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거든 광주에 묻어 달라.”     

 

 “내가 죽거든 광주에 묻어 달라.”  

2016년 신문 기사에서 읽었던 한 줄 문장. 일명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며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는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6년 1월 독일 라체부르크에서 투병 끝에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 유품은 2016년 5월 15일 광주 망월동 5 · 18 옛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나는 이 땅에서 살 수가 없었어.” 

1980년 광주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23살 특전사가 남긴 아주 오래 전 한 줄의 고백.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가족에게 남긴 상처와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가슴을 파고든다. 국가폭력에 평생을 떠돌며 방황한 영혼. 나는 그  고통스러운 신음을 기억한다.

1980년 5월을 서울에서 보낸 스무 살에겐 여전히 풀어낼 수 없었던 어둠의 계절로 있다. 영화에서 들리는 익숙한 노래와 1980년 5월 광주를 담은 다른 영상과 책, 사람들 이야기에 늘 떠올리는 물음.

 국가 폭력에 나는 어떻게 대응했던가?     

이십 대는 세상모르고 사는 것으로 나를 지키기에도 너무 힘들었던 달팽이였다. 결혼 후, 내 세계는 작지만 단단해질 수 있었다. 영화 시사회를 마치고 나는 2012년 이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선 결과에 뒤통수를 맞고 고꾸라진 기분. 이게 뭐지? 어떻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거지?

국민과 백성이 뒤얽힌 국가, 재난과 참사에 무능력한 정부, 이제 503호로 익숙해진 현재까지를 복기하고 있다. 스물의 나를 불러내어 그때 누린 나만의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한다.

나를 위한 이십 대를 보내면서 지금 이십 대에 커다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감상 후 추스르게 되는 마음은 공동체이기에 전해지는 슬픈 아픔과 책임감이다. 역사가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의 사명감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 밀알이 꿋꿋하게 비바람을 뚫고 고개를 내밀어 다수에게로 소리를 전하고 응답하는 민중에게는 힘이었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기자로서 지닌 사명감과 일상에서 시작된 택시 운전사와 겹치는 수많은 표정을 가진 얼굴.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개인의 역할에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언제나 그가 지닌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내 삶의 가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 가치에 따라 개인이 결정한 선택은 길 위에 불어오는 바람 같은 거였다. 휘청거리며 살아온 이십 대 자화상을 삶에 어느 순간 마주하면 ‘나’를 있게 한 축적된 시간을 들여다보게 한다.

돌아보니 다행스럽게도 살아있는 동안 내가 서 있는 길은 사람과 함께였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한다. 홀로 걸어왔던 길 위에서 배운 삶을 이제라도 나눌 수 있게 된다면 남아 있는 삶은 덜 무거울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신군부가 저지른 1980년 5월 광주에서 가능했던 야만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명분으로 국가 권력은 일상을 파고들며 삶을 짓눌러 왔다. 과거로 돌아가 역사 한 장면을 기억하는 일. 언제든 다시 함께 걸어가야 할 시간에 ‘우리’가 되어 다시 광장에서 만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개인과 사회, 두 갈등에서 우선될 선택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영화 <택시 운전사>는 보여준다. 다만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는 제대로 알고 있어야 했다. 또각또각 포장된 도로 위를 걸으며 다시, 또 내게 말을 건넨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뭐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