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7일 (2).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2016년 2월 17일 (2)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트라팔가 광장에는 굉장히 높은 기념탑이 있다. 아까 봤던 프레드릭 공 기념탑보다 더 높다. 프레드릭 공 기념탑은 42m 정도 되는데, 넬슨 기념탑은 52m 정도 된다. 10m쯤 더 높은 셈이다. 사실 진짜 막상 트라팔가 광장에 서면 너무 높아서 보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내셔널 갤러리는 이렇게 생겼다. 잘 지어진 건물이지만, 안에 있는 작품들이 훨씬 좋으니 겉모습에 취해 있을 필요는 없다. 트라팔가 광장과 넬슨 기념탑, 내셔널 갤러리 이야기는 다시 왔을 때 더 자세히 하기로 하자. 이날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아래쪽으로 쭉 걸어서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향해 갔다.

 

 

가다보면 길 가운데에 여러 조각들이 놓여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헌신했던 여성들을 위해 만든 기념 조각이다. 만든지는 얼마 안 됐다. 2005년에야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실 트라팔가 광장에서 웨스트민스터 궁전까지 이어지는 길은 일종의 메인 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 대부분의 관공서들이 여기 위치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웨스트민스터 궁전부터가 엄청나게 중요한 관공서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당장 저 조각상 뒤에 보이는 청사가 국방부 청사다. 국방부 맞은편, 그러니까 이 사진을 찍은 내가 서 있는 곳은 영국 내각실Cabinet Office,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쯤 되는 공간이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주소’라는 다우닝 가 10번지, 총리 공관이 바로 이 내각실 뒤편에 위치해 있다. 물론 사진 찍을 때는 그냥 높은 건물들인줄만 알았지…. 알았으면 한 번 가 보는 건데….

사실 생각해 보면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주소는 다우닝 가 10번지보다는 221B Baker Street일 것 같은데. 아무튼 이 길을 따라 외교부, 복지부 등이 늘어서 있다. 영국 경찰청, 그러니까 그 유명한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도 이 길 바로 뒤편에 있다. 마법부도 여기 어디쯤

 

 

그렇게 영국인에겐 유명할테지만 우리같은 관광객에겐 하등의 의미도 없는 높으신 분들이 많이 계신 거리를 따라 내려오면, 금새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보인다.

 

 

빅벤은 생각보다 크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사실 ‘빅벤’이라는 표현은 적절한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따졌을 때 빅벤은 시계탑 안에 있는 종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계탑 자체는 ‘엘리자베스 타워’라는 나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다들 그냥 빅 벤이라고 부르긴 한다.

빅벤은 1859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건축될 때 함께 지어진 녀석이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원래 있었다가 화재로 소실됐었는데, 그걸 재건축하면서 빅 벤도 함께 짓게 되었다.

높이는 96m. 앞에서 봤던 프레드릭 공이나 넬슨 제독이 한참이나 올려봐야 할 높이다. 높기도 높고, 정교하고 화려하게 잘 만들어진 편이고, 무엇보다 런던의 중심가에 위치한 덕에 런던의 랜드마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런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이 빅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에는 종이 들어 있고, 15분에 한 번씩 종이 울린다. 매시 정각에는 시간에 맞춰 한 번에서 열두 번까지 종을 울린다. 시계 자체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자명종 시계고, 시계탑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시계탑이다.

 

 

빅벤의 옆으로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바로 붙어 있다.

 

 

웨스트민스터 바로 옆에는 템즈 강이 흐르고 있다. 강을 넘어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밤이 되면 더 아름다워진다.

이 자리에 처음 건물이 지어진 것은 대단히 오래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지역은 템즈 강을 끼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니까. 명확하게 확인되는 것은 중세 시기로, 바로 옆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함께 궁전이 지어진 것이 보인다. 영국 노르만 왕조의 시조인 윌리엄 1세부터는 영국의 왕이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주로 상주했다.

