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진보: 우리가 받은 것, 우리가 남겨야 할 것

혁명의 진보

우리가 받은 것, 우리가 남겨야 할 것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부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되었으며, 경호 예산을 제외한 모든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 1948년 이 땅에 주권과 영토를 가진 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탄핵 선고는 허무할 정도로 빨랐다. 초반의 파면사유 부정으로 몇 차례나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것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선고가 시작된 것은 11시 정각, 그리고 낭독문을 모두 읽고 대통령의 권한이 박탈된 시각은 11시 21분.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대통령은 파면되어 사라졌다.

그것은 참 묘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몇 차례 대통령을 쫓아낸 일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혁명에 의해 쫓겨났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측근에 의해 암살당했다.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그 임기는 채웠지만 결국 형사처벌을 받았고, 전직 대통령 예우를 모두 박탈당했다.

그러나 그들 전직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는 판이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쫓아낸 것은 혁명이었다. 그 혁명은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그 사이 2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박정희 대통령을 쫓아낸 것은 암살이었다. 그 도화선이 된 부마항쟁에서는 1000명 넘는 체포자와 125명의 구금자가 발생했다.

이승만의 독재는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거쳐 12년을 지속했다. 박정희의 독재는 삼선개헌과 유신을 거쳐 16년 동안 계속되었다. 전두환의 독재는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됐다.

긴 시간이었다. 폭력과 야만이 난무하며 민주화의 요구를 억압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희생만이 이 야만의 세월을 막아세울 수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에는 피의 냄새가 짙게 서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19차에 걸쳐 1400만의 시민이 운집한 촛불집회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화의 힘은 폭력보다 강했다. 국회는 234표이라는 압도적인 숫자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헌법재판소는 단 한 명의 이견도 없이, 8명 전원의 판결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것은 우리 진보의 증거다.

4.19 이후 57년의 시간이 지났다. 10.26 이후 38년의 시간이 지났다. 6.10 이후 3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차근차근 진보했다. 더 나은 헌법을 만들었고, 더 구체적인 법률을 만들었으며, 더 민주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더 나은 선거를 했으며, 더 나은 제도권 정치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점점 성장하며, 민주주의의 영역을 착실히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2017년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혁명도, 암살도, 누군가의 희생도 필요없었다. 누군가의 중대한 용기 역시 필요치 않았다. 작은 사람들의 작은 용기로 충분했다. 우리는 총이 아니라 법전의 힘으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폭력이 아니라 제도의 힘으로 대통령을 쫓아냈다.

 

 

 

폭력은 불행한 일이다. 사회적 약자가, 다른 수단 없이 극단에 몰렸을 때 벌이는 폭력은 때로 정의로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폭력은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인류는 폭력 없이 사회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끝없이 갈망해 왔다. 그리고 지금 세계의 존재하는 국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량만큼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수십년 전 우리는, 정의를 위한 최소한의 폭력을 필요로 했다. 그것 없이는 우리의 목소리를 전할 방법이 없었다. 사회의 핵심적 가치들은 극단에 몰려 있었으며,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 몇백만이 모이든,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우리는 극단에 몰렸지만, 우리에게는 평화적으로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다. 국회가 있었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 대의민주주의 기구는 국민의 뜻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탄핵안은 가결되었다. 헌법재판소가 있었고, 3권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이 기관 역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 대통령은 파면되었다.

이 거대한 권력의 비리를 무너뜨리는데, 누구의 피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누구의 희생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보장받았다. 그리고 그 신성하고 강력한 광장에, 어떤 종류의 국가폭력도 쉽게 발을 붙이지 못했다.

 

 

 

우리는 불행한 사태 없이 승리했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진보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는 폭력 없이, 누군가의 희생 없이, 강자를 심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우리의 혁명은 이만큼이나 진보했다. 대단히 문명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바꾸고, 그 권력자를 심판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 이것이 우리가 민주화 역사 전반에 걸쳐 만들어낸 성취였다. 사회는 진보했고, 딱 그만큼 혁명의 방식 역시 진보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탄핵소추안을 발의한다.” 국회가 발의안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마지막 문장이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의 주문이었다.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낭독했다. 대통령을 파면해서 헌법질서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대행이 판결문을 낭독했다. 대통령을 파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김관영 의원과 이정미 재판관의 입을 통해서 선언된 말이었지만, 기실 그것은 그들을 통해서 선언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국민이 한 목소리로 만들어 낸 선언이었고, 민주화의 역사 전체가 만들어 낸 성취였다. 그리고 그 선언만으로, 대통령은 파면당했다. 누구의 피도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그 무거운 재판정의 망치가 전부였다.

피를 흘리지 않은 혁명. 그것은 역사 속 선배들이 우리를 위해, 그들의 피를 희생해 만든 영광스런 진보의 결과물이었다.

 

 

 

우리의 진보한 혁명으로, 별다른 혼란 없이 대통령은 파면당했다. 국민이 선언한 국민의 승리였다.

우리 앞에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어쩌면 더 어려운 싸움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승리해야 한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당위의 문제다.

우리가 나아간 만큼, 시대가 다음 세대에게 요구하는 희생은 줄어든다. 우리는 우리의 후배에게 더 진보한 사회를, 더 진보한 혁명이 가능한 사회를 넘겨줘야 한다. 진보를 물려받은 우리는, 다시 한 번의 진보를 우리의 뒷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다.

그렇기에 오늘을 즐기자. 이 승리에 마음껏 감격하자.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다음 승리를 향해 나아가자.

결국, 우리가 이긴다.

 

 

덧1.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오늘 밤, 청와대 관저를 떠나지 않고 그냥 머무르신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로써 청와대 관저에서 묵은 최초의 민간인이 되었다. 하루 정도는 괜찮다. 그러나 그 마지막 밤을 보내며, 부디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내일 그곳을 나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되어버렸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불편한 밤이 되길 바란다.

 

덧2.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모두 집회 참가자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이외에도 기자나 일반 시민에 대한 폭행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것을 진정시키려는 정치인 하나 없다. 그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오늘만은 당신들이 패자다. 승자로서 우리는,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 의무가 있다. 조금은 과격해져도 좋다. 일반인에 대한 폭력과 같은, 최소한의 선만 넘지 말았으면 한다. 열심히 싸우시고, 열심히 무력감을 느끼시길 바란다.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성장하기에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69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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