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여성혐오, 표창원

며칠 전 딴지일보 벙커원을 방문했었다.

딴지는 국회 전시와 관련되어 문제가 된 “더러운 잠’의 원본, 이미 파손된 그 작품을 벙커원에 전시하고 있는 중이고,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일련의 사람들이 그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듣고 있었다.

출입에 어려움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마침 내가 도착한 시점에는 이들이 시위를 마치고 물러간 상황이어서 한적했고 단 한 분의 나이 드신 여성이 아무도 안 듣는데 혼자서 목청을 높이는 중이었다.

대략 요지는 어디 감히 국모의 나체를 그려서 전시를 하느냐, 너희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냐 너희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고 빨갱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빨갱이인 거 어떻게 알았지?

이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에 대해 논란이 있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다. 이로 인해 표창원 의원은 6개월간 당직 정지라는 징계까지 받았다.

새누리당 계열 쪽에서도 민주당 표창원 의원을 비난하고, 민주당 내 여성의원도 표창원 의원을 비난하고, SNS 공간에서는 표창원 의원을 응원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이 서로 엇갈려서 싸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로 관심도 없고 시간도 없고 해서 별다른 의견을 내지는 않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이러면 “이승 의견가”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자료를 모으고 곰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이 글로 나온 셈이다.

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두 가지 문제를 섞어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혼란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설명에 앞서 먼저 이 글을 참고하자. 전에 페북에 올렸던 짧은 내용인데 오로지 이 글에서 인용하기 위해 옮겨놓기까지 했다. 내가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다.

https://brunch.co.kr/@murutukus/54

아주 짧으니 한 번씩 읽어 보시길 권한다. 내용은 표현의 자유와 혐오발언 금지는 서로 상충하는 개념인 걸로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민주주의의 가치 아래 양립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더러운 잠” 관련 논란의 본질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권위주의와 이에 도전하는 리버럴 간의 충돌이며, 또 하나는 아직 혐오발언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행하는 혐오발언 문제이다.

첫 번째 문제

첫 번째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전통적인 예의범절은 상당 부분 권위주의적인 가치 기준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어르신의 말씀은 경청해야 한다, 상관의 말에는 절대복종해야 한다, 학생은 선생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 모두 권위주의적인 행동기준이며 예의범절을 지키라는 의미의 진술 들이다.

어르신이 멍청한 발언을 할 때에는 경청할 이유가 없으며, 상관의 잘못된 지시에는 불복하는 게 정의이고, 학생과 선생은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동료이자 학문 앞에 평등한 존재라는 생각은 저 올드한 기준에 의하면 발칙하기 그지없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엄청나게 권위주의적인 사회였다. 거기에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그 권위주의는 점점 더 강력해졌다. 그러나 90년대를 거쳐 21세기로 접어들게 되면서 권위주의적 사회의 문제점을 자각한 리버럴들의 도전으로 인해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권위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요즘도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젊은 계층에 의해 꼰대라고 놀림받고 있고,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나이 든 사람이 무조건 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심리도 사라지고 있으며, 노령인구가 급증하면서 공경의 대상이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부양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중이다.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노인이 타면 무조건 경쟁적으로 자리를 양보해야 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이제는 노인이 자리 양보를 요구하면 비난을 받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저기 노약자 지정석이나 가 보시지 왜.. 이런 분위기.

어느 쪽이 옳은 거냐고? 당연히 요즘이 옳다. 권위주의는 변화 없는 농경사회에서나 유지될 만한 낡은 사고방식일 뿐이다. 타파되어야 할 구습이다. 현대 도시 문화에는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딴지일보의 존재 가치도 그 부분에서 인정을 받는다. 90년대 말 김대중 대통령을 희화화한 짤방을 들고 인기를 끌기 시작해서 음지에 숨어 있던 성담론을 양지로 이끌어낸 공을 세웠다. 그 시대를 공유하는 메이저 미디어 종사자들도 이 공로는 모두 인정하고 있다.

마광수 교수 역시 성담론의 양성화에 크게 기여를 한 리버럴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주장에서도 성담론을 소재로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권위주의를 해체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그리고 리버럴들은 이 권위주의는 진보고 보수고 가리지 않고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한탄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도구로 수시로 꺼내 드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표현의 자유”다.

<더러운 잠> 사건에서 어찌 감히 국모(와.. 이 권위주의적인 용어라니..)의 나체를 그린 그림을 공공의 장소에 전시할 수 있냐고 외치는 것. 권위주의적 주장이다.

박근혜가 한 짓을 생각해 봐라, 그런 정도의 풍자도 못 받아들이냐,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이름으로 저항하겠다, 잘못한 거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표창원 의원을 옹호하는 것,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리버럴적인 주장이다.

이런 대립은 이번뿐 아니라, 이명박을 쥐에 빗대어 그린 그림에서도 나타났고, 그 밖에 공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흔히 등장하기도 한다. 태극기를 불태우는 사건이나 태극기를 길에다가 버리는 행위를 비난하는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권위주의와 이를 해체하고자 하는 논쟁의 재현이다. 이 논쟁은 이제 리버럴의 승리로 귀결되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안 끝난다. 문화는 그렇게 쉽게 안 바뀐다. 문화 지체현상은 항상 벌어지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걸로 끝나면 얘기는 쉬워지는데..

두 번째 문제

문제는 이 사진 합성 작품이 성차별적인 코드를 담고 있는 “혐오 표현”이었다는 점이다. 이게 두 번째 문제다.

