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께 임기중 마지막 드리는 편지







지루하고 고단한 5년이 지났습니다. 곧 퇴임을 하시고 고향으로 돌아가신다니 이제 좀 편히 지내실 수 있겠네요. 너무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모진 풍파를 견디며 5년임기를 무사히 마치시는 모습에 지지자의 한사람으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2002년 민주당 경선이 있기 전까지 정치인을 진심으로 지지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최악을 피하기 위하여 차악을 지지해왔을 뿐입니다. 흔쾌히 지지할 대상을 찾기에는 우리의 정치판이 너무도 저열했습니다. 심지어 반독재 투쟁의 과정에서 각별히 응원했던 양김씨도 그저 차악으로 여겼을 뿐입니다. 한사람은 군사독재 세력과의 야합으로 마음에서 지워졌습니다. 다른 한사람은 지역주의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이 호남출신으로 알게 모르게 지역감정에 의한 차별을 체험한 바가 있었기에 지역주의를 더욱 혐오하였겠지요.

 

그러나 2000년 총선을 거치며 당신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누구도 넘보지 못하던 지역주의의 벽에 거듭 무모한 도전을 하던 정치인을 발견한 것입니다. 가슴이 벅차고 마음속에서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지지할 정치인을 발견한 것입니다. 2002년 경선에서 이기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호남에 기반한 정당에서 영남출신을 대선후보로 뽑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정치발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구도상 본선승리에도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경선을 돕던 노사모라는 사람들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광주경선에서의 1위에 온몸이 감전되는 듯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경선에서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경선이 끝나고 영삼시계 사건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는 이미 국민을 배신하고 삼당야합을 감행했을 뿐 아니라 나라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점부터 사실은 신명을 잃어 버렸습니다. 시큰둥한 태도로 대선을 지켜보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민주당내의 정치인들이 끝없이 후보를 흔들고, 외부의 함량미달 정치인을 옹립하려 애쓰는 것을 보고 또 다시 분노를 느겼습니다. 마치 2000년 총선결과의 울분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때 유시민이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트 앞에 서는 심정으로…’앞장서서 국민후보 지키기운동을 시작합니다. 동참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곧 개혁국민정당에 참여하여 난생처음 정당의 당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갓 태어난 아이와 처를 두고 선거운동에 적극 나서기가 어려웠습니다. 겨우 희망티켓 몇장 팔고 지역 모임에 몇번 나간 것이 전부입니다.

 

2002년 12월 19일은 태어나서 가장 큰 희열을 느낀 날이었을 겁니다. 곧 우리의 정치가 상당한 수준의 발전을 볼 수 있을 것처럼 기대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장 그러한 기대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임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보수언론의 공격과 흠집내기를 목도한 것이지요. 당시의 거대야당이 부리던 횡포는 또 얼마나 집요한 것이었습니까? 대통령 한사람 뽑아놓았다고 우리사회의 수준이 금방 높아지는 것이 아님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대선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당내의 헤게머니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쟁투를 바라봐야 했습니다. 당은 여전히 개혁되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이 밀어부친 대북송금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둘러싸고 갈등은 첨예화되었습니다. 특검에서 밝혀낸 결과를 보면 반드시 밝혀졌어야할 내용들이 많았지요. 시작부터 의회가 정상적으로 통과시킨 법안을 거부하고 국정을 이끌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게다가 당개혁안을 놓고 대립하며 당은 분당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결국 민주당은 고쳐서 쓰기에는 이미 너무 심하게 구태정치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자영업 행위에 적합한 지역정치인 클럽이었다고 봅니다. 좋은 명분을 가지고 적절한 시기에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습니다. 취지에 공감하여 저 역시 당원으로 참여를 하였지요. 당비도 내고 당의 리더쉽을 세우는 대의원대회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당이 너무 소수이다보니 구실도 없이 탄핵안이 가결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었죠. 국민이 탄핵에 대하여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여당은 과반의석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하였습니다. 이 때도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이제 의회까지 과반을 확보했으니 참여정부는 탄탄대로를 갈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당을 이끌던 천하에 무능한 정치인들은 자중지란에 바빴습니다. 의회권력중 가장 중요한 법사위를 소수당인 한나라당에 넘겨주고 개혁과제는 모조리 좌초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장 정신나간 인사가 죽어가던 민주당과의 합당을 주장하였죠. 민주당을 부활시킨 일등공신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워지는 것에 느낀 분노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리고는 각종 선거마다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무기력하게 당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선거에 질 때마다 적절한 반성과 국민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한 법인데 여당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데 몰두하였습니다. 심지어 돈내고 시간쪼개서 선거를 돕던 당원들에게 선거패배의 책임을 돌리기도 하고 당원들의 권한을 무력화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자신들이 살려면 선거법 개정에 앞장서야 하는데 아무도 관심조차 두지않고 공학적 통합론에만 몰두하게 되었지요.

