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반복된다: 다시, 또, 공항

비극은 반복된다

다시, 또, 공항

 2016년을 기억하는가. 그 한 해에 벌어졌던 그 많은 일들을 기억하는가. 그것이 다른 한 해와 같은 길이였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주변에선 “2016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면 놀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있다. 영남권 신공항 논의가 그렇다.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이 영남권 신공항 유치를 두고 경쟁하다, 김해공항의 확장이라는 다소 허무한 결론이 나온 것이 2016년이었다. 지난해 6월의 일이니, 이제 막 8개월 정도 지난 셈이다.

 

 

영남권 신공항은, 그 논의 자체가 이 사회의 비극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처음 영남권 신공항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참여정부 때였다. 정부 내에서 논의가 있었으나 적절한 입지를 찾지 못해 백지화되었다. 다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2007년 대통령선거, 이명박 후보는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고 신공항 착공이 가시화되자, 영남권 내에서 여론이 갈리기 시작했다. 밀양과 가덕도. TK와 PK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영남에 지역기반을 둔 이 대통령은 어느 한 쪽도 선택하지 못했다. 신공항은 자리를 찾지 못했고, 시간만이 흘렀다. 그 사이 김해국제공항의 포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2011년 3월 30일에야 최종 입지 평가 결과가 발표되었다. 밀양 39.9점, 가덕도 38.3점. 밀양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으나, 두 지역 모두 50점이라는 절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영남권 신공항 논의는 백지화됐다. 두 번째 백지화였다. 신공항은 2025년 이후의 장기 논의로 미뤄졌다.

각 지자체는 반발했다. 부산시는 단독으로라도 공항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 사이 밀양시장은 영남권 신공항을 반대하는 주민을 폭행하기까지 했다. 절망은 그 기대만큼이나 뜨거웠다. 대통령이 탈당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입지 조사에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도 흘러나왔다.

1년 뒤 2012년 대통령선거, 영남권 신공항은 다시 후보들의 공약이 되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입지를 특정하지 않은 채 영남권 신공항을 약속했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이미 두 차례가 공항 입지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된 두 곳이었다. 그러나 이 두 땅은 다시 한 번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지역감정은 표를 얻기 위한 아주 쉬운 선택지다.

결국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3년 8월, 국토부의 수요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는 1년 동안 이어졌다. 1년만에 나온 수요조사의 결과는 단순했다. “새로운 공항이 필요하다.” 영남권 신공항의 착공 가능성이 다시 높아졌다. 지역감정은 다시 쌓이기 시작했고, 종종 폭발했다.

2016년 6월 21일, 2년 만에 입지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가덕도와 밀양 모두가 다시 한 번 백지화됐다. 세 번째 백지화였다. 정부는 김해공항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표 논리에 의해 끌려나온 신공항은, 그 지저분한 지역감정과 함께 다시 한 번 버려졌다.

지역감정이라는 ‘쉬운’ 수단은 선거 때마다 끌려나왔고, 선거가 끝나면 버려졌다. 그 지리한 논란 속에서 ‘지방’은 표와 함께 때로 구원되었고, 때로 버려졌다. 그 사이 김해공항의 수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지역감정과 함께 표는 이곳저곳을 오갔고, 정작 필요했던 공항은 어느새 사라져 유령처럼 세간을 떠돌았다.

 

 

 

어쨌든 김해공항 확장안이라는 대안은 나왔다. 이것이 그 지리한 논란의 결말이었다. 합리적인 수준의 결정이었다. 우리 사회는 하나의 결론을 도출했고, 그 결론에 따라 공항을 확장해 편의를 도모하면 될 일이다. 비극은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공항과 지역감정이라는 이 ‘쉬운’ 수단은, 다시 한 번 끌려나올 기미를 보이고 있다. 비극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정부의 목표에 따르면, 김해공항은 2026년 그 확장을 완료한다. 연간 3800만명 정도가 이용할 수 있는 규모다. 활주로는 기존의 활주로와 다른 방향으로 3200m 규모로 한 개가 늘어난다. 이것이 정부가 지난 6월 21일 발표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내놓은 예비타당성조사의 결과는 달랐다.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에서, 김해공항의 확장 규모를 기존에 발표한 3800만명 선에서 1000만명 이상이 줄어든 2500~2800만명으로 잡았다. 보고서는 매년 승객이 4.7%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당장 현재만 해도 매년 7.7%의 승객이 증가하고 있다.

