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망각의 역사

 

‘실제 역사적 사실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음’ 시작을 알리면서 자막이 뜬다. 영화는 허구다. 영화는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없다. 사실은 적당한 수준을 노출하고 문제의식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영화 상영 후 12년 한국사 교과 과정에서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던 역사에 이목이 집중된다. 영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기에 진실 공방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 시작부터 창작물임을 밝힌다. 역사를 다시 재조명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 영화는 충분하다. 2017년 3월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출간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는 일제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은 과거사로 묻혀 지금도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 해명하고, 과거 청산 운동을 통해 정의 실현을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이 있을 뿐이다. 국가 차원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민간연구소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다.

 

일제가 조선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동원한 이유는 장기화되던 중일전쟁 때문이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으로 눈을 돌려 “일본에 가서 일을 하면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로 조선인들을 유혹했다.

 

반신반의한 조선인들이 응모자가 많지 않자 강제모집에 나섰고 면서기와 순사들을 대동하고 나섰다. 그래도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1944년 2월 일제는 조선에도 강제동원령을 「국민징용령」을 적용했다. 할당된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어린 아이까지도 무차별 강제징용 대상이었다.

 

강제징용에는 일제에 협력하여 부를 쌓은 조선인 역할을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은 현재까지 민족을 거들먹거리며 잘 먹고 잘 살아온 권력 부역자들이다. 자본 축적으로 여전히 국민을 우롱하며 왕성하게 정치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탐욕하는 인간이 야만성을 드러낼 때,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조선이 망하고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기까지. 분단과 독재, 한국적 민주주의와 신군부 쿠데타, 3당 합당으로 정치 지형이 오염된 문민정부 시절, IMF 시기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와 탄핵 정부. 5월 대선에서 작은 희망을 다시 품는 문재인 정부까지 1세기 넘게 역사는 단 한 번도 사실을 기록할 수 없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국가주도 경제 성장을 앞세우며 삶의 가치는 무엇이었나? 한국 사회에 철학이 존재하는가? 행복추구를 위해 한국사회는 무엇을 해 왔나?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질문들에 기성세대는 무슨 답을 낼 수 있을까? 채무의식은 쌓여만 간다. 성장만을 앞세워 행복한 삶을 돈으로 사는 것이 더 쉽고 빨랐던 세상에서 ‘나’가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5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국민을 대의하는 국회는 아수라장이다. 정당의 존재를 생각한다. 현재 국회 갈등은 민주주의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갈등이 아니기에 정기국회를 바라보는 시민으로 낯부끄럽다. 대의명분이 사익으로 사칭될 때 민주주의는 비틀거린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한국사회는 국민들의 관심으로 가능하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노력, 공정 언론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 정보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전달될 수 있는 매스 미디어는 개인들의 안목을 필요로 한다. 내가 바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기에 꿈틀거려야 한다. 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 정치가 제대로 작동될 때이다.

 

‘1890년 9월 탄광개발에 착수하여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 군수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군함도는 1970년에 일본의 새로운 에너지 정책으로 1974년 1월 폐관된다. 2015년 군함도는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었다. 현재 일본 정부는 2017년 12월까지 강제징용을 포함한 각 시설의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유네스코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영화 마지막 자막이다.

 

이제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민간 연구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살아있는 역사를 후대에게 알릴 의무와 책임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엄청난 자금을 유네스코에 후원하고 있는 일본은 전범기업의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있다.

 

현재까지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친미와 친일을 개인의 탐욕과 정치적으로 이용한 독재정권 1965년 ‘한일협정’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굴욕의 한일협정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제 나라를 위해 한국의 운명을 농단하고 있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인간이 얼마나 야만일 수 있는가. 기업이 전쟁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어 부를 축적하는 일. 국가가 내거는 애국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짓밟힐 수 있는가. 사회약자들이 만나는 공포는 도대체 누가 조장하는가를 생각한다. 생존본능만으로 인간은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걸까.

 

영화에서 건네는 미래를 바꿀 힘은 촛불이다. 지난 겨울 광장을 밝히던 시민들의 촛불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군함도를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영화 마저도 희망을 말할 수 없다면 대중영화는 관객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너무 고약하지 않다는 약간의 희망으로 그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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