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을 보내며…

 

2018년 대학 임용 채용 공고가 나왔던 날이다. 한밤중. 대학을 다니고 있는 올해 졸업생. 성난 음성이 날카롭다. 문재인 정부가 교육 부분만큼은 잘못하는 것 같다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니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기간제 교원이 포함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임용 준비로 보낸 그 암울하고 폐인처럼 지내야 하는 투명인간의 시간을 견디는 이유는 정규직을 위한 몸부림이란 이야기다. 그런 과정을 건너뛴 채 임시직을 선택한 그들의 정규직 전환은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 후 발표된 올해 자기 전공 임용은 달랑 1명이라는 그의 말에 절망감이 번진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간제 교원은 임용을 치르지 않고 대학에서 교원자격증만으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비정규직 기간제 교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덕분에 그나마 적은 숫자였던 채용 인원이 단 1명이 되었다며 금방이라도 통곡할 것 같은 목소리는 참으로 듣고 있는 내 가슴마저 아프게 한다.

평소 낙관주의와 긍정을 내세우며 현재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길이 열리더라고 말했던 나는 참으로 민망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그 자신도 갑자기 방향을 잃은 새처럼 추락 직전이다.

그는 밥 빌어먹을 학과지만 그래도 소신 지원을 한 철학을 전공하고 결국은 밥 벌어먹기 위해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교사로 직업을 선택했다. 그에 따른 공부가 계속되어 또래보다 훌쩍 대학 재학 기간이 길어져 그의 졸업은 내년이다.

대학 졸업 후 인문학을 전공하고 취직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상대적으로 로또 당첨 확률 정도의 길인 것을 알면서도 남은 이십 대 임용 준비에 전력한다. 그렇게 임용을 계획하면 1년은 기본이고 2년은 가능성이 보이고 3년은 해야 얻을까 말까 한 확률이라고 한다.

만약 정부의 채용 계획이 이렇게 계속된다면 임용에 목숨 걸기가 두렵다는 그에게 나는 차마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그만의 고뇌일까. 대학 졸업을 앞두고 현실 앞에서 그들이 추구한 이상 따위는 길 위에 내팽개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인원을 많이 채용하는 학과를 다시 복수 전공해야 하는 건가 하면서 대학원 과정을 언급하는 그의 말에 그것도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말하는 나는 다시 부질없는 희망을 말하고 있는 걸지 모른다. 그러면서 겨우 그날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호기심으로 마련해 둔 대통령이 휴가 중 읽었다는 책을 뒤적거렸다. 혹시라도 그 책에서 내가 알 수 없는 미래를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심정이었다.

『명견만리』 세 권 중 윤리, 기술, 중국, 교육 편을 꺼내 읽었다. 내게도 긴 밤이었지만 그의 밤은 어찌 지났을까. 마침 그에게 적절할 것 같은 문장을 발견하고 아침이 되자 바로 그 문장을 보내주었다.

3-5-19

이 숫자들은 앞으로 미래 세대가 살아가게 될 방식을 말해준다. 미래 세대는 일생 3개 이상의 영역에서 5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19개 이상의 서로 다른 직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래학자들은 단 한 개의 직업으로 평생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간다고 말한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고작 몇 줄 문장으로 그의 마음이 편안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한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거대한 장벽 앞에 선 채 황망하다.

그는 또 자신을 뒤흔드는 미래에 불안과 두려움으로 맞는 아침이 되었나 보다. 그는 이렇게 준비하다 내 인생이 끝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봐 이제는 공포감마저 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향유가 된, 아무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시간으로 훌쩍 넘은 내 자리를 생각해냈다.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를 곱씹으며 여전히 개인의 선택을 말할 수밖에 없는 그에게는 아직도 먼 이야기를 꺼낸다. 부모에게 의지할 수 없는 현실의 절박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주거 안정, 불안하지 않은 일상을 위한 정규직을 원하는 그에게 나도 이 세계도 해줄 것이 없었다.

이토록 뒤틀린 청춘, 아무런 대안도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현실감. 대안을 찾아가는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그는 주체적이며 독립성을 갖춘 20대를 보내왔다. 대학에서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교수가 원하는 답안을 작성하며 자신의 견해를 뒤로하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어차피 대학 교육은 취업을 위한 통로일 뿐이지 학문 탐구와 사회지식인으로 인식될 비판적 시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스펙의 한 줄일 뿐 그것에 포함될 넘치는 문장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치열한 경쟁을 답보로 젊은이들을 줄 세우기. 망각하면서 부정했던 현실에서 그저 개인의 당당함만을 외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은 아니었나. 이제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계절이 무심하게 흘러 찬바람이 불면 그는 다시 캠퍼스를 우쩍우쩍 걸으며 대학에서 가장 높이 있다는 인문대를 향해 빠른 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의 뒷모습을 좇으며 힘내라는 말조차 건네기가 미안하다. 이제라도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자신을 스스로 믿어주는 일, 놔버리지 말라고 하며 숨을 크게 내쉰다.

어느 곳 하나 제대로 뚫리지 않은 길 위에 서면 삶은 왜 이리 지지리도 나를 궁색한 마음으로 몰아갈까.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이 사회에서 한 움큼 쥘 행복은 언제나 잠시 머물곤 하던 불어오는 바람 같은 거였나 보다. 가끔은 그 바람결에서 사람과 한 송이 꽃이 주는 향기로움에 취했던 마음을 기억해 본다.

다시 오늘 또 시작할 수 있는 내 안에 담아놓은 힘, 사랑을 불러낸다.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바람에 싣고 그와 나눌 어느 날, 향기로운 커피 한 잔과 작은 평온을 나누고 싶은 간절함으로 내일 또다시 떠오르는 태양에 그의 희망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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