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여름이 한풀 꺾였다. 9월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하려니 어색할 지경이다. 몇년동안 계절이 여름과 겨울밖에 없는것같다고 했었는데, 바람은 죽어라 안통하는 옥탑방에도 선선한 바람이 들어올 정도라면 꺾였다고 해도 되겠지.

 

작년 여름은 선풍기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에어컨을 샀었다. 백수일때 사서 큰맘먹고 사야했는데, 기껏 취업을 했다가 에어컨을 써야할 올 여름엔 도로 백수가 되서 또 큰맘먹고 켜야했다. 에어컨 가격보다 무서운게 전기요금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옥탑방 온도는 36도까지 올라갔고, 무엇보다 습도가 높아서 찜통이 됐다.

 

선풍기를 세게 틀고, 머리를 짧게 깎아도 도저히 견딜수 없다 싶을때 에어컨을 켰는데, 또 한번 내가 별천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더위나 추위에 유독 둔감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온도는 32도 정도였다. 그정도까지만 내려도 시원하니까. 하지만 에어컨 온도 조절은 30도가 최대 온도였다.

 

물론 사람들은 대체로 옷을 입고 살고, 혼자사는 아재인 나는 헐벗고 다닌다. 습도 높은 한국에서 30도 이상의 온도가 시원하다고 느낄 상황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30도 냉방도 과했다. 내가 비싼 전기요금을 내 가며 30도까지 온도를 낮출 필요는 없었단말이다.

 

내가 사는 꼴 자체가 늘 이모양이다. 뭐 하나 세상과 맞아떨어지는 법이 없어서 항상 삐걱거린다. 시대를 담아냈다는 응답하라 시리즈에도 나같은 게임덕후의 일상은 없고, 덕질만으로는 밥벌어 먹고 살 수도 없다. 떼돈 벌 생각도 없으니 8시간 일하고, 8시간 즐기고, 8시간 쉬고,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좀 쉬겠다는데 그렇게 내버려두는 직장은 아르바이트뿐인듯하다. 아, 아르바이트는 공휴일을 쉬는 경우가 별로 없지.

 

나이는 계속 먹어가고, 컨텐츠나 지식을 소화하는 능력은 계속 떨어진다. 남성판 갱년기라던가. 혼자 막 감동받고 칭얼거리는 때가 늘어가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게 민폐가 될 때가 늘고있다.

 

모두에게 들어맞는 표준 인생 사이클이 있는게 아니라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비슷하게라도 따라갈 지침조차 안보이는 것이 너무 캄캄하고 막막하다. 젊을때는 패기, 늙어서는 지혜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패기는 진작에 쏟아져버렸고 지혜는 쌓일 가망이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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