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6일 (1). 런던: 대영 박물관

2016년 2월 16일 (1)

런던: 대영 박물관

 

 

 

숙소에서 출발할 때의 사진.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자니 시차 적응이 필요 없어 좋았다. 겨울인데도 아침이라 그런지 습기가 가득 낀 게 여기가 영국이구나, 싶었다.

 

 

어제는 지하철 타고 왔는데, 구글신에게 물어보니 버스로 가는 게 더 빠르다더라. 버스 위에서 덜컹거리는 사진을 찍고 첫 번째 목적지인 대영 박물관을 향해 떠난다. 영국 하면 2층 버스지!라고 생각하고 2층에서 타고 갔는데, 거 뭐 어차피 타고 내리는 데는 1층이 제일 낫다. 그래도 런던의 대중교통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공항에서 산 오이스터 카드를 알차게 활용했다.

근데 오이스터 카드는 대체 어째서 오이스터인 걸까….. 왜 교통카드 이름을 ‘굴oyster 카드’ 같은 걸로 만든 거지…. 오이스터 카드 찍고 오버그라운드를 타고 다니다 보면 누구든 영국 사람들의 놀라운 작명센스에 대해 통탄하게 되는 법이다.

 

 

길을 걸어가다가 왠지 영국 국기가 보여서 찍었다.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국기를 합쳐서 만들었다. 영국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의 국기에도 삽입되어 있다. 호주라던가, 뉴질랜드라던가. 주로 영국의 지배를 받은 영연방 국가들인데, 미국의 하와이 주는 영국의 지배를 한 번도 받지 않았는데 주기에 유니언 잭이 들어 있다. (아니 대체 왜!!!) 아마 하와이를 처음 발견한 서구인이 영국인인 제임스 쿡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저 국기가 영연방 중 세 지역의 국기를 딴 것이다보니 스코틀랜드가 영연방에서 탈주!!하면 국기도 바뀌어야 할 텐데, 그럼 또 저 수많은 영연방 국가들의 국기도 바뀌어야 할 거고… 혼란이 예상된다 (라고 말하면서 왠지 기대하고 있다

 

 

아무튼 대영 박물관에 도착!! 했으나 너무 일찍 왔다….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했다. 개장 시간 아직이라고. 9시부터 개장한다고 하니 시간을 잘 알아보고 가도록 합시다! 그래서 그냥 외관만 찍고 일단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한 30분쯤 일찍 왔던 것 같다.

 

 

이런저런 골목을 돌아다녔다. 역시 오래된 건물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건물이 폭은 좁고 위로 높게 쌓은 형태다. 뭐지 이것은 혹시 땅값의 영향일까… 아무튼 운치는 있었으나 아무래도 안에서 직접 사는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 느낄 것 같지 않았다. 완전 추울 것 같애.

 

 

9시가 되자마자 거의 1착으로 들어갔다. 앞에 파사드는 저렇게 오래된 건물 같이 생겼지만, 막상 내부는 엄청나게 현대적이다. 아무튼 입장료도 없으니 입장권을 살 필요도 없고, 따라서 긴 줄 같은 것도 없다. 그냥 막 들어가면 된다. 아침에는 사람이 거의 나밖에 없는 수준이라 놀랐다. 그런데 사실 상당부분 약탈 문화재로 채운 박물관에 입장료 받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사실 개장이 9시부터라고 했지만, 막상 9시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내부 갤러리는 대부분 10시부터 오픈하고, 9시에 시간 맞춰서 입장한 나같은 호구관광객은 띄엄띄엄 밖에 서 있는 문화재나 구경하던지, 기념품점이나 둘러보던지 해야 한다. 우린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 그러니까 나갈 때 엿같은 기념품 사라고.

 

 

밖에는 이런 정도의 유물들만 전시되어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아시아 어디선가 뜯어온 것 같은 그런 문화재들…. 그래도 10시를 넘어서 여러 갤러리들이 문을 열고 나면 볼 것들은 상당히 많다. 괜히 세계 3대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에서 지원해준 덕에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가능하다. 실제로 박물관 안에서는 왠지 대한항공과 삼성의 로고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삼성은 뭐 어딜가나 있지만.

