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

 

영화의 제목은 약간의 선입견을 준다. <미스 슬로운>이기에 이미 여성으로 인지되고 다음으로 직업을 떠올린다. 전제되는 ‘여성’에 초점을 맞추면 수많은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게 된다. 영화의 제목부터 <로비스트 슬로운>이었다면 어땠을까.

‘여성’이란 말에 익숙해진 수식어들이 머릿속을 오고 간다. 한국에 로비는 있지만 로비스트라는 직업은 없다. 합법의 직업이 아닌 것이 오히려 불법과 부정부패를 쌓는 원인이 되는 일이었음도 생각한다. 당당한 직업으로 인정해 그 활동을 투명하고 긍정적인 영향력 행사로 끌어내는 것이 낫다.

더이상 대한민국에서 뇌물로 권력의 힘을 남용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치있는 명분을 지킬 수 있는 설득이 바로 서야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될 수 있으니까. 어둠 속에서 갈등하는 세력끼리 은밀하게 진행하던 일을 빛의 세계에서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위해서라도.

로비스트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 데 보여준 슬로운의 치밀한 분석과 예측 능력은 엄청나다. 영화의 긴장감은 몰입도를 높이기도 하지만 쉽게 지치게도 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적응된 로비스트 슬로운만큼이나 힘들게 내 시선도 움직인다.

슬로운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화장실의 문을 닫는 그 짧은 순간,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와 문을 닫는 순간, 찰나의 안도감에 숨을 내쉰다. 그리곤 급하게 다시 무언가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 순간을 영화는 너무 뻔하게 접근한다.

냉혹한 직업의 세계에서 자연인 슬로운이 보여준 단편들이 육체적인 욕망만으로 표출된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섹슈얼리티로 해결하려 연출하는 장면들은 영화의 흥미성을 위해 필요한 장치였을까? 오히려 영화의 주제 접근을 비껴가도록 도와주고 있다.

직업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일에 슬로운의 사생활은 일종의 클리셰. 더 은밀한 개인의 고뇌가 연출되었다면 이 영화가 주는 쾌감은 훨씬 높았을 것이다. 슬로운이 믿는 명분을 위해 팀원의 사생활을 직접 폭로하며 겪었을 인간미를 더 포착할 수 있는 장면이 배치되었다면 감동은 다른 의미로 확장될 수도 있었다.

로비스트로서 슬로운이 보여주는 통찰력은 대단하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비해나가는 슬로운의 수 읽기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영화의 구성이 관객을 긴장시키는데 집중해서일까. 정작 이 영화로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인지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슬로운의 거미줄에 걸린 분산된 시선은 한 곳으로 모일 때야 드러난다.

영화는 직업이 삶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들이 급하게 펼쳐진다. 거대한 자본 권력과 정치인들의 야합. 그 사이를 누비는 로비스트 슬로운의 활약에 뒤따르는 외양과 발걸음, 목소리는 완전무결해 보인다. 하지만 직업인이 아닌 시간 슬로운의 사생활은 단지 돈을 주고 품는 욕망으로 대신하고 있다.

폭로를 위한 과정을 보면 마지막까지 슬로운의 책략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로비스트로서 슬로운이 이루어낼 목표를 위해 선택한 방법은 과연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목적을 위한 과정에서 보여주는 이기적으로 보이는 이성의 논리, 로비스트라는 직업이 내뿜는 냉혹함도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이다.

불법에 불법이 난무하는 정치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개인들과 연결된 이해관계였다.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발생하는 무차별의 폭력. 이 영화는 미디어를 이용해 여론을 이끌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지금, 다시 깊은 고뇌로 이끈 영화이다.

영화의 결말을 위한 장치 중 직업인이 가진 신념을 엿볼 기회는 슬로운의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법을 통과하기 위해 여성을 이용하려는 CEO의 말에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자본가의 습성이 보인다..

“38 구경으로 폭력 남편을 막아내는 거로요. 총이 여성 권한 부여의 도구인 거지.”

……

“제 충고는요, 태아 때 죽이세요.”

거대한 권력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로비스트 슬로운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 마지막 한 방을 날리기 위한 근거는 조직이 뒷받침해 준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슬로운의 능력은 자기 믿음에서 시작되어 만들어낸 여러 전문 영역의 협력이었다.

로비스트라는 직업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전문가로서 슬로운의 당당함이 좋았다. 직업 윤리가 사회 책임감으로 이어지기까지 슬로운의 행동에 박수를 보낼 생각은 없지만.

“난 믿는 명분을 대리해 일해요. 그래야 밤에 잠을 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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