 

그 때 바로 대통령께서 인정하신 바와 같이 실패한 대연정론이 등장하였습니다. 사실 열린우리당이 살 길은 오로지 정도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개혁과제를 잘 감당하고, 선거제도를 고처서 적절히 민의를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지역구도에 투항하여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고만 노력하였습니다. 호남의 몰표와 호남출신 수도권 유권자의 숫자만을 기준으로 공학적 계산에 몰두하였습니다. 그 것이 망하게된 원인인데 그들은 아마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결국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보에 동의하지 않는 당원들과 이른 바 친노세력과 차별화에 몰두하였습니다. 심지어 대통령과도 누가 더 많이 대립하는지를 경쟁하고 있었지요. 가뜩이나 보수언론과 야당의 공격에 국민들이 공감해가던 때 집권여당의 정치인들조차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앞장서니 더더욱 공멸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결국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하여 열린우리당은 자취를 감추고 다시 과거의 민주당만 남았습니다.

 

경선에서는 경쟁의 규칙조차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최고의 동원전문가를 후보로 선출하는 것으로 이미 패배를 확정지었다고 봅니다. 이제 한나라당이 모든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과 각급의 지방권력은 물론이고 곧 있을 총선에서 의회권력조차 독차지할 것입니다. 참으로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민의 선택은 존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잘못된 결과조차 국민이 감당해야할 몫이기는 합니다만 걱정이 많습니다.

집권기간 내내 대통령을 욕하는 것이 국민스포츠가 되어 있던 분하고 억울한 심정을 이제 저도 내려 놓으려 합니다. 때로는 대통령께서 하시는 일이 맘에 안들어서 비판하고 싶지만 개나 소나 다 나서서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나까지 나설 수 없어서 비판조차 못한 일이 많습니다. 특히 인사에 있어서 고건씨나 이헌재씨를 중용하신 일, 이정우씨나 정태인씨를 결국 내보내신 일, 사기꾼 과학자에게 감전당하신 일, 복지제도를 좀 더 확충하지 못하신 일, 한미FTA등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용을 지속하신 일등 참 많이도 입이 간질거렸습니다.

 

하지만 보수는 보수대로 좌파정권이라고 비난하고, 진보는 진보대로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하는 와중에 저라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작 비판하고 싶은 일들이지만 어느 새 오히려 옹호하고 있는 제모습에 스스로 놀란 일도 있습니다. 남들이 적절한 수위로 옳은 비판을 한다면 당연히 함께 비판하고 싶은 것조차 너무도 과도한 비난이 난무하니 거기에 힘을 싫어주기는 싫었습니다.

 

그만큼 그동안의 비난과 조롱이 과도하였을 뿐 아니라 무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참으로 5년을 어렵고 힘겹게 지내셨겠지요? 너무도 고생하셨습니다. 애당초 그렇게 훌륭한 결과를 내실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하고 싶다고 다 되는 사회도 아니며, 대통령이 싫다고 안할 수도 없는 것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오히려 국민의 의식과 이해수준에 따라서 결과가 좌우되는 것이 민주주의에 가깝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취임초부터 너무도 많은 난제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카드대란과 부동산 폭탄이 그 것입니다. 그러나 슬기롭게 대처해 오셨다고 봅니다. 이전 정권이 물려준 폭탄들을 적절히 처리하셨을 뿐 아니라 특별한 부양책을 사용하거나 인위적으로 경기를 조절하지 않고도 상당한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특히 권력기관에 대하여 손을 놓고도 법에 명시된 권한만으로 통치를 하신 일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청와대가 정치권을 손아귀에 쥐고 조절하는 일도 혁파하셨습니다. 진정한 삼권분립의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과정의 노력에 비하여 지금은 과도한 비난에 직면해 있습니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다른 평가가 내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새로 들어설 정권이 너무 우스운 행보를 하면서 비교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서히 그래도 참여정부가 잘한 일이 많다는 평가가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작은 부분에서 국민여론은 종종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지요. 그러나 말씀하신대로 장기적 맥락에서는 항상 옳은 방향을 찾아갈 것이라고 믿어볼 생각입니다.

 

정말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제 임기를 마치시면 고향에 내려가시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그 곳에 식구들을 데리고 찾아뵙고 싶습니다. 물론 바쁘실테지만 이제 전직이 되신 다음이니 뵙더라도 그리 의도를 의심받지 않겠지요? 바쁘셔서 뵙지 못하면 그저 기거하시는 곳을 잠시 구경하고 돌아와도 상관없습니다. 언제는 서로를 알아서 지지하였던가요? 퇴임하시는 날에 내려가서 환영인파와 함께 손이라도 흔들어 보고 싶습니다만 생업에 얽메어 그렇게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차후 시간을 내서 한번 내려가서 먼발치에서나마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당한 비난에 5년을 고생하셨지만 지지자라는 사람이 도와드린 것이 거의 없네요. 죄송할 따름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국정에 대한 부담에서 해방되시는 순간부터 마음까지 편안해지시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너무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향후에 무엇을 하실지 모르나 분명 의미있는 일을 하실 것으로 믿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지난 5년을 돌아보니 지금도 분노가 느껴지곤 합니다. 이제 저도 그러한 분노를 내려놓을까 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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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세력@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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