 

 

다른 박물관에 있었으면 꽤나 귀한 대접 받았을 법한 문화재들이 막 유리장에 쌓여 있다. 청동 솥이다. 아마 상나라 때의 유물일 것 같다. 중국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솥도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안다. 당연히 제기로 사용되었을 것 같다.

사실 이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청동기가 나온다는 것은 그 사회에 전문 장인 집단이 있었다는 의미고, 다시 말하면 몇명 쯤 농사 안 지어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사회의 생산 능력이 발전했다는 의미다. 제사를 주관하는 이들이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겠지. 물론 그 ‘권력’을 쥐고 있는 주체가 ‘왕’이라는 한 명의 존재였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좀 있다.

조금만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보자. 상나라 시대 초기에는 ‘왕’이라는 존재가 독점적인 권력 주체는 아니었을 걸로 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저게 몇천 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적 체제를 상상하면 비약이 심한 것이다. 아마 지방세력, 특히 지역 토호신을 중심으로 한 각 지방의 제사장들이 모여 일종의 분권형 지배 체제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런 지방 세력들을 ‘정인(貞人)’이라고 흔히 부르는데, 왕이 있기는 있지만 120여명 정도의 정인이 어느 정도의 분산된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왕으로의 집중화가 심화되고, 정인의 세력이 약해진다. 왕이 점복의 판단을 독점하고, 부자상속제를 명확히 하며 보다 강력한 왕권을 만들어 나간다. 이맘때쯤에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 같은 작은 청동기가 아니라, 상당히 거대하고 더 화려한 청동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정인의 세력은 점차 약화된다.

 사실 중앙집권화는 고대국가가 발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기는 하다. 애초에 왕으로의 권력 집중이 얼마나 진전되었는지를 고대국가의 선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또 이렇게 권력을 잃어버린 지방 세력들이 왕조를 무너뜨리려는 반란 세력에 상당히 많이 가담한다는 점, 그리고 심지어 성공하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이 중앙집권화를 고대국가의 발전으로 봐야 할지, 멸망의 신호탄으로 봐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둘은 같은 건지도 모르고.

 

 

왜 나는 영국 여행기를 쓰면서 중국의 고대국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무튼 대영 박물관을 여행하는 여러분은 이렇게 아무리 봐도 불편해 보이지만 뭔가 있어보이는 자세를 하고 있는 알 수 없는 동물들을 마주하며 즐거워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근데 저 동물은 진짜 왜 저러고 있는 걸까…. 그냥 장식품인가?

 

 

중국관 끝에는 이런 불상과 불화가 전시되어 있다. 불상들이 뭔가 굉장히 최근에 만든 것 같이 생겼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양쪽에 있는 건 뭔지 모르겠고, 가운데 있는 건 요나라에서 만든 아라한(阿羅漢)인 것 같다. 그러니까 뭐 양쪽에 있는 것도 오래된 거겠지…. 일단 뒤에 있는 불화는 어디서 가져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오래돼 보이긴 한다.

‘아라한(阿羅漢)’은 부처의 가르침을 받고 그에 따라 수행을 거쳐 더 배워야 할 것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번 생에는 성취할 수 없는 경지라는 뜻이다.

 

트위터를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염화미소

 

 

 

왠지 교과서에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당삼채다. 당나라 때에 만들어졌던 화려한 색의 도자기인데, 사실 자기는 아니고 도기다. 유약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높은 온도에서 굽지 않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자기의 질감과는 다르다.

당삼채는 ‘연유’라는 유약에 여러가지 성분을 섞어 색을 내는데, 이 ‘연유’에는 납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아니 애초에 저 ‘연유’가 납 연(鉛)자 쓴다. 납이 들어가 있으면 낮은 온도에서도 유약이 쉽게 녹아서 썼다고 한다.

 아무튼 일상 식기로는 못 쓴다는 이야기다. 밥그릇으로 쓰다가는 납 중독으로 저승사자와 황천길 데이트에 나서게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아마 이런 종류의 도자기 인형을 만들거나, 그릇 형태로 만들어진 것들은 무덤에 묻는 부장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은 납 중독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을 테니, 실제로 식기로도 썼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당삼채를 직접 만들던 도기공들은 많이들 납 중독으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보니 당삼채도 그렇게 화려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서 찍었는데, 이제 보니 여기저기 유약이 많이 번져 있군.

