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새끼인가

역사에서 발견되거나 회자하는 인물에게 부여한 현재 위치를 생각한다. 그 위치는 시대 상황에 따라 일정 부분 수정되거나 보완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 한 인물을 총체적으로 들어내기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니까.

영화를 감상하는 내 시선으로 실존 인물을 제대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자막으로 알려주는 ‘실존 인물, 실화를 근거로 한다.’는 것에 가끔은 현실감을 상실하는 경우가 내겐 아주 흔하기에.

역사책 한구석에 관동대지진의 사실 설명에서 조선인 대학살이란 사실도 크게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 시대를 활자로 읽어가듯 누군가의 삶과 죽음은 지극히 표면적이기도 하다.

역사는 한 장의 사진으로 대신할 수많은 ‘사실’이 죽은 듯 살아있다. 그 사진 이면을 긁어내는 작업은 전문가의 역할을 참고로 결국, 내 상상력이 건네는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 <박 열>

박 열이 1922년 발행했던 잡지 「청년 조선」에 기고한 작품인 ‘개새끼’는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아나키스트가 던진 메시지였다. 아나키스트 박 열을 2017년 세상으로 불러낸 감독은 개새끼로 자조하지 않을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 시대에 개새끼인가?”

아나키스트의 삶을 살고자 했던 시대에 가능했던 연인의 이야기는 현대, 굳이 아나키즘을 인식하지 않아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개인주의로 공동체의 선을 추구하는 가치는 그 시대 아나키스트만큼 지금도 넘쳐 보인다. 지난 쓰레기 같은 정부 덕분에 아나키즘 한 조각을 실천해 부당 권력을 탄핵으로 이끈 대한민국 아닌가.

‘아나키즘은 정당한 국가란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 내의 제도들에 대한 모든 정치적 · 사회적 강제의 폐지를 요구하며, 더 나아가 인간의 인간에 대한 모든 강제적 권위 행사를 부정했다. 따라서 아나키즘이 지향한 사회는 자유로운 개인이 적정 규모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연대하여 점차 큰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데 있었다.’는 사전 참고를 한다면 아나키즘 한 조각 정도는 우리 안에서 작동되어왔다.

이준익 감독 영화『박 열』로 잠시 아나키스트는 키워드로 등장할 수도 있을 테고,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 출연으로 극장가를 찾는 사람도 있겠지.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자’ 라는 유의어로 개념조차 상실한 채 있지만, 다시 멈추어 서서 광장을 바라보게 한다. 어제와는 달리 정부의 필요성에 작은 희망을 품어보게 되니까.

내 시선에서 이 영화는 시대극도 역사극도 제노사이드를 고발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권력으로 속여 말하며 거듭 반복되곤 하던 정치 희생양을 폭로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거대한 국가권력 앞에서 한 개인이 어떤 신념으로 그것과 마주하는가?”

아나키즘으로 동지가 된 두 사람의 삶이 현대를 살아가는 내게 가리키는 것은 ‘사랑’이다. 그들만의 사랑. 타인들은 이해할 수도 느끼기도 힘든 동지애. 단지 서로를 죽음까지도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한 태도.

그들의 동거 서약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들의 신념. 식민지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만나는 분노와 야만성이 지금도 모습을 달리해 일어나고 있기에 영화가 주는 감동은 가슴 깊숙이 누적된 절망과 통증으로 다가온다.

동거서약서

나는 당신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첫째, 우린 동지로서 동거한다.
둘째,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셋째,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공동생활을 그만 둔다.

가네코 후미코의 제안에 불량선인 박열이 손도장을 찍는 모습은 개인이 이루어낸 역사의 한 줄로 다시 드러날 시작이었다.

한국 사회에 깊숙이 박힌 의존성은 여전히 온전하게 독립하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 같다. 부당한 권력이 쌓아놓은 부패와 유산에 신음하며 ‘자기’를 온전하게 자각할 수 없는 현실. 두 주체가 만나 가능했던 역사의 한 장면이 된 흑백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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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대의 민주주의라는 제도에서 그들만의 권력을 연장하려고 똬리를 틀고 있는 정치인. 시대는 변곡점을 돌아온 것 같지만 여차하면 방향을 달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영화 시사회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와서 만난 밤바람과 지친 도시를 가리는 화려한 빛. 한 개인으로 온전하게 살아날 수 없는 시대에서 마지막까지 자기가 추구하는 모습으로 이 땅을 떠날 수 있을까. 문득 너무도 평화롭게 흐르는 가로등과 스치는 바람에 하늘을 본다.

나는 이 하루를 살아가지만, 이 하루는 다시 역사이고 내가 느끼는 현재를 기반으로 또 다른 하루를 위해 무언가를 실천한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오늘의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별 없는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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