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에 관하여
오늘은 상태가 좀 안 좋군요. 어젯밤부터 계속 통증이 오더니 결국 아침에 눈 밑에부터 퉁퉁 붓고,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간헐적으로 지속됩니다. 이러면 신경이 곤두서 버리죠.
대놓고 심각한 통증이 있으면 그건 나름대로 대처가 가능합니다. 이유가 있는 통증일 것이고, 진통제 처방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이 통증은 내가 겪어 내고 이겨 내야 하는 그런 상대라고 간주를 하게 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찌질한 통증, 찌르르하다가 콕콕 찌르는 느낌, 심하게 땡기는 느낌, 뭐 이런 복합적인 통증이 그것도 비명 소리 나오게 아픈 것도 아닌데 그냥 참아 넘기기에는 애매하고 어금니를 지끈 물게 하고 끙~ 하는 신음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수준이라면 이건 정말 골치 아픕니다.
저는 오히려 의학에서 이런 부분, 환자가 직접 몸으로 겪는 부분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다행히 요즘에는 통증에 대해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과도 생긴 것 같고 통증도 1에서 10까지 나눠 표기하는 표도 있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부족하죠. 똑같이 4 정도의 통증이라 해도 이게 느낌에 따라 종류가 또 다르거든요. 이런 연구를 좀 더 많이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수술부위에 종양이 재발하면서 수시로 이런 미약한 통증이 계속되는데 그게 좋은 징조는 아니라서 마음이 더 무겁고 불편합니다. 강원도 다녀오면서 하루 이틀 통증이 멈춰서 좋아했더니, 이제 또다시 통증이 돌아오자 일단 통증을 참기가 힘들고, 그 통증이 온다는 사실이 또 불길하게 느껴져서 마음까지 무거워지고 그렇습니다.
결국 의사 선생님을 졸라 처방을 받아 뒀던 진통제를 한 알 꺼내 먹고 참아 보기도 합니다. 진통제는 진짜 현대 의학의 승리의 상징이죠. 진통제를 먹으면 그래도 통증이 귀신같이 가라앉으니까요. 나중에 진짜 심한 통증이 오면 그건 진통제도 소용이 없다고 하던데, 그런 것은 또 그때 가서 고민하기로 하죠. 무조건 의지로 낙관하자니까요.
통증이 심해지면 좋은 일도 있습니다. 그냥 하루빨리 수술 날이 다가오길 바라게 되거든요. 통증이 없고 그러면 수술이 무서워서 자꾸 반대로 생각하게 되는데.. 참 아기 같은 생각이죠.
말 나온 김에 제가 “무섭다”라는 표현을 썼더니, 그 점에 대해 피드백이 들어오더군요. 제가 가진 이미지가 대략 “무섭다”라는 단어와는 잘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 오십의 아저씨에 정치 평론을 할 때면 사람들 막 욕하고 악플 달리면 막 싸우고 그러는 이미지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무섭습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부모님이나 가까운 어르신이 환자인 경우가 꽤 많아 보입니다. 그분들, 제가 장담하는데 단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무서워하십니다. 저도 어머님을 암, 그것도 가장 아프고 힘들다는 췌장암으로 보내드린 경험이 있는데요. 아닌 척하면서도 엄청나게 무서워하셨습니다. 무서운 건 무서운 겁니다. 무서운데 아닌 척할 이유도 없어요.
나이 먹은 사람이라고 안 무서운 거 아니고 평소에 막 소리 지르고 싸움 잘하는 난폭한 성격의 사람이라 해도 무서운 것은 무섭습니다. 자기 몸에 병이 있고 그 병이 통증을 유발하고 나아가 잘못되면 자신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는 상상, 이 상상 앞에서 안 무서운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는 오히려 내가 무서운데 안 무서운 척하는 행동이 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호소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를 부탁해야죠. 항우, 장비라고 안 무섭겠습니까?
정말로 무섭습니다. 얼마나 무섭냐면 자다가 문득 겁이 나서 깰 정도로 무섭습니다. 등골이 써늘하고 팔뚝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습니다. 이번에는 못 일어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섭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쯤에서 다 소진되어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제일 무섭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남겨야 할지, 내가 추하지 않고 품위 있게 의연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을 자신도 별로 없고 모든 게 걱정이 되면서 무섭기만 합니다.
이 무서움, 두려움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무서운 일이죠. 친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왜냐면 이런 종류의 감정을 겪어 보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세상에 한 번 죽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런 상황이 오면 종교에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각 종교는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는 신도들에 대한 대처 방안이 오랜 시간 동안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져 전승되어 내려오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종교도 없어요..
만약에, 제가 이번 수술을 잘 받고 정말 운 좋게도 완쾌가 되어 다시 뭔가를 할 시간이 약간이나마 주어진다면, 이런 무서움을 겪고 계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저 같은 상황에 빠져 있는 분들 말입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과연 어떤 말이나 글이 그런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지, 그게 어떤 식으로라도 힘이 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일인지 모르겠네요.
그냥 그런 무서움을 느껴본 사람이 당신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만 전달이 되어도, 즉 내가 이 세상에서 혼자는 아니라는 느낌만 줄 수 있어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쉬운 일은 아니겠죠.
하여간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움에 눌려 쓰러져 있을 생각은 없어요. 진정한 용기는 무서움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엄청난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싸워 이기고 일어섰을 때 발휘되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생각입니다.
글 내용이 좀 우울해진 것 같습니다. 통증이 심해지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니까요~
다음에 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1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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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합니다 힘내세요 ..!!!! 물뚝님 완쾌하셔서 말씀하신 컨텐츠 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글을 읽으며 자꾸 눈물이 나려합니다
무섭다고 자꾸되내이시니
그저 수술이 잘되기만을 바랍니다.
물뚝님의 글과 말에 빚진 팬입니다. 낙관을 잃지마시고 두려움에 지지 안으셨으면 합니다. 화이팅!!!
힘내세요. 정말…
물뚝님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