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투데이 – 20170722

잃어버리는 것들

어제는 낫투데이도 못 썼습니다. 근래 들어 컨디션이 가장 나빴던 날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도 짧은 글 한편을 못 쓸 정도로 나쁜 상태는 아니었는데 컨디션이 나빠지니까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글을 쓸 기분이 아니었다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좀 나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쓰고 있는 거겠죠.

굳이 수치로 적어 보자면 3:7 정도? 육체적 컨디션의 문제가 3, 정신적인 문제가 7 정도였겠죠.

저는 일관성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이것만큼은 내가 꼭 지키겠다는 원칙 몇 개는 가지고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심오하고 추상적인 원칙도 있겠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거나, 매일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원칙도 중요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평생을 살면서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해서 동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는 엠마누엘 칸트 같은 사람은 약간 병적인 경우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얘기를 들으면 뭔가 멋지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걸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제가 그러질 못하기 때문이죠.

저는 매우 변덕이 심합니다. 어떤 일에 꽂혀도 금방 싫증을 내고, 단순 반복 작업은 정말 싫어합니다. 계속 뭔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찾아다닙니다. 어찌 보면 그게 제 일관성일 수도 있겠죠. 그런 면에서 매일 한 편씩 일기 같은 글을 쓴다는 것은 제 습성에 안 맞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쓸 때 까지는 써 볼 생각입니다. 다른 할 일도 없는데요 뭐.

그리고 사실 무관심한 척을 하고 있어도 여러분들이 달아 주시는 힘내라는 댓글을 읽어 보면서 실제로 힘을 좀 받고 있거든요. 그거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이 이렇게 내 생각을 해 주고 있다는 느낌은 큰 힘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부정하기 힘들죠. 그런 뜻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드리려고 한 얘기는 바로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해서입니다. 암이라는 병은 치명적입니다. 치명적이라는 말은 생명을 위협한다는 뜻이죠. 암, 즉 악성종양이 성장하게 되면 정상 조직을 침해해서 생체 기능을 마비시키고 그렇게 되면 환자는 죽습니다. 암이라는 병명은 진단 즉시 환자에게 죽음을 연상시키는 무서운 병이라는 얘기죠.

즉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내가 잃어버리게 되는 것들은 바로 내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내 생명과 바꾼 것들이 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위암에 걸린 분들은 위장을 잘라내고 대장암에 걸린 분들은 대장을 잘라 냅니다. 저는 구강암에 걸렸고 상악골을 잘라 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죠. 치아와 잇몸, 입천장을 잃어버린 얘기는 이미 했고, 많은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빨대로 액체를 빨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기능은 입안에 음압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구강과 비강이 서로 통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음압을 만들지 못하죠. 아마 평생 다시는 빨대로 음료를 마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덩달아 스노클링이 필요한 스킨 다이빙이나 스쿠버 다이빙 같은 것들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무척 좋아하는 취미였는데..

물론 먹고 마시고 씹는 기능이 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부분도 있죠.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나마 대체가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걱정했던 것은 음성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정상적으로 발성을 하며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부분이었죠. 다행스럽게도 복구했습니다. 구강과 비강이 통해있는 탓에 발음이 새긴 하지만 연습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었고 아주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잘 모르는 수준까지 복구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수술을 해야 된다는 거죠. 그거 참..

또 있습니다. 처음 수술할 당시, 의사 선생님은 제가 오른쪽 안구, 즉 눈동자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안구에까지 암이 퍼져서 그런 게 아니라 안구를 지지하고 있는 뼈와 근육의 구조에 문제가 생기면 안구를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다행히 이번 재수술에도 안구 제거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죠.

암 치료를 위해 안구를 제거한다… 말은 쉽죠. 그거 결정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을 감내할 것인가를 재 보는 저울의 반대쪽에는 생명이라는 추가 올라가 있다는 겁니다. 그 생각을 해 본다면 지금 안구가 문제입니까? 얼굴 반쪽을 날리는 한이 있어도 해야죠.

