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투데이 – 20170718

무서움에 관하여

 

오늘은 상태가 좀 안 좋군요. 어젯밤부터 계속 통증이 오더니 결국 아침에 눈  밑에부터 퉁퉁 붓고,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간헐적으로 지속됩니다. 이러면 신경이 곤두서 버리죠.

대놓고 심각한 통증이 있으면 그건 나름대로 대처가 가능합니다. 이유가 있는 통증일 것이고, 진통제 처방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이 통증은 내가 겪어 내고 이겨 내야 하는 그런 상대라고 간주를 하게 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찌질한 통증, 찌르르하다가 콕콕 찌르는 느낌, 심하게 땡기는 느낌, 뭐 이런 복합적인 통증이 그것도 비명 소리 나오게 아픈 것도 아닌데 그냥 참아 넘기기에는 애매하고 어금니를 지끈 물게 하고 끙~ 하는 신음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수준이라면 이건 정말 골치 아픕니다.

저는 오히려 의학에서 이런 부분, 환자가 직접 몸으로 겪는 부분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다행히 요즘에는 통증에 대해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과도 생긴 것 같고 통증도 1에서 10까지 나눠 표기하는 표도 있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부족하죠. 똑같이 4 정도의 통증이라 해도 이게 느낌에 따라 종류가 또 다르거든요. 이런 연구를 좀 더 많이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수술부위에 종양이 재발하면서 수시로 이런 미약한 통증이 계속되는데 그게 좋은 징조는 아니라서 마음이 더 무겁고 불편합니다. 강원도 다녀오면서 하루 이틀 통증이 멈춰서 좋아했더니, 이제 또다시 통증이 돌아오자 일단 통증을 참기가 힘들고, 그 통증이 온다는 사실이 또 불길하게 느껴져서 마음까지 무거워지고 그렇습니다.

결국 의사 선생님을 졸라 처방을 받아 뒀던 진통제를 한 알 꺼내 먹고 참아 보기도 합니다. 진통제는 진짜 현대 의학의 승리의 상징이죠. 진통제를 먹으면 그래도 통증이 귀신같이 가라앉으니까요. 나중에 진짜 심한 통증이 오면 그건 진통제도 소용이 없다고 하던데, 그런 것은 또 그때 가서 고민하기로 하죠. 무조건 의지로 낙관하자니까요.

통증이 심해지면 좋은 일도 있습니다. 그냥 하루빨리 수술 날이 다가오길 바라게 되거든요. 통증이 없고 그러면 수술이 무서워서 자꾸 반대로 생각하게 되는데.. 참 아기 같은 생각이죠.

말 나온 김에 제가 “무섭다”라는 표현을 썼더니, 그 점에 대해 피드백이 들어오더군요. 제가 가진 이미지가 대략 “무섭다”라는 단어와는 잘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 오십의 아저씨에 정치 평론을 할 때면 사람들 막 욕하고 악플 달리면 막 싸우고 그러는 이미지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무섭습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부모님이나 가까운 어르신이 환자인 경우가 꽤 많아 보입니다. 그분들, 제가 장담하는데 단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무서워하십니다. 저도 어머님을 암, 그것도 가장 아프고 힘들다는 췌장암으로 보내드린 경험이 있는데요. 아닌 척하면서도 엄청나게 무서워하셨습니다. 무서운 건 무서운 겁니다. 무서운데 아닌 척할 이유도 없어요.

나이 먹은 사람이라고 안 무서운 거 아니고 평소에 막 소리 지르고 싸움 잘하는 난폭한 성격의 사람이라 해도 무서운 것은 무섭습니다. 자기 몸에 병이 있고 그 병이 통증을 유발하고 나아가 잘못되면 자신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는 상상, 이 상상 앞에서 안 무서운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는 오히려 내가 무서운데 안 무서운 척하는 행동이 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호소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를 부탁해야죠. 항우, 장비라고 안 무섭겠습니까?

정말로 무섭습니다. 얼마나 무섭냐면 자다가 문득 겁이 나서 깰 정도로 무섭습니다. 등골이 써늘하고 팔뚝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습니다. 이번에는 못 일어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섭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쯤에서 다 소진되어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제일 무섭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남겨야 할지, 내가 추하지 않고 품위 있게 의연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을 자신도 별로 없고 모든 게 걱정이 되면서 무섭기만 합니다.

이 무서움, 두려움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무서운 일이죠. 친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왜냐면 이런 종류의 감정을 겪어 보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세상에 한 번 죽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런 상황이 오면 종교에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각 종교는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는 신도들에 대한 대처 방안이 오랜 시간 동안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져 전승되어 내려오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종교도 없어요..

만약에, 제가 이번 수술을 잘 받고 정말 운 좋게도 완쾌가 되어 다시 뭔가를 할 시간이 약간이나마 주어진다면, 이런 무서움을 겪고 계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저 같은 상황에 빠져 있는 분들 말입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과연 어떤 말이나 글이 그런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지, 그게 어떤 식으로라도 힘이 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일인지 모르겠네요.

그냥 그런 무서움을 느껴본 사람이 당신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만 전달이 되어도, 즉 내가 이 세상에서 혼자는 아니라는 느낌만 줄 수 있어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쉬운 일은 아니겠죠.

하여간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움에 눌려 쓰러져 있을 생각은 없어요. 진정한 용기는 무서움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엄청난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싸워 이기고 일어섰을 때 발휘되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생각입니다.

글 내용이 좀 우울해진 것 같습니다. 통증이 심해지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니까요~

다음에 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1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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