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정책 공약집을 달라!

 

촛불로 이룬 5월 대선 후보자들은 서로에게 참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유권자인 내가 정작 듣고 싶은 말은 국가 정책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할 진지한 내용이다. 시간도 많이 남지 않은 이참에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은 서둘러 정책 공약집을 전 국민에게 배포해야 한다.

집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매체의 뉴스나 종이 신문들이 찌라시로 전락해 믿음이 가지 않는다. 우선은 선거 때마다 내거는 후보들의 공약에 대한 실현 가능성과 연계될 현재의 정부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이런 사실들에 자연스레 접근할 수 없는 언론 지형이다.

언론이 호도하는 기사들로 많은 이들이 감언이설에 또 속아 넘어간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매니페스토란 참으로 허울 좋은 말이 된다. 말의 힘이 실종되어 본래의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는데도 여전히 작동하는 다수결의 오류가 빚곤 하는 투표의 힘이다. 이명박 정권을 이어받은 전 박근혜 정부의 폭삭 망함과 대통령 파면은 ‘경고’한다.

‘매니페스토’는 선거와 관련해 유권자에 대한 계약으로서의 공약, 곧 목표와 이행 가능성, 예산 확보의 근거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공약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공직자에게서 실종된 가치, ‘매니페스토’는 민주주의에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공직자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대선이 끝나고 국회는 “매니페스토 선서”의 법제화로 공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현직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공직자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평생을 지원해 주는 것부터 차단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정부를 감시하고 압박할 수 있는 시민단체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들을 해내고 있는지 되새겨 본다. 유권자들도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찾아가서 알아보고 점검하는 수고를 했으면 한다.

2012년 대선 후보자 박근혜의 공약은 잠시 꿈만 꾸게 하는 것으로 선거에서 당선만 하면 된다는 고질적인 공직자의 무책임을 보여 주었다. 임기 중에 일어나는 국정에 관한 책임을 임기 후에도 강력하게 묻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될 것이다.

힘겨운 삶을 마무리하는 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자해하며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사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이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는 자본가는 없다. 가난의 대물림으로 부를 원하게 하고야 마는 반복되는 시스템 안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극단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역량으로 나의 생존을 책임질 수 없는 것은 대부분 외부의 폭력적인 상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급하게 이식된 민주주의가 힘을 유지할 수 없었던 이 현실은 뛰어넘은 그만큼의 시간을 처절하게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대상을 무시하는 방법의 하나, 호칭만으로 존중하는 사회, 말의 힘이 사라져 사랑도, 존경도, 배려도 표면적인 일들로 일상화된 한국사회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발상 자체가 위기일지도 모르겠다. 말장난이 넘치는 사회, 말로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사회, 국가 권력의 힘, 국가폭력이 만든 현실이다.

공직자들의 말장난과 직무유기, 허언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철옹성을 지켜가고자 하는 엘리트 민주주의가 낳은 현상들이다. 성실하게 묵묵히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 사실은 인간일 수 없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세월호 참사 3주기가 가리키는 한국사회는 불안함이 곳곳에 널려있다는 인식을 주었다. 내 나라에서 ‘안전하다’는 의미가 적어도 생존에 위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 언제든 꺼져버릴 수 있다는 불안은 본능적으로 나의 두 발을 묶어버리게 된다.

불안한 삶은 일시에 공포의 전염병처럼 사람을 에워싸고 그 기운들은 정신을 병들게 한다. 그렇기에 위험사회인 한국에서 개인들이 공감의 시대를 열어갈 행위들이 더 공고해지기를 바란다. 이 땅에서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에게 정책 공약집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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