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습성을 방랑벽이라고 하던가. 어머니께서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던 시절에는 사주를 보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사주를 보고 성인이 된 후에 알려주셨다. 나는 세 가지를 타고 났는데 그중 하나가 역마살로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타고났다는 말이었다.

 

이불보를 꿰맬 때 바늘에 실을 길게 잡으면 집에서 멀리 간다던데 내가 그랬다는 거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웃으며 지나왔는데 지금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찌 되었건 내게는 사주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결’이 있다. 내게 삶의 ‘결’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세월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사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는 인정하지 않으시지만, 아무래도 이 결을 설명하려면 세월을 풀어야 가능할 이야기이긴 하다.

 

40년이나 지나 서야만 눈치를 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삼스레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가 바뀔 날이 막바지에 올 12월 중반이 넘어갈 때면 어김없이 기억은 살아난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 단 하나 글자가 떠오른다.

 

“책”

 

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심으로 솟아 시작되는 것은 책 읽기다. 십 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진한 선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책 읽기에서 시작된 일과 놀이로 쌓아온 세월의 더께는 삶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출판물이 하루에 몇천 권씩 쏟아져 나오는데 그 생산량에 비교해 소비는 바닥이다. 예외로 놓을 출판물은 실용서이고 문학 관련 출판물은 베스트셀러이거나 출판사 광고와 마케팅으로 후원하는 책이 관심을 끌기는 한다. 아니면 ‘00상’이라는 수식이 필요하다. 대부분 신간 코너에 1주일쯤 머물다가 물류창고로 사라지는 일은 흔한 일이다.

 

한국사회에 책 읽는 문화는 거의 실종 중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청소년 시기부터 책 읽기보다는 지식을 암기하고 누군가 원하는 정답을 알아맞히는 일이 중요하니까.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나마 막연하게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읊조리기는 하지만 막상 그 선택은 늘 다음으로 밀려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빠르게 표준화를 따른다.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설명하기 힘든 이유도 있지만, 그것이 대개는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일이 더 쉬운 이유도 있다. 책 읽기 문화는 선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에 주류가 되기도 하고 밀려나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사를 돌아보면 이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에는 꼿꼿하게 있는 책이 있다.

 

내게 필요한 필수품 구매가 늘 책값에 비례해서 가늠되는 일은 저절로 만들어진 판단 근거였다. 멋진 옷 한 벌을 사야 할 때면 책이 몇 권인가를 떠올리게 되는 일처럼 개인에게 소용되는 물품에 우선순위는 다르다. 그 순위에 따라 삶의 결이 흐르는 것 같다. 그 결을 알아차리는 경우는 삶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 어김없이 영향을 준다.

 

책에서 답을 구하는 일이 내게는 가장 쉽고 편한 경로였는데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목청이 높아진다. 새천년 시작을 알리며 달력의 첫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던 2000년 1월 1일. 그 날 보신각 종소리는 유난히 컸던 기억이 있다. 20세기 마지막 해에 21세기를 준비하는 사회 분위기는 꽤 좋아 보였다. 이제야 한국 사회가 변화 가능성을 공론화하는구나. 길게 늘여 십 년 동안 가능했던 일이다.

 

1970년대 경제 급성장에는 가능했던 지식으로 지금까지 계속되는 교육과정이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뀌기 힘들다. 거의 1세기를 같은 방법으로 축적한 기득권이 물러나 다양한 계층으로 채워지기까지 적어도 그만큼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사회속도는 기업이 질주하는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개인이 그 속도를 따라잡아야 하고 그 시작이 책 읽기 문화라 생각한다.

 

책 읽기는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고 그것으로 십 대 꿈을 이룬 것은 삶의 일상이 가져다준 기회였다. 어느 분야든 소수이지만 달인들이 있다. 전문가라는 명패보다는 자기 즐거움으로 공부를 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책에서 얻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는 평생 책 읽기를 벗 삼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하는 것은 내가 태어난 이유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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