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투데이 – 20170719

자책에 관하여

 

처음 암 확진을 받을 때부터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도대체 내가 왜? 왜 나에게? 내가 뭘 잘못해서?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죠. 왜 나한테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이 생기는가, 내가 뭔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건가, 아니면 내가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다거나 오염된 환경을 모르고 겪어 버리면서 암에 걸리게 되었나, 그렇다면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인가, 뭐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생각을 온전히 사로잡아 버려서 다른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한 번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그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죠.

암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암 발생자 숫자는 약 20만 명 정도 됩니다. 10만 명당 비율로 보면 405명 정도. 즉 0.405%입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무시해도 좋은 낮은 확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년만 살고 마는 게 아니죠. 매년 암환자는 저만큼씩 생겨나고, 암에 걸릴 확률은 누적됩니다. 만약 70년을 살아왔다면? 이제 그 확률은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지죠.

한 사람이 그 사회의 평균수명까지 살면서 암에 걸릴 확률은? 미국이나 우리나 이 기준으로 계산을 하고 통계를 낸다고 합니다. 그 확률은 굉장히 높습니다. 무려 36%, 1/3이 넘는 확률입니다. 70살까지 살았다면 셋 중의 한 명이 암에 걸린다는 얘기가 됩니다. 정말 무서운 숫자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 역시 계산에 의한 숫자일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평균 수명까지 살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30대나 40대의 경우는 이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당연하죠. 암은 평생에 걸쳐 골고루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노년층에게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하니까요. 보통 이렇게 높은 확률을 들이대면서 셋 중의 한 명은 암에 걸린다고 협박 비슷하게 홍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암 관련 보험업자거나, 건강식품 판매자들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인 생각들은 막상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 아무런 도움이 못 됩니다.

‘그래, 내가 암에 걸릴 확률은 몇 퍼센트였군, 알겠는데 내가 왜 거기에 포함되어야 하는 거지? 아닌 쪽에 포함될 가능성이 훨씬 높잖아.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라는 생각이 남게 되죠.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담당 의사 선생님께, 무려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분께 여쭤봅니다.

“교수님, 제가 이 암에 걸린 이유가 뭡니까?”

교수님의 답변은 예상 밖으로 아주 간단 명쾌했습니다.

“암은 랜덤입니다.”

뭔가 찌르르하게 다가오는 답변이었지만 그래도 약간 저항을 해 봅니다.

“아니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구강암이니까 제가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렇다거나..”

“물론 통계적으로 흡연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암 발병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만, 아직 의학은 흡연과 암 발병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봐야죠.”

“그럼 제 잘못이 아닌 겁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런 마음 갖지 마세요.”

뭔가 죄를 사해 주는 그런 느낌이 순간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구나, 다만 그냥 그냥 운이 없을 뿐이었어, 라는 느낌인 거죠.

물론 내가 만약 담배를 안 피웠더라면, 더 일찍부터 체중관리를 잘하고 건강관리, 치아 건강관리 등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좀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좀 더 청결하게 생활을 하고 그랬더라면, 술 끊고 매일 운동하고 그렇게 살았더라면 암에 걸릴 확률은 현저히 더 줄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죠. 이거 제 잘못 아닌가요? 과거의 나는 왜 조금 더 제대로 살지 못했는가, 하는 자책이 들기도 합니다.

또, 아무리 랜덤으로 운이 나빠서, 뽑기를 잘못해서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이 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들에 대한 내 의무, 또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의무를 다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으니, 그게 내 죄의 시작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차라리 내가 뭘 잘못해서 이 몹쓸 병에 걸렸다고 생각이 되면 그게 더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냥 운이라니, 그냥 뽑기를 잘못한 거라니, 더 억울하죠. 그럼 난 잘못한 것도 없이 이런 병에 걸렸다고?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신에게 항의라도 하고 싶어 집니다.

차라리 무슨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연쇄살인을 했거나 대규모 사기를 쳐서 수천 명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하는 죄를 지어서 그 대가로 병에 걸렸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좀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떠오릅니다.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모든 환자들, 또 병이 아니라 사고를 당하신 분들도 다 이런 생각 하실 겁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분들도 마찬가지겠죠.

도대체 왜 나에게?

진짜로 풀기 힘들고 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잠이 안 올 정도로 고민이 되고, 그렇게 밤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고민을 해 봐도 답이 안 떠오릅니다.

그러나 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답을 알면서도 인정하기가 싫은 것뿐이죠.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제가 자주 해주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거죠. 그러면 십중 팔구는 그럴 기회만 있으면 더 잘할 거 같다고 답변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을 하거든요.

그럴 때 저는 이야기해 줍니다. 과거에 당신이 했던 모든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의 당신을 만든 거라고. 과거의 당신은 그 순간에 당신이 할 수 있던 최선을 다한 거라고. 만약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당신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서 뭔가를 바꾸어 버린다면, 그렇게 바뀐 오늘의 당신은 아마 당신이 아니게 될 거라고 말입니다.

제가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저에게 조언을 구하던 그 후배들과 정확하게 똑같은 이유에서인 겁니다. 저는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려야 하냐고 울부짖으면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바꿔 이런 병에 안 걸리게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는 거죠. 그냥 이런 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 현실이 싫을 뿐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도피하려고 하는 거죠.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은 바로 과거의 내가 했던 모든 선택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오늘의 결과이자 현실일 뿐입니다.

가장 현명한 행동이라면 이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다시 쌓아가는 것뿐입니다. 그게 가족을 위해, 친지들을 위해,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아는 모든 분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저 자신을 위해 가장 충실한 행동이 되겠죠.

그런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은 계속됩니다. 사람이기 때문이죠. 무섭고 외롭고 두렵고, 그러면서 동시에 이 현실이 내 현실 같지가 않고 인정이 안되고..

그나마 이런 고민을 접을 수 있게 완치를 향해 나아가는 줄 알고 마음을 놓고 있다가 다시 재발 판정을 받게 되니 이런 고민이 다시 스무 배의 무게로 저를 짓눌러 오고 있습니다. 힘드네요.

다음에는 좀 밝은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읽어도 너무 어둡군요.

2017. 7. 19.







3 thoughts on “낫투데이 – 20170719

  1. 어두운 글이 나쁜글은 아닙니다만 창작물에는 창작자의 기분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물뚝님께서 계속 어두운채로 지내시는건 바라지 않습니다.
    참 작고 가벼운 “댓글”이란 형태로 응원하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물뚝님께 닿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아무쪼록 수술 준비 잘 하시기 바랍니다.

  2. 아프신 분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하겠지요. 쓰시는
    글은 자주 보고 있습니다.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3. 20여 년전에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도 힘드셨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도 많이 힘들더군요. 암 투병 동안 아버지는 많이 힘들어하셨지만, 가끔은 가족에게 웃음을 보여주고, 농담도 하셨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부디 수술이 성공해서 가족에게 큰 웃움을 보여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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