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투데이 – 20170716

가족여행 2부

어제에 이어 오늘의 여행기입니다.

정시에 자고 정시에 일어나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었지만,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불안감 때문인지 잠을 제대로 못 잤었나 봅니다. 아니면 다른 이유로라도 피로가 누적되었었는지도 모르죠.

장거리 운전을 하긴 했지만 그래 봐야 200km도 안 되는 거리이고 산행이라봐야 1km 채 안 되는 완만한 산책로를 왕복한 것뿐인데, 평소 자던 내 방도 아니고 남의 집을 방문해서 잠을 자는데 이렇게 길고 깊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운이겠죠.

탱구가 낑낑거려서 한 번 깨고 동이 틀 무렵 살짝 한 번 깬 것을 제외하면 열서너 시간이 넘는 동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기절하듯이 잠을 잤습니다.

느지막하게 일어났더니 그냥 수술 부위에 묵직하게 뻐근한 기본 느낌 이외에는 통증도 하나도 없고 몸도 상쾌하고 정말 천국이 따로 없더군요. 어떤 병증이나 통증, 혹은 아주 짜증 나는 누적된 피로감, 찌뿌둥함 따위의 느낌이 없이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젊어서부터 정말로 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자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상쾌한 아침 기상이라는 것을 잃어버렸었거든요. 그러면 인생이 우울해집니다.

하여간 그렇게 일어나서 탱구를 데리고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씻겨주고 씻고 아침 먹고 하니 벌써 시간이 꽤 지납니다. 지인 댁 가족들이 교회를 가신다고 해서 저희들도 서둘러 짐을 챙겨 다시 길을 떠나는 거죠.

어디로 갈까 하다가 목표를 정합니다. 철원으로 가자.

철원에 가면 고석정이라고 경치가 그림 같은 계곡이 있기도 하지만, 제가 정말 가보고 싶었던 것은 대학 시절에 한 번 얼결에 가보고 계속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도 끝내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철원 노동당사 건물입니다.

가족들은 제가 그냥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철원으로 가자 그러고, 철원을 가니까 그냥 노동당사를 한 번 가 보자고 한 줄 알겠지만 이는 가족여행을 계획하기 이전부터, 아니 병에 걸리기 전부터, 아니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획된 원대한 계획의 일부였다는..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가는 길에 덥고 습하니까 차 밖에 나가길 싫어하는 가족들을 이끌고 고석정 구경도 해 봅니다. 한반도는 참으로 오래된 지형이죠 뭐. 다들 고등학생 때 지구과학 시간에 이 정도는 배우지 않나요? 풉. (비천한 문과꺼뜰…)

<문제의 고석정, 계곡의 형태가 정말 기이하기는 하다. >

그리고 문제의 노동당사입니다.

<은근슬쩍 제 사진도 한장..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철원은 개성보다 훨씬 북쪽입니다. 춘천 소양호보다 훨씬 더 북쪽이죠. 소양호에 보면 38선 마크가 보입니다. 즉, 철원은 38선보다 훨씬 이북이라는 뜻입니다. 즉, 광복 직후 분단된 시점에서 철원은 북한의 영토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철원은 고려가 세워지기 이전 관심법으로 유명한 궁예가 세웠던 태봉(후고구려)의 수도였습니다. 그만큼 평야도 있고 전략적 요충지였거든요. 거기다가 경원선 철도, 서울에서 원산 가는 철도의 통과 도시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휴전선으로 막혀서 의미가 없지만요.

즉 일제 시대의 철원은 서울에서 원산 쪽으로, 또는 금강산 쪽으로 기차를 타고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거점으로 꽤 큰 도시였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노동당사 건물이 지어질 당시만 해도 이 위치는 인구 3만이 거주(요즘에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자는 거죠.)하던 꽤 큰 시가지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한복판에 철원 노동당사가 지어진 겁니다.

시청, 혹은 군청 같은 행정의 중심지였어요. 그러니 당시로는 첨단 건축술인 벽돌 골조에 3층으로 유럽식 디자인을 띠고 만들어진 것이 별로 이상하지도 않죠.

그러나 전쟁이 벌어졌고 양측의 치열한 교전이 있었고, 철원은 휴전선 이남의 도시가 됩니다. 그리고 구 철원 시가지는 완전히 파괴되고 폐허로 바뀝니다. 지금도 가보면 그냥 풀밭에 논밭입니다. 시가지라고는 흔적도 없어요. 그 한가운데 뜬금없이 당사 건물이 떡하니 서 있는 거죠.

역사의 비극입니다. 한 도시가 그냥 날아간 거예요. 그리고 그 흔적에 뼈대만 앙상하게, 전체 3층 골조의 건물이 2층까지만 남아 있게 된 겁니다. 벽마다 총알 자국에, 포탄 자국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우리가 그렇게 쉽게 말하는 역사라는 것이 최소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위에, 나보다 앞서 살다 간 사람들이 피로 적어 내려간 기록이라는 인식이 일 그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건물 앞에서 어떤 감정이 들게 될까요?

먹먹합니다. 그저 먹먹하죠.

그리고 다시 생겨난 새로운 철원은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에, 그야말로 아무 관계도 없이 새롭게 만들어진 시가지로 구성이 됩니다. 우린 그렇게 역사 하나를 완전히 지워 버린 거예요.

철원의 옛 이름은 “쇠둘레”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 묘한 이름이죠.

하여간 그런 철원 노동당사를 구경하고 옥수수 좀 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습하고 덥군요. 중부지방에서는 집중 호우로 물난리도 나는 모양인데 아무쪼록 피해가 적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강원도를 벗어나 경기도권으로 들어오니 없어졌던 통증이 다시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 전형적인 플라시보 효과인 것 같기도 하고..

불순한 날씨에 건강관리 잘 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다음에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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