외모는 어떨까요? 오른쪽 상악골을 제거하는 규모에 따라 외모상 광대뼈 부위가 함몰하게 될 겁니다. 1차 수술 때에는 거의 함몰이 없었지만,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멜라닌 색소가 심하게 모여서 얼굴색이 시커멓게 변했었죠. 이번에는 약간의 함몰이 외부에서 보이게 될 거라고 합니다.

뭐 할 수 없죠. 50년간을 잘생김과 함께 살아왔으니 이제 앞으로 50년은 잘생김을 좀 내려놓고 사는 게 사회적 형평성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저는 환자라서 까방권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길..)

실제로 병원에서 외래로 진찰받고 하는 과정에서 저와 유사한 수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나이 든 여성분을 만났었습니다. 그분은 한쪽 안구도 제거하셨고, 얼굴 한쪽이 전반적으로 함몰되는 상황까지 가셨더군요. 그분을 보면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습니다. 나도 저렇게까지 가더라도 치료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오히려 종양이 상악골에서 위로 자라고 있으니, 구강 쪽 기능은 더 이상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건 행운이죠. 뭐 최소한 먹고 마시고 말하는 기능만 살아 있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생명은 그만큼 소중합니다. 그거 누구나 다 알죠. 그러나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자꾸 하나둘씩 잃어버리게 되는 것,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입니다. 유쾌하다니요. 아주 끔찍하고 참담한 일이죠.

이런 상황에까지 오자, 애초부터 남들이 다 가진 뭔가를 잃어버리고, 아니 처음부터 아예 받지를 못하고 평생을 살아가시는 분들에 대한 경외심이 들기까지 합니다.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불편할까. 정말로 사람은 말로야 다 이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해하려면 자신이 직접 겪어 봐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해한다는 말, 저는 못 믿게 되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당해보면 진짜로 뭔가 다르거든요.

이번에 수술을 하게 되면, 뭔가를 얼마나 더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무엇을 잃어버려도 좋으니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다 쓸 수 있도록 생명을 돌려 달라는 것.

그거 하나만 보고 앞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2017. 7. 22.







13 thoughts on “낫투데이 – 20170722

  1. 물뚝님의 글과 방송을 좋아하는 팬입니다.
    힘드신 중에 경험을 나누는 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군요.
    꼭 건강을 회복하셔서 오래도록 글과 방송을 나눠 주세요. 응원합니다.

  2. 안녕하세요. 달리 메세지를 드릴 경로가 없어 이렇게 인사 드립니다. 그 옛날 서프라이즈에서 시작하여 딴지에서도 뵈었던 것 같고 본격적으로 (일방적) 친분;;이 생긴건 그알싫의 왕좌의 게임 시리즈였던 것 같습니다. 그후로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배우고 재밌어 했고요. 가만히 드러누워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이야기 듣고 있는거 즐겁고 좋습니다.

    근황을 읽은 이후로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지고 가야 할 각자의 몫 같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해요. 제가 기도빨이 좀 영험합니다. 얼마나 영험한지 평소엔 기도같은거 못하고 삽니다만… 종교가 있는건 아니고 그냥 DIY 신앙인데요. 아무튼 치료하시는데 있어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시기를, 물뚝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다치시기를 바랍니다.

    쓰고보니 별 메세지도 아닌걸 어디다 써야하나 고민만 며칠을 했네요. 그냥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3. 유쾌하시고 재미있으신 물뚝님, 수술 잘돼서 완치 되시길 기도할게요. 늘 감사한 마음으로 글과 방송을 접했는데, 댓글로라도 힘을 드리고 싶어요.
    힘내시고요, 쾌유를 응원합니다♡

  4. 무슨말을 해도 별 위로가 안된다는걸 알기에, 그냥 마음이 아프다. ㅠㅠ
    누구나 언젠가는 저 우주 너머의 먼지로 돌아간다는걸 알지만 실감하지 못하고, 아직 난 쌩쌩하다는 믿을 수 없는 빽을 가지고 까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 되겠지 뭐.
    재사다병.
    미인박명.
    넌 미인이 아니니 첫 구절에 해당되고.
    조상님들 말 중에 틀린거 없더라. ^^

    또 보자.

