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

얼마전 영화 <반지의 제왕>이 극장에서 재개봉을 했기에 가서 봤다. 내 인생에 남을 영화이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었고, 언제나처럼 넋을 놓고 봤다.

하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같은 작품을 여러번 보게 되면 느끼는 감상이었을까. 가장 좋아하는 세오덴 왕이 정신을 차린 직후의 장면, 샘이 프로도를 업고 가는 장면, 나팔소리에 로한이 응답하는 장면 등등에서는 그렇게 추억이 살아나거나, 울컥하거나, 찡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장면들에서 온갖 추억, 기억, 감정이 북받혀올라서 눈물이 났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피핀과 메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그 둘이 나중에 얼마나 갖은 고생을 겪게 될지 모든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 것이다. 그런 평소에 보지 못하던,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에서 울컥하게 되는 것이 덕후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랄까. 

어디 작품 뿐일까. 사랑도 비슷하지 싶다. 누군가를 사랑할때, 그 사람이 어디가 예쁘고, 어디가 잘났고 하는 것은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왼손 셋째 손가락 두번째 마디의 주름, 우연히 고른 게 분명한 음식 메뉴, 어딘가에 급하게 왔을 때 옷에 붙어있던 보풀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는 것. 그럴때 ‘아, 내가 이사람을 진짜 사랑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것이 더이상 사소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괴로움은 훨씬 심해진다. 차라리 상대가 예쁘고 잘생긴 것이 기억에 남으면  ‘저정도 되니 누구라도 좋아했을 것이고, 내가 들어갈 빈자리는 저사람에게 없지’라고 납득이라도 간다. 하지만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인데 왼손 셋째 손가락 두번째 마디가 생각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차라리 모니터 속 작품이라면 4차원의 벽이 존재하니 다가갈 수라도 없어서 체념할 수 있을텐데. 바로 옆에 같은 공기를 마시며 숨쉬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조차 없을때 그 사소함이 뼈에 사무치고 가슴이 미어지게 만들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럴땐 ‘내가 도대체 왜이러나’라는 생각만 끝없이 머리 속에, 가슴속에 맴돈다.

모든 출발은 ‘나’다. 내 마음이 향해 있으니 그런 사소한 것들이 보인 것이고,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내 마음’에 남은 것이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관심도 없었을 그 사람에 대한 사소한 것들까지 고스란히 마음에 남은 것이다. 어디에도 ‘그 사람’은 없다. ‘내 마음 가득 채운 그 사람’ 만 있을뿐.

이쯤되면, 마음이 버티질 못한다. 누군가와 서로 사랑을 하려면 가끔은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나무 그늘이 되어줘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때문에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된다. 누군가에게 매달리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까? 어렵다. 간절히 원할 수는 있어도,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더더욱 없어지니까. 그 사실이 자신에게 와닿는 순간, 자신은 사랑하는 상대의 옷에 붙은 보풀만도 못한 사람이 되어간다. 악순환의 고리는 누가 끊어줄 수도 없는데, 스스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밤하늘의 달과 별을 따다 줘도 시원찮을 마당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폐가 된다니.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내가 없어도 행복할 사람에게 괜한 상처를 남기지 말고, 돌아서는 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게 마음대로 안되서 또 혼자 곱씹으며 돌고 도는 게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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