왕이 상주하는 곳이 웨스트민스터였으니, 당연히 국왕의 주재 하에 열리는 의회도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열렸다. 이런 상황은 1529년, 웨스트민스터에 화재가 발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화재 발생 이후 영국의 왕은, 현재는 소실된 ‘화이트홀 궁전’을 매입해 그 곳에서 주로 거주했다. 복원이 이루어진 뒤에도 왕은 돌아오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이 궁전은 의회의 차지가 되었다. 화이트홀 궁전이 한때 세계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는데, 그걸 버리고 굳이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다만 이때까지는 웨스트민스터가 말 그대로 ‘궁전’이었다. 지금의 모습과 외형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내부 구조 역시 의회에 적합한 구조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하원과 상원의 공간 분리도 제대로 안 되어 있었고, 애초에 회의 공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옆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공간을 빌려서 회의를 여는 때도 많았다.

이 문제는 내부 공사를 통해 차츰차츰 해결해 나갔지만, 본질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고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영국의 국회의사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 궁전이 불타서 거의 대부분이 소실된 1834년 화재 이후였다. 이 화재로 지하실이나 메인 홀 일부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사라졌고, 의원들은 신나게 재건축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상금을 걸고 공모전까지 치른 결과 채택된 복원 도안이 현재의 모습이었다. 당시 한창 유행 타고 있던 신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신 고딕 양식은 말 그대로 중세에 유행했던 고딕 양식을 근대 시기에 다시 복원하고 재해석하는 양식이었다. 18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 퍼지기 시작했는데, 19세기 들어오면서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한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건축되던 시기는 이 유행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였다.

신고딕 양식은 당연히 성당을 짓는 데에도 많이 활용되었지만, 사실 웨스트민스터 궁전처럼 관공서나, 특히 학교를 짓는 데에 많이 사용되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릿지의 건물 중에서도,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은 대부분 신고딕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신고딕 양식은 전체적으로 고딕 양식과 유사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더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특징이다. 창문과 스테인드글라스의 활용, 특히 장미 모양으로 장식한 둥근 창문이나Rose windoe, 세로로 길게 만들어진 창문Lancet 등은 고딕 양식의 것을 그대로 따 왔다. 큰 탑을 올리는 것도 고딕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인데, 웨스트민스터의 경우 북쪽에는 빅벤을, 남쪽에는 ‘빅토리아 타워’라고 불리는 큰 탑을 세워 두었다.

특히 고딕 양식의 핵심은 수직적이고 위로 뻗은 장식들이다. 웨스트민스터의 경우 사실 기술 발달로, 건축적으로는 별 필요가 없음에도 벽을 지탱하는 부벽을 세워서 장식적 효과를 더하곤 한다. 벽면에 세로로 골격을 만들어 무늬를 내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실 웨스트민스터가 아름다운 건축물이긴 하지만, 신고딕 양식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신고딕 양식은 영국을 넘어가 프랑스나 독일 등지로 퍼지며 낭만주의나 민족주의와 결합하며 더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들을 많이 만들어 낸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쾰른 대성당. 같은 신고딕 양식이지만 웨스트민스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어느 쪽이 더 괜찮은지는 개인의 판단이지만, 양식적으로만 봤을 때 ‘신고딕’이라는 양식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낸 것은 쾰른 대성당 쪽에 가깝다.

 

 

아무튼 이렇게 템즈강을 바라보며, 옆에는 아름다운 예술품을 끼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평화롭고 좋다. 멀리 런던 아이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바람이 불어 꽤 쌀쌀했는데도 오래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칼레의 시민들>. 웨스트민스터 광장 뒤쪽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편하게 전시되어 있다고 해서 얕보면 안 된다. 근대 조각의 아버지라고 하는 오귀스트 로댕이 만든 작품이다.

‘칼레’는 영국과 가장 가까이 있는 프랑스의 도시다. 영국군의 침입을 받은 칼레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이때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으나, 주변의 조언에 이를 포기하고 대신 칼레에서 딱 6명의 시민을 뽑아 처형하기로 한다. 칼레 시민들은 이제 여섯 명의 희생자를 뽑아야 하는데, 여기에 칼레의 부유층과 상류층이 자원해 죽음을 자청한다. 에드워드 3세는 결국 이들을 살려 주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여섯 명의 시민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상징으로 남는다. 바로 그 여섯 명의 시민을 조각한 것이 ‘칼레의 시민들’이다.