딴지일보는

http://www.ddanzi.com/ddanziNews/161164161

이 기사에서 빙빙 돌려가며 옹호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이 작품이 혐오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당연한 것이 이 작품은 꽤나 명확하게 여성혐오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 기사에서 왜 이 작품이 여성혐오인지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고 있는데, 그건 모르는 사람이 공부해야 하는 거지, 설명 안 하는 사람의 책임은 아니다. 떠 먹여주길 바라나?

마네의 <올랭피아>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라는 작품에 대한 함의는 그리 어렵지 않다. 올랭피아의 구도에 조르조네를 얹은 것, 여기서 이미 명확한 여성혐오의 의미가 시작되는데, 그걸 부정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소수의견이라는 한계가 있다.

권위주의와 이에 대한 도전은 이미 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물론 아직은 권력을 가진 쪽이 더 힘이 세기 때문에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상의 시장 관점에서는 오히려 그에 반항하는 권위주의자들이 사회적 소수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어버이 연합이나 엄마부대 분들이나 그런 소릴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다.

비록 속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을 쥐라고 그러거나 닭이라고 그러는 건 좀.. ‘이라고 생각을 해도, 그게 권력에 대한 풍자이며 민주사회에서 그런 정도는 용인되어야 하며 처벌해서는 안 되는 거라는 사실에 반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여혐 문제에 대해선 이해하고 있는 쪽이 소수다. SNS 등에서는 그나마 일찍부터 이 논란이 많이 퍼지면서 꽤 많은 사람들(주로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이 문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지만, 오프라인 실제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뭐냐고 물어보면 미소지니(misogyny)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얘기이다. 그게 현재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거기에 이런 “여성혐오”를 담은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걸러내야” 한다는 것은 당장 표현의 자유와 상충되는 것 아니냐,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자는 것 아니냐는 저항에 부딪힌다. 이 부분에서 바로 아까 링크한 표현의 자유와 혐오발언 금지는 상충되는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나체 합성 작품이 권위주의 관련 논쟁에 휩싸이면서 동시에 성차별 문제가 함께 논의되기 시작하니 상황은 혼돈의 카오스에 빠져 버린 거다.

– 표창원 의원은 “더러운 잠” 이 포함된 작품들의 전시를 허용했다.

– 그 안에 권력에 대한 풍자이면서 동시에 여성혐오적인 측면이 있는 작품 <더러운 잠>이 포함되었다.

– 새누리 측에서는 격하게 반발했다. 권위주의적 입장. 감히 어디서..

– 표창원 지지자들은 그게 뭐 어떠냐고 항의를 한다. 표현의 자유!

– 그런데 민주당 내 여성의원들 및 당외 성평등 활동가들이 이 작품의 여혐성을 지적하며 비난한다. 민우회의 첨삭지도는 이 부분에 포함된다.

– 표창원 지지자들은 어떻게 같은 편이 우릴 비난하냐며 이 꼴페미들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광광 운다. 이 부분에서 여성혐오 문제를 지적하는 그룹과 권위주의적 입장을 강변하는 세력을 하나로 간주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 새누리 계열은 거보라고, 저건 여성혐오(그게 뭔지도 모르면서)라고 덩달아 비난한다.

– 사람들은 새누리 보고 여성혐오라면 그건 니들 전공분야니까 닥치라고 항의한다.

– 사건은 삼천포(이건 지명 혐오인데..)로 빠져 버린다.

이러고 있는 거다. 결국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진화하고 싶었는지, 표창원 의원에게 징계를 내리고 서둘러 마무리.

마무리된 건 좋은데 뭔가 찜찜한 결말이다.

마무리

표창원 의원은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지원한 전시회에 포함된 작품 중에 “여성혐오”가 담긴 작품이 있다는 것을 구분해 낼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표창원이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여성혐오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아직 좀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성평등 정도의 개념을 안다고 해서 여성혐오를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 이런 얘길 하고 있는 나도 한참 공부하고 책 보고 하는 중이라 자신 있게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서 관련 내용을 열심히 찾아보고 겨우 한 두 마디 할 뿐이다. 그래도 자신이 없고 조심스럽다.

이 분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한 정치인은 안희정이다. 내 심정이 딱 이렇다.

심지어 그 “더러운 잠”을 만든 작가도 이 부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 작품의 작품성을 논하거나 이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올랭피아가 어떤 작품인지, 조르조네의 비너스는 또 어떤 건지 정도는 생각을 해 보셨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작품이 전시에 포함되어 있다가 페미니즘 진영에서 항의가 들어오면 그건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과하고 시정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하면 된다. 감히 대통령을..으로 시작하는 권위주의적 입장의 항의는 개무시해도 된다. 아니 맞받아치고 싸워야 한다.

이건 서로 완전히 다른 얘기라는 것을 구분해 내는 것이 필요했다.

지금도 그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딴지일보는 전시를 중단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그러나 그거야 뭐 딴지가 알아서 할 일이고, 딴지의 마초성이야 뭐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대한민국에 똥꼬 깊쑤키 똥침을 날리며 리버럴의 깃발을 드높이 휘날리던 딴지일보가 2017년 현재에 와서는 여혐과 마초의 온상이 되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욕먹는 꼴을 보는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는 법. 어느 한 구석 망가졌지만 그래도 좋은 오랜 친구를 바라보는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개인적인 소회로 남겨 두기로 하자.

나는 위쪽으로 권위주의를 배격한다. 그래서 리버럴이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약자와 소수자를 우리의 동료로 간주하고 일체의 차별을 배격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공부를 하다 보니..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페미니즘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럼 페미니스트지 뭐.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