    병곤.

  5. 눈으로만 보고 있다가 힘이 될까 싶어 글 남깁니다.
    제 정치적 소신이 한 쪽으로 기울지 않게 도움을 주시는 분 중에 한 분이세요.
    물뚝님을 알게 된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최근 팟캐스트도 트위터도 잘 안하게 되서, 아프시다는것을 안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잘 이겨내셔서 물뚝님의 글을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잠에 들기 전 물뚝님을 위해서 기도 드리겠습이다.
    응원하겠습니다. 힘내 주세요!!

  6. 후… 심슨은 안죽어요
    물뚝심슨님이 호머심슨 케릭터를 쓸 때부터
    딱 예정된 일이에요
    위에 기도해 주시는 분 너무 감사드려요

  7. 월남전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나중에 구출된 병사의 실화인데요.
    그렇게 죽을만큼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힘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그런 생각을 밀어내고
    미국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푸른 잔디위에서 골프를 치는 상상을 매일 하면서 견디어냈다고 합니다.
    이 병사가 정말 구출되고 나서 몇년동안 상상으로 골프를 많이 친 덕분에 실제로 골프를 잘 치게 되었다고해요.
    아무리 과학을 열심히 연구해도 인간의 정신력은 무한하고, 설명하기 힘들죠.
    지금 많이 힘들고, 때로는 지치기도하겠지만, 잘 견디어내실겁니다.
    예전 황토방에서, 약간은 거만했고, 약간은 두렵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깊었던분으로 기억합니다.
    뛰어난 글솜씨, 방대한 지식, 그리고, 당당함, 재치가 매우 부러웠던 사람입니다.
    지금 잠시 어렵지만, 그모습으로 곧 돌아오리라 믿어요.
    어느 영화에서 너무 깊어서 끝이보이지않는 절벽과 절벽을
    작은 돌기둥을 하나하나씩 밟아가면서 천길낭떠러지를 건너는 장면이 있었어요.
    저도 한때는 내 삶이 그렇다고 생각한적있어요. 하루 하루가 조심스럽고, 긴장됐고, 불안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날 커피한잔마시면서 바라보는 낙엽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잎과 회색빛하늘이
    왜 그렇게 내눈에는 눈물이 날정도로, 아름다운지..
    아주 작은것에도 감사하고 무조건 많이 웃고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오래 못가죠.
    그냥 곧 예전으로, 사람은 잘 변하지않으니까요.
    고행길 지나고 나면, 어느덧 예전 그때로 돌아가 있으실겁니다.
    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움추려들지말고, 힘내세요. 잘될꺼니까……

  8. 마물극장에서 소개된 영화들을 다시 봤어요.
    요새 그 즐거움이 컸는데…
    인지하지 못했던 장면들,
    마물극장에서 설명해주신 디테일들 살펴보는 재미들.
    이번 여름휴가는 그렇게 흘러간 영화 보며 보내려던 제 계획이 어긋났네요.
    빨리 완쾌되어서 돌아오세요.

  9. 물뚝님 글을 낫투데이부터 접한 뒤늦은 독자인데 응원하는 마음 전하고 싶네요. 기운 잃지 마시고 물뚝님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억하며 계속 뚜벅뚜벅 걸어가 주세요. 저도 계속 물뚝님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10. 물뚝심송님을 안알남 팟캐스트 방송 게스트로 나오셨을때에야 처음 알게 된 더 뒤늦은 청취자 입니다.
    그러다가 마물극장을 들으면서 썩개의 팬이 되었어요. 많던 에피소드들을 싹 다 정주행하고 마물극장 업데이트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수술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응원의 메세지 남기고 싶어서 들렀습니다.
    수술 잘 이겨내시고 얼른 돌아와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생김을 좀 내려놓게 되시더라도 그냥 쭉 팬 할게요!! 곧 다시 뵙게 될 날을 진심으로 기다리겠습니다.

  11. 얼른 쾌차하셔요. 담담히 써내려가셨지만 고통이 느껴집니다. 재수술 잘 되셔서 좋은 글, 좋은 말 계속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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