죽음을 향해 떠나는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표현주의적으로 잘 표현한 수작이다. 높은 수준의 작품인 만큼, 로댕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로댕의 조각들은 청동을 놓고 조각한 것이 아니라, 주물틀을 만들어서 조각한 후 거기에 청동을 넣어 굳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니 사실 주물틀만 있으면 몇 번이고 다시 찍어낼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만 해도 전 세계에 수십 개의 조각이 남아 있다. 모두 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칼레의 시민들>은 열 두번 주조되었는데, 가장 먼저 주조된 것은 당연히 칼레에 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있는 것은 네 번째로 주조된 것이다. 다른 녀석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스위스에도 있고, 벨기에에도 있고, 미국도 몇 점 가지고 있다. 일본도 도교 국립서양미술관에 <칼레의 시민들>을 가지고 있다.

사실 <칼레의 시민들>은 한국도 마지막 열 두번째 작품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의 미술품을 소장할 수 있는 곳은 역시 국내에 한 곳밖에 없다. 삼성이 가지고 있다. 삼성은 또다른 로댕의 걸작인 <지옥의 문>도 가지고 있다. 이걸 가지고 ‘로댕 갤러리’라는 미술관을 차렸었는데, 최근에 이 미술관이 문을 닫으면서 <칼레의 시민들>과 <지옥의 문>은 호암미술관 수장고로 들어갔다. 그래도 수백억 하는 작품들을 그냥 둘 리는 없으니, 아마 곧 호암미술관이나 리움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옆에는 이런 건축물도 있다. ‘벅스턴 기념 분수’라는 녀석이다. 영국의 노예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영국의 노예 해방 역사는 필스교양 ‘종호 학살 사건’ 편을 들으시면 나온다. ㅇㅇ 광고 맞음.

 

 

웨스트민스터 난간 안쪽에는 올리버 크롬웰의 동상이 서 있다. 올리버 크롬웰, 영국 역사상 유일하게 왕정을 없애버린 지도자. 의회파 지도자로 청교도 혁명을 주도했던 그는 찰스 1세를 처형하고 호국경의 자리에 올라 죽을 때까지 영국을 다스렸다. 왕을 죽이고 의회파의 집권기를 열었던 그의 동상을, 영국은 국회의사당 한 켠에 세워두고 있다. 왠지 무서운 일이다.

 

 

옆에는 웨스트민스터 성공회 사원이 있다. 영국 왕실에게 대단히 중요한 건물이다. 왕실 가족들의 결혼식이 이 사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고, 무엇보다 왕의 즉위식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그래서일까 입장료가 20파운드로 더럽게 비싸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원래 웨스트민스터 궁전과 함께 지어진 건물이다. 물론 현재의 모습처럼 지어진 것은 1245년 헨리 3세 때였다. 헨리 3세가 이 곳을 자신의 매장지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16세기에 대규모 개축이 있었고, 이후에도 증축이나 확장이 계속되었지만 원형은 그대로다.

옆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신고딕 양식이라면, 이건 그냥 고딕 시대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이다. 스테인드글라스나 장미창, 부벽, 사진으로는 옆에 살짝 보이는 타워의 모습이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왕실 행사도 필요하고, 상징성도 있고 하다보니 내부는 전형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니다. 무엇보다 왕실과 1이라도 관련 있는 사람은 여기에 비석이라도 박고 싶어 하고, 그런 현상이 무려 800년동안 이어졌으니…. 내부에는 엄청나게 많은 비석과 관이 놓여 있다. 그래도 아직 미사를 드리기는 한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 안 가져 왔는데…. 영국에는 비가 많이 올 것 같아 당연히 우산을 챙겼는데, 며칠 비가 안 오길래 이 날만 우산을 안 챙겨왔더니 비가 왔다. 그리고 다음부터 우산을 꼬박꼬박 챙기고 다녔으나, 이후에는 단 한 차례도 비를 볼 수 없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밤에 보니 여기도 꽤 으스스하게 생겼다.

 

 

그래도 웨스트민스터는 역시 야경이 제맛!

 

 

런던 아이도 왠지 밤에 불이 켜져야 진짜 런던 아이인 것 같은 느낌이 난다.

 

 

비오는데 괜히 비 맞으면서 야경 찍느라고 고생만 했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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