1000만 명의 이용객이 사라졌다. 당연히 확장되는 시설의 규모가 달라진다. 예상되는 비행기 이륙량도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소음에 따른 주변 주민 이주 비용 역시 줄어든다. 대형기를 띄울 필요성도 부정된다. 그렇다면 부산시 측에서 요구한 활주로의 연장 안도 무산된다는 의미다. 이용객의 축소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여기, 재미있는 발언이 하나 있다. 6월 21일 김해공항 확장안이 발표된 뒤, 박근혜 대통령은 “김해공항 확장이 사실상의 신공항”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일 정도 지난 7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구국제공항의 이전 사업을 속행하라고 주문했다.

대구국제공항의 이전은 과거부터 논의된 사안이었지만, 영남권 신공항 논의로 사업이 일시 중지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이 발언을 기점으로 논의가 재개되었고, 현재 경북 군위군과 의성군이 후보지로 결정되어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중에 있다.

정부는 2023년까지 대구국제공항 이전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해국제공항 확장 사업보다 3년 이르다. 투입되는 예산은 7조 2465억원. 김해국제공항 확장에는 4억 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된다. 활주로는 3500m 규모로 두 개의 신설이 예측된다. 김해국제공항의 3200m보다 더 큰 규모다.

 

 

물론 두 지역을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김해국제공항은 원래 있던 공항을 확장하는 것이고, 대구국제공항은 새로 공항을 짓는 것이다. 대구국제공항은 군 공항 시설도 함께 이전한다. 예산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전체 예산 중에서 민간 공항이 사용하는 양은 대단히 적다. 2023년 개항 역시 예측일 뿐이며, 3500m 규모의 활주로 역시 대구시 측의 요구다. 국방부는 아직 규모를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는 없다. 대구국제공항 이전은 김해국제공항 확장보다 이르게 완료될 것이다. 대구국제공항은 현재보다 두 배의 규모로, 확장된 김해국제공항보다 일찍 개장한다. 수요가 대구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의 누구도 ‘사실상 신공항’이라는 김해국제공항의 수요난을 염려하지 않는다.

김해국제공항은 확장 사업을 이유로, 1년에 330일 동안 만차로 주차난을 겪고 있는 주차장의 확장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확장안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10년 뒤 완성될 확장안은, 아직 삽 한 번 뜨지 못한 채 오히려 김해국제공항의 편의를 막아세우고 있다. 9개월만에 처음 열린 소음대책협의회에는 국토부와 공항공사 측 인사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반면 대구국제공항의 확장 사업은 속도를 내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한 달만에 국방부는 이전 사업을 확정했다. 이미 입지 선정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군위군은 공항을 유치해야 한다는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결국 공항을 기반으로 한 지역갈등은 다시 한 번 피어오르고 있다.

부산 신공항추진범시민운동본부는 정부가 김해국제공항 확장을 “리모델링 수준으로 사업을 축소”하려고 한다며, 이를 정부의 “배신행위”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가덕도 신공항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대구시는 3500m 규모의 활주로 건설을 기반으로 유럽-북미 노선의 대구국제공항 취항을 주장하고 있다.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논리에 대항해, 밀양 신공항의 재추진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치인들 역시 가세했다.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는 김해공항 새 활주로가 3800m 이상이 되지 않는다면, 신공항 사업 자체를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병수 부산시장 역시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만나 대구공항 이전과 김해공항 확장 사업 축소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TK와 PK의 지역갈등을 정점으로 이끌고 갔던 영남권 신공항 사업이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논의는 세 번 등장해 세 번 백지화됐다. 김헤공항의 확장은 이 논란의 종점을 찍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결론이 나오고 20일만에 대통령은 대구공항 이전의 속행을 주문했다.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일시 중단되어 있던 논의는 이 발언을 기점으로 속도를 냈고, 이렇게 만들어진 대구공항 이전 사업은 결국 다시 한 번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백지화된 영남권 신공항 사업은 2007년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되었다. 이명박정부에 이르러 다시 백지화된 영남권 신공항 사업은, 2012년 다시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되었다. 그리고 박근혜정부, 영남권 신공항 사업은 다시 백지화되었고, 이제 또 한 번의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대통령은 씨앗을 뿌렸다. 빠르게 추진되는 대구공항 이전 사업. 그리고 축소되는 김해공항 확장 사업. 그들이 이 씨앗에 물을 주고 갈등을 키워냈다. 그 갈등은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 갈등은 곧 열매를 맺을 것이다. 지역감정이라는 치졸한 씨앗을 가진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누구의 몫이 될 것인가. 2007년에 그랬듯, 2012년에 그랬듯, 다시 한 번 ‘그들’이 그 열매를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표를 얻어갈 것이다.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이 논쟁을 종결시킨 나름 합리적인 결정을 뒤엎을 것이다. 이미 갈등은 자라나고 있다. 지역이기주의는 다시 노름판의 판돈이 되어 이곳저곳을 망령처럼 떠돌 것이다.

다시 공항이다. 여기,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68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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