정부의 조치 하나가, 경제 전체를 사지로 밀어넣고 있다.

 

 

7월 30일

이화여대에 경찰이 투입되었다. 대학 측의 일방적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회의실의 교수와 직원을 약 46시간 동안 감금하자, 최경희 총장이 직접 경찰 진입을 요청한 것이다. 대학에 경찰이 진입하는 비문명적인 일이 학교 측의 요청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현장에서는 ‘운동권’에 대한 배제가 이슈가 되었다. 구시대적 사회운동 방식을 버리지 못한 이들에 대한 배제였지만,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운동에 대해 “어떤 정치세력과도 무관하다”는 주장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투쟁한 이화여대 학생들은, 근래 학생사회에서 보기 드물던 승리를 거두었다. 최경희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본부 점거를 이어갔고, 최경희 총장이 정유라 씨의 입시비리에 관련되어 10월 19일 사임하면서 본부 점거를 해제할 수 있었다. 놀라운 성과였다.

대학가에서는 이외에도 여러 충돌이 있었다. 고려대학교는 이화여대와 비슷한 미래대학 설립 건으로 본부 점거가 이루어졌으나 대학 측의 철회로 점거가 해제되었다. 서울대학교는 학생과의 약속을 파기한 시흥캠퍼스 설립 계획과 비민주적 의사소통 구조 문제로 지난 10월 10일부터 현재까지 본부 점거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8월 31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부동의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해운경기 불황과 경영상의 실책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해운사업이 휘청였다.

한진해운의 경영난이 알려지면서 항구에서는 한진해운의 배가 들어오는 즉시 선박과 물류를 가압류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한진해운 측은 급한대로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바다 위에서 떠돌며 항구에 입항하지 않는 방법을 취했고, 이에 따라 물류의 유통이 정지되며 물류 대란까지 벌어지고 한진해운 선원들이 표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한진해운은 청산 절차에 들어갔고, 부동의 해운 1위 기업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경영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는 다시 한 번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

 

 

9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점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기록된 지진 중 가장 규모가 큰 지진이었다. 다행히도 사망자는 없었고, 2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부의 재난 늑장 대응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마비되었고, 재난경보 역시 울리지 않았다. 주변의 원자력 발전소가 다시 한 번 논란이 되었다. 지진해일로 인해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참사가 바로 옆 나라에서 벌어진 것이 겨우 5년 전이지만,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지진에 대한 한국의 대응 체계는 일본에 비할 바조차 못 되고 있었다.

 

 

9월 25일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경찰의 위법적인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농민 백남기 씨가 결국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 백남기 씨 사망의 주범이었던 경찰은 백 씨의 위중 소식이 들리자마자 서울대병원 안에 병력을 투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남기 씨는 사망했고, 경찰은 백남기 씨를 부검하겠다며 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한 차례 기각했다가 검경의 재청구에 ‘유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조건부로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강제 부검을 시도했지만, 시민의 저항에 밀려 최종적으로 집행을 포기했다.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신명 씨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 역시 논란이 되었다. 사망 원인을 ‘심폐정지’로 기록하고 이를 ‘병사’라고 주장한 백 교수는 결국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다.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해 있었기에 기록이 충분하고, 이미 법원이 “경찰의 위법적 물대포에 의해 쓰려졌다”고 판단을 받은 백남기 씨를 부검하겠다며 나선 경찰.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던 경찰과, 1991년 박창수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던 경찰에서, 그들은 하나도 진보하지 않았다. 단 한 발자국도.

 

 

11월 9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누르고 45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직접투표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앞섰으나,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인 주별 승자독식제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혐오발언을 일삼던 트럼프는 이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혐오는 이제 일상을 넘어 권력까지 얻었다. 그것도 국민의 선거에 의한 권력이었다. 그가 꾸리는 내각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KKK를 옹호하는 법무부 장관,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노동부 장관, 에너지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너지부 장관 등등. 절망의 드림팀이 완성되고 있다.

기득권의 정점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이제 정치권력까지 한 손에 쥐게 되었다. 우리가 민중의 힘으로 지켜냈던 마지막 보루를, 하나둘 잃고 있는 기분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선, 철학과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 4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을 제외하고 299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상황에서, 234명의 찬성으로 가결정족수인 200명을 훌쩍 넘겨 통과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9일 7시 3분부터 직무가 정지되었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행하게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2016년 연말을 수놓은 거대한 비리 사건의 정점이었다.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경쟁으로부터 터져나온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논란이 그 시작이었다. 주목받지 못했던 이 사건을 한겨레가 크게 터뜨렸고, JTBC의 태블릿PC 입수가 결정타였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통한 재벌들의 뇌물. 최순실 씨의 불법적 국정개입. 자금 세탁. 정유라 씨의 입시비리와 학사비리. 문화계 블랙리스트 제작. 증거인멸.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해임. 삼성의 승마협회 지원.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 세월호 7시간과 의료 관련 비리. 대법원장 사찰 사건 등등. 수많은 비리들이 이 사건을 중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로 새해를 맞고 있다. 사건이 처음 밝혀졌을 때만 해도 탄핵은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10월 29일 3만 명으로 시작되어, 12월 3일 230만 명까지 불어난 거대한 촛불의 목소리가, 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대통령의 신년사 없이 한 해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사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다. 헌법재판소는 빠른 속도로 재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된 국정조사가 벌어지고 있고, 사건에 깊에 관여한 전경련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거대한 사건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던 2016년의 마지막 결정타였다. 이것이 시대 교체의 출발로 기록될지, 혹은 다시 한 번 놓쳐버린 기회로 기록될지는, 이제 다시 새해를 맞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12월 27일

마지막까지 다이나믹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탈당하며 새누리당이 99석의 미니 여당으로 주저앉았다. 121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굳건한 1당의 자리를 되찾았다. 비박계 의원 29명과 이미 탈당한 김용태 의원은 ‘개혁보수신당’이라는 이름으로 교섭단체를 등록했으며, 창당 절차에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다시 친박당으로 돌아왔고,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지만 어느 정도의 개혁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혁보수신당에게는 ‘보수’라는 정책적 선명성이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현재 정당 지지율과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는 모두 더불어민주당 측이 앞서고 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이것이 다른 한 해와 같은 길이의 한 해였다는 것이, 나는 아직도 잘 믿겨지지 않는다.

다가오는 2017년은 어떤 해일까. 지금을 사는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올해처럼, 그 최소한의 선이 무너지지는 않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선이 무너진 대가가 어떤지는, 우리 이미 톡톡히 체험하지 않았던가.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65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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