중국 도자기에서 파란색이 등장하는 것, 그것도 이렇게 대량으로 등장하는 것은 대부분 원나라 때 이후다. 도자기에 사용하는 파란색은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는데, 이 코발트 안료가 중국에는 잘 없다. 몽골 제국의 등장으로 동서 간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서남아시아 지방에 있던 코발트 안료는 그때서야 중국으로 넘어온다.

물론 중국에서도 파란 색의 안료는 꽤나 귀한 존재였다. 청화백자를 많이 만들긴 했지만 대부분 황실이나 귀족을 위한 고급품이었고,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과는 코발트 안료를 거의 거래하지 않았다. 물론 조선은 딱히 다른 곳에서 청화 안료를 들여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조선 후기까지 청화백자를 거의 만들지 못한다. 조선 전기에는 국내에서 나오는 여러 안료로 청화백자를 만들어보기 위한 실험도 꽤나 해 보는데, 거의 실패로 돌아간다. 후기에 들어가서야 청화 안료를 수입할 수 있게 되어 많이 사용한다.

아무튼 중국의 황실은 청화 백자를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여기 보이는 작품보다 훨씬 잘 만들어진 고급품들도 많다.

 

 

이건 뭐지…. 응원봉인가…. 아무튼 콘서트장에서 흔들고 있으면 주목은 받을 수 있겠는데…

 

 

아무리 봐도 해리 포터에 나오는 벅빅을 닮아서 찍어 봤다. 진짜 닮지 않음?

 

 

한쪽에 방을 따로 빼 놔서 뭐가 있는지 보러 갔더니, 남아시아 어느 스투파의 울타리였을 것 같은 녀석을 통채로 떼어다가 전시해 놨다. 이 정도면 대체 어떻게 운반한 건지가 더 궁금한데…. 새겨져 있는 장면들은 아마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인 본생담(本生譚)일 것 같다.

옛날옛적 인도에서는 부처를 직접 묘사하는 것을 불경하다고 생각해, 미술 작품에서 부처의 모습을 직접 표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부처의 모습을 나타내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경전에 나와 있는 부처의 전생 이야기를 새기는 게 첫번째 방법이다. 그게 아니라면 고대 인도에서 신성한 이를 상징했던 양산을 표시하거나, 발자국만 표시하거나, 보리수 나무를 그려 넣거나, 보좌(寶座)를 그리는 방법도 있었다.

 이 시대를 ‘무불상 시대’라고 하는데,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서양 고대의 여러 조각들을 마주하며 3세기 쯤부터 부처의 모습을 직접 그리기 시작한다.

 

 

 반대편에는 다른 조각이 있다. 이제 보니 아마라바티Amaravati 스투파 같은데,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인다. 아무튼 현재로는 스투파 자체가 남아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이 조각에 새겨진 모양으로, 원래 스투파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나라 때에 만들어진 아미타 삼존불이다. 삼존불인데 가운데 분은 여기 대영 박물관에 와 있고, 오른쪽 분은 일본 어디에 가 계시고, 왼쪽 분은 소실된 걸로 알고 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난다. 아무튼 옆에 지나가는 영국인으로 추정되는 청년의 키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크기가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져오긴 가져왔는데 아무래도 전시할 수 있는 전시실이 없다보니 계단 옆에 세워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사실 크기는 대단히 크지만, 막상 디테일한 표현은 약한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이 정도로 큰 조각이면 그걸 조각한 사람이나, 그걸 떼어다가 가져온 사람이나 근성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영 박물관엔 한국관도 있다. 그런데 사실 막상 유물은 별 거 없다. 한국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양질의 한국 문화재를 보고 싶다면 그냥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자. 거기가 훨씬 가깝고 유물도 좋다!

 

 

그래도 일본관에는 재미있는 유물들이 많다. 그냥 귀여운 강아지 인형이 있길래 찍어 봤다… (사실 일본 미술 잘 모름) 참고로 현재 내 텔레그램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되고 있는 친구다. 동물 사진을 쓰고 싶었는데 그때 있던 동물 사진이 얘밖에 없었어….

 

 

그리고 1층으로 내려왔더니 사람들이 어느새 가득 들어차 있다. 바게트 하나 사먹고 다음 유물을 보러 가기로 했다.

 

박물관이 있다보니 어째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16일자는 여기서 절반으로 끊고, 다음에 2편